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잭스워드 역을 맡은 배우 변희상. ⓒ 변희상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 뮤지컬 배우 변희상(26)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안산의 한 중학교에서 직업체험 특강 강사로 그가 아이들을 만나러 왔을 때였다. 한 교실에서 '지금 이 순간', 그 유명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뮤지컬 넘버가 울려 퍼졌다. 조승우 주연의 <지킬 앤 하이드>를 봤었던 터라 그 곡은 조승우만이 완벽하게 구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세상에! 무명의 배우가 그렇게 노래를 잘 소화해 내다니 깜짝 놀랐다.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뮤지컬 앙상블(보조출연자)로 활동한고 했다. 거의 차비 정도밖에 나오지 않지만, 재능기부의 형식으로 안산의 중학생들에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뮤지컬 넘버 몇 곡씩을 불러준다는 그는 '따세만사(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사회 복무 요원)'의 멤버로서 재능기부 봉사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따세만사'는 2년 좀 넘게 활동을 했어요. '양지 하모니'라고, 뇌성마비 친구들이 있는 곳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랑 같이 연습을 해서 합동 공연도 올리고요. 노인, 아동센터 등 사회복지 센터에 가서 공연을 하는 봉사 단체예요. 저는 뮤지컬 부분에 참여하고 있어요. 근데 할머니들 계시고 그럴 때는 트로트도 가끔 불러요. 워낙 흥이 좋으셔서 재미있어 하세요. 제 작은 특기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는 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 맛을 느끼고 나니까 계속 하게 됐어요."앙상블로 만났던 배우..."처음으로 역할 맡았어요"
▲ '드라큘라' 변희상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부 뮤지컬학과에 편입학이 되어서 그때부터 아버지도 좋은 시선으로 응원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 오디뮤지컬
지난해 앙상블로 <두 도시 이야기>와 <명성황후>에 참여했던 변희상. 자신의 작은 재능이라도 일찌감치 주위 이웃들과 나눌 줄 알던 이 청년이 언제쯤 배역 이름이 주어지는 역할로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언제쯤 '뮤지컬계의 신성이 나타났다'며 떠들썩하게 언론을 장식하게 될지 궁금했었다.
그 시기가 정말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두 작품의 앙상블을 거쳐, 세 번째 작품인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오디션을 통해 주요배역을 따낸 것이다. 변희상은 정신과 의사 잭스워드 역에 이름을 올렸다.
"'오티알(otr)'이라고 하는 공연포털사이트에서 <드라큘라>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지정곡을 부르는 오디션이라, <드라큘라> 넘버 중 한 곡인 '러빙 유 킵스 미 어라이브(Loving you keeps me alive)'를 불렀고, 이후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전 당연히, 앙상블로 합격이 된 줄 알았어요. 근데 역할이 주어졌더라고요. 데뷔한 지 1년 만에 이렇게 역할을 맡게 돼서 눈물을 흘릴 뻔할 정도로 벅차고 감격스러웠어요."
▲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정신과 의사 잭스워드 역할의 변희상(가운데).
ⓒ 오디뮤지컬
앙상블로만 활동했던 변희상이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대사를 하게 됐다. 캐릭터도 만들어야 하고, 다른 배우들과의 대사 호흡과 동선 등 모든 것이 앙상블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큰 도전이고 부담스러울 법했다. 객석에서 수백 명이 2시간 동안 응시하는 상황에서 능숙하게 곡을 소화하기란 두려움이 엄습하는 일이다.
