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방송된 MBC <동네 한바퀴>의 한 장면

14일 방송된 MBC <동네 한바퀴>의 한 장면 ⓒ MBC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살았어도, 가끔 서울시티투어버스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비록 서울 강북의 중심부만 순환할지라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더라도 그렇다. 과연 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서울은 어떤지, 또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떤지 엿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직 가보지 못한 서울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은 욕구의 다른 표현이랄까.  

이런 투어를 서울의 한 동네로 옮겨 보면 어떨까. 이를 가능케 하는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14일 방영된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동네 한바퀴>이다. "스타들이 동네를 여행하며 숨은 명소와 명물을 소개하는 동네 여행"이 제작진이 밝힌 제작 의도이다. 실제로 그러했느냐고?

<동네 한바퀴>는 서울 서촌에 카메라를 고정했다. 서촌은 리얼 예능엔 <오빠밴드> 이후 실로 오랜만인 MC 신동엽이 20년 가까이 살았던 고향과 같은 동네란다. 이 서촌의 구석구석과 유래를 엄지원의 남편인 건축가 겸 여행작가 오영욱이 안내하고, 신동엽과 노홍철, '소년' 배우 여진구가 탐방했다. 신선함까지는 모르겠지만 쉬이 볼 수 없던 조합이긴 하다. 그런데 이 예능, 나른한 듯 정감 간다.

공간과 역사, 사람을 돌아보게 하는 산책자의 시선 

 <동네 한바퀴>의 여행자인 여진구, 신동엽, 오영욱, 노홍철

<동네 한바퀴>의 여행자인 여진구, 신동엽, 오영욱, 노홍철 ⓒ MBC


여행하며 먹고 즐기고 수다 떠는 프로그램은 이미 tvN의 '꽃보다' 시리즈가 정점을 찍었다. 지금도 유희열, 윤상, 이적이 출연하는 <꽃보다 청춘>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SBS에는 차인표가 진행했던 <땡큐>가 있었다. 먹거리와 토크를 특화한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일요일 오전에 자리를 잡았다.

이 분야의 후발주자인 MBC가 새로 내놓은 예능인 듯 정체 모를 프로그램이 바로 <동네 한바퀴>이다. 그래서인지 이 파일럿에선 서촌으로 공간을 한정하고, 역사와 건축으로 시각을 구획 지었다. 일견 일리 있는 선택이다. 철 지난 외국 관광 코스로 일관하는 <7인의 식객>과 비교하면,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둘러봤음직한 서촌의 이모저모를 담아내는 관점이 호들갑스럽지 않다. 이는 <동네 한바퀴>의 최대 강점이자 매력이다. 서촌에서 터를 잡은 팔순 할머니를 만나는 것도 잠시, 청와대 직원들의 단골이라는 중국집도 들르고, 서촌 한옥에 터를 잡은 프랑스인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눈다.

서울에서 무슨 '여행'이냐 싶겠지만, <동네 한바퀴>는 여행객 혹은 산책자의 시선을 견지한다. 그만큼 대상을 그리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역사나 전통에 크게 호들갑을 떨 생각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서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겠다는 의지로 충만하다. 정제되어 있지는 않지만, 분명 여유로움을 담아낼 줄 안다.

그게 풍경과 그림에서 비롯됐든, 출연진의 자세에서 영향을 받았든 상관없어 보인다. 허허실실, 다소 산만하더라도 그저 출연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듯 잊고 살았던 서울의 뒷골목, 한옥, 서촌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후 11시대 만나는 프로그램치곤 꽤 신선하다. 그래서, 재밌느냐고?

예능과 교양 사이를 구분하는 '동엽신' 신동엽의 힘

 <동네 한바퀴>의 여진구, 신동엽, 노홍철

<동네 한바퀴>의 여진구, 신동엽, 노홍철 ⓒ MBC


그 (간간이 겨우 터지는) 재미의 팔 할은 물론 신동엽의 몫이다. 연신 "<동물농장> 아저씨야!"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어필하는 이 귀여운 캐릭터는 옛날 얘기를 꺼내려는 할머니에게도 "끝까지 안 물어봐야지"라며 특유의 악동 정신을 잊지 않는다. 나름 진행을 하려는 후배 노홍철과의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다.

18살 여진구에게 끝내 '19금 토크'를 이끌어내는 '동엽신' 신동엽은 제작진이 몰래 데려온 과거 인연(?)과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어이 프로그램의 중심에 선다. 과장을 조금 보태, 신동엽이 없었다면 예능과 교양 사이를 헤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특정 공간에 역사성을 서술하는 <동네 한바퀴>의 형식은 서울만 한정한다면 꽤나, 아니 무척이나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재개발에 신음하며 고층빌딩과 아파트로 채워져 가는 이 서울이란 계획도시에서 과거의 숨결,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을 찾아 나설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서울을 벗어나 지방은 물론 해외로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강호동의 <별바라기>를 한 주 쉬게 한 <동네 한바퀴>. 이날 방송은 잘만 다듬는다면 외국으로 나가는 '꽃보다' 시리즈의 정반대에서 여행과 사람, 공간과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했다. 하나 더, 안일한 기획으로 해외에서 제작비를 낭비 중인 <7인의 식객>보다 몇 배는 더 제작비를 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거, MBC로서는 무시 못 할 장점 아니겠는가.

동네한바퀴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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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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