최근 지상파 방송 3사 예능이 심상치 않다. 5~6년 전만 해도 시청률 20%가 우습다 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그저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시청률 10%만 나와도 '대박' 이라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고 한 자릿수 시청률도 일상다반사가 됐다.

어쩌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지상파 예능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케이블에 종편까지, 채널 다변화에 무너진 '독과점 체제'

 JTBC <히든싱어3> 이선희 편은 본 경연이 아님에도 시청률 4.3%(닐슨 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 제외 기준)를 기록했다.

JTBC <히든싱어3> 이선희 편은 본 경연이 아님에도 시청률 4.3%(닐슨 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 제외 기준)를 기록했다. ⓒ JTBC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 50년간 철저한 독과점 체제에서 성장했다. 1990년대 케이블 채널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지상파의 막강한 자금력과 스타 동원력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고, 프로그램 제작 노하우 등 단단하게 쌓아 올린 내실 또한 쉽게 따라잡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다. 당시 시청자들로선 지상파 외에 다른 채널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마이너리그'로 여겨졌던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를 위협할 만큼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두주자격인 tvN을 시작으로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다양한 케이블 채널들은 지상파가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는 공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전진 배치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덕분에 한 때 '마의 1%'라고 불렸던 케이블 시청률은 최근 3~4%를 왔다갔다하는 작품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만큼 양적, 질적으로 성장했고 그 중에는 <슈퍼스타K> <응답하라 1994>처럼 시청률 10%를 넘기는 작품 또한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이라면 케이블을 더 이상 마이너리그라고 부르기 힘들어진다. 오랜 시간 절치부심 했던 케이블 채널이 바야흐로 지상파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2011년 첫 등장한 종합편성채널 또한 지상파 입장에선 눈엣가시다. 출범 직후, 시청률 0.1%를 기록하는 등 극도의 부진에 시달렸던 종편은 지난 3년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고정시청률 3~4%를 기록하는 '효자 프로그램' 양성에 성공한 모양새다. <엄지의 제왕> <나는 자연인이다> <동치미> <아궁이> <유자식 상팔자> <히든싱어> <썰전> <비정상회담>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인 지상파 시청률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른바 '스타 MC'들의 비지상파 출연 또한 당연시 되고 있다. 이경규, 신동엽, 김구라, 남희석, 박수홍, 정형돈, 전현무, 유세윤 등 웬만한 스타급 MC들은 지상파만큼 비지상파에서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고 오히려 비지상파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력을 인정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김구라의 대표 프로그램이 <라디오스타>에서 <썰전>으로, 신동엽의 대표 프로그램이 <안녕하세요>에서 <마녀사냥>으로 변화한 것이 일례다.

이렇듯 독과점 체제가 무너지며 '무한 채널경쟁시대'에 돌입한 이래, 지상파 예능은 떨어지는 시청률을 쉽사리 만회하지 못한 채 비지상파 채널에 고정 시청층을 속수무책 빼앗기는 굴욕을 맛보고 있다. 시청률 1~2%가 아쉬운 마당에 100개가 넘는 비지상파 채널과 시청률을 나눠 가지는 악순환이 반복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보이지 않던 벽'도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다. 이는 지상파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여운혁, 이명한, 나영석...지상파 떠나는 핵심 인재들

 최근 각종 화제를 낳고 있는 TvN <꽃보다 청춘>

최근 각종 화제를 낳고 있는 TvN <꽃보다 청춘> ⓒ CJ E&M


더 큰 문제는 지난 10년간 지상파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핵심 인재'들이 케이블 및 종편으로 자리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여운혁이다. <무한도전> <무릎팍 도사> <라디오 스타> <놀러와> <우리 결혼했어요> 등의 총괄 기획을 맡으며 MBC 예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그는 돌연 2011년 JTBC로 자리를 옮긴 이래, <닥터의 승부> <썰전> <히든싱어> 등이 탄생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여운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MBC로선 배신감이 들만한 일이다.

KBS 예능의 대들보였던 이명한-나영석-신원호 콤비 또한 마찬가지다. 예능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한 KBS <1박 2일>과 <남자의 자격>을 연출했던 그들은 2011년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CJ E&M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새로운 국민 예능으로 인정받고 있는 '꽃보다' 시리즈와 '응답하라' 시리즈다. 이 두 작품은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를 능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직까지 지상파에 남아 있는 이른바 '여운혁 라인'과 '이명한 사단' PD 군단의 지상파 탈출 현상 또한 가속화 되고 있다. 조승욱, 성치경, 임정아, 방현영, 오윤환, 마건영, 신효정, 고민구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PD들이 빠져 나가고 있고 이우정, 김대주 등 재능 있는 예능작가들 또한 이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상파 방송은 오히려 인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검증 된 스타 PD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 탓이다. 2011년만 해도 "지상파를 떠난 것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내심 자신만만해 하던 지상파가 불과 몇 년 만에 곤궁한 처지에 빠져 버리게 된 셈이다. 스타 PD들이 그동안 쌓아 올린 방송 노하우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 아니냐는 내부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지상파 나름의 자성론도 제기되고 있다. 스타 PD들의 이적 이유 중 하나가 지상파 방송사의 경직된 조직 분위기와 상하 관계 탓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포맷부터 캐스팅까지 경영진의 의중이 무엇보다 중요한 '절대반지'가 되다 보니, 창의적 기획으로 도전하기보다는 안정적 시청률에 집착하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경쟁력이 저해됐다는 것이다. PD들로선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비지상파 채널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핵심 인재 이탈-지상파 시청률 하락-비지상파의 성장'이 두렵다면 지상파부터 먼저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치열하게 도전하고 변화하며 시청자들을 포섭하는 비지상파의 역동성과 달리, 지금의 지상파는 시청자들의 제대로 된 요구를 파악하지 못한 채 현상유지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래서는 게임이 안 된다.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경계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지상파가 진정 지난 50년간 누려온 영광을 되찾고 싶다면 이제는 '무한 채널경쟁시대'임을 받아들이고 신선한 기획과 새로운 인재 발굴로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뿌리 깊게 박혀있는 관료주의 문화를 타파하고 PD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지상파로서 나름의 품위와 의무를 갖는 일 역시 시급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시청 패턴을 감당하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과연 지상파는 이 같은 내우외환 속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예전의 전성기를 다시 구가할 수 있을까. 이제 공은 지상파에게 돌아갔다. 부디, 그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마지막 자존심마저 잃어버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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