"무대 위에서 캐릭터로 서는 것은 처음이어서 관련 영화도 많이 보고 드라큘라 원작도 제일 두꺼운 것으로 사서 읽었어요. 어떤 캐릭터인지 공부도 많이 했고, 어떻게 하면 이 역할과 비슷해질까 고민을 했어요. 다행히 선배님들이 조언을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제가 팀의 막내인데 정말 선배님들이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앙상블을 할 때는 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군중신이 많아서 부담이 덜했던 게 사실이었어요. 제가 몸이 안 좋더라도 다른 사람이 커버도 가능하지만, 이건 오직 저 혼자 다 해내야 해서 엄청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1막 7장에 처음 등장하는데 7장이 오기까지 20분밖에 안 되는데도 나오기 전에 화장실을 4, 5번씩은 갔던 것 같아요. 정말 너무 긴장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초반에 힘들었어요.""이제 무대에서 얼굴이 잘 보이네"...아버지의 칭찬
▲ 변희상 "사실 오랜 시간 가수의 꿈은 있었는데,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서 저의 목소리가 뮤지컬 쪽과 더 맞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주셔서 뮤지컬 쪽으로 입시 준비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6개월의 시간을 주시고 합격을 하면 허락해주시겠다고 했고요." ⓒ 오디뮤지컬
<드라큘라>는 김준수와 류정한이 드라큘라 역으로 더블캐스팅 됐다. 변희상도 이 쟁쟁한 뮤지컬 스타와 한 무대에서 호흡을 주고받는다.
"저의 첫 데뷔 작품인 <두 도시 이야기>를 류정한 선배님이랑 같이 무대에 섰어요. 그때는 정말 너무너무 높이 계시는 존재 같아서 말도 한마디 못 붙여 봤던 것 같아요. 근데 <드라큘라>에서는 같이 연기하는 장면도 있어요. 동생처럼 잘 챙겨주시고, 편하게 대해주세요.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가 폭발적으로 넘치시는데 실제는 유머러스하고 편안하시더라고요.김준수 형님은 저보다 한 살 위예요. 그 정도 인기의 연예인과 작업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사실 너무 유명한 연예인이라서 엄청 바쁘고 다른 배우들과 거리도 둘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진짜 열심히 하셔서 너무 놀랐어요. 다른 배우들과도 잘 어울리고 친근하게 대해주세요. 그리고 드라큘라 역할도 젊은 감성으로 잘 소화하시더라고요. 확실히 그만의 어떤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지금은 이렇게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뮤지컬 배우들과 한 무대에서 노래 실력을 뽐내지만, 사실 변희상은 뮤지컬 배우의 길에 뒤늦게 올랐다. 그래픽디자인 전공이었던 그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아버지를 1년 가까이 설득했고 가수로서의 역량도 발휘할 수 있는 뮤지컬 배우로 꿈을 구체화했다. 간신히 아버지로부터 "6개월의 시간을 줄 테니 먼저 관련 학과를 들어가 보라"는 말을 듣게 됐다.
"사실 오랜 시간 가수의 꿈은 있었는데,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서 저의 목소리가 뮤지컬 쪽과 더 맞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주셔서 뮤지컬 쪽으로 입시 준비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6개월의 시간을 주시고 합격을 하면 허락해주시겠다고 했고요. 그래서 남경읍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학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뮤지컬 공부를 하게 됐어요. 사실 그 전에는 (뮤지컬 넘버를) '지금 이 순간'밖에 몰랐거든요. 근데 그 이후로도 여러 자리에서 그 곡을 수 백 번은 불렀던 것 같아요. 다행히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부 뮤지컬학과에 편입학이 되어서 아버지도 좋은 시선으로 응원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 뮤지컬 <드라큘라> 무대에서 변희상(맨 오른쪽). ⓒ 오디뮤지컬
이제 그 누구보다 자식을 응원해주시는 아버지는 <드라큘라>를 처음 본 후 "예전에는 네 얼굴을 찾아서 봐야했는데 이제 얼굴 안 찾아도 잘 보이네"라고 칭찬했다고. 또한 변희상의 팬들도 삼삼오오 생겨나기 시작했다.
"<드라큘라>를 하면서 팬클럽도 생겼어요.(웃음) 사실 만들어진 지 일주일 정도 됐고요. 팬은 20여 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를 알아봐주시고 팬클럽이 생겼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고 그래요. 특히 국내 초연작인 <드라큘라>에 제가 참여하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이렇게 역할도 주어지니 지금도 꿈만 같아요." 185cm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이목구비, 여기에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변희상.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사실 속마음은 3년 안에 신인상을 타고 싶다"고 답한 그는 "하지만 워낙 치열하고 힘든 곳이라서 그런 목표보다는 매 작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그렇게 하다 보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