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정도전은 '킹 메이커'가 아니다".  KBS 1TV <정도전> 정현민 작가의 말이다. 그에게 정도전은 '킹 메이커' 이상의 사람, 단순히 권력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려 했던 사람이었다. 이제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닦은 '큰 사람' 정도전을 보낼 때가 왔다. 드라마 <정도전>은 끝났지만 강병택 PD와 이재훈 PD, 그리고 정현민 작가 모두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정도전>이 이들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이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이재훈 PD와 정현민 작가, 강병택 PD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정도전> 팬들과 함께 간담회를 하고 있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이재훈 PD와 정현민 작가, 강병택 PD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정도전> 팬들과 함께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긴 여정이었다.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정현민 작가(이하 '정'): "그냥 시원섭섭하다. 처음엔 이 산이 만만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올라갔더니 길도 구불구불하고, 보기와 다르더라. 그런 산을 한 번 넘은 기분이다. 정말, 자칫하면 조난당할 뻔했다. (강병택 PD를 향해) 나를 여기에 떠밀어놓고 혼자 옆으로 돌아갔어…. (웃음)"

강병택 PD(이하 '강'): "솔직히 말해 잘 됐으니 일단 기분은 좋다. 아쉬운 측면도 없지 않아 있긴 한데, 그보다는 얻은 게 많다. 초반에 목표했던 것들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이뤄진 것 같다. 내 인생에 이런 드라마가 다시 있을까 싶다. 산에 올랐는데 내려오고 싶지 않다. (웃음) 뭐, 내려올 때가 있겠지. 다음에 오를 산이 부담이 되겠지만…. 좋은 추억이었다."

이재훈 PD(이하 '이'): "원래는 마지막 신 마지막 컷을 딱 찍고 대본을 집어 던지며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싶었다. 뭔가 기쁨의 제스처를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단 (현장이) 극적이지 않더라. 허무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늦었던 지라….

강병택 PD와 함께 작품을 한 적이 있었다. <거상 김만덕>이었는데, 막내 조연출 역할이었다.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일을 제대로 못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강병택 PD에게 미안해서 이번엔 '내가 해도 되나' 싶었고, 그 다음엔 '이번엔 제대로 도와드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 끝나고 고생했다,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랬는데 한 15회쯤 방송됐을 때 둘이 가볍게 마시는 자리에서 벌써 (강 PD가) 그런 말을 한 거다. 다음부턴 뭔가 김이 빠진 느낌이었다. (웃음) 그래도, 막판에 끝나고 전화로 '고생했다'고 하는데 '이거였다' 싶었다."

강: "그 집어 던진다는 게 패대기친다는 건 아니지? 위로 던진다는 거지? (웃음)"

"10년간 한 보좌관 생활, 대본 쓰는 데 도움 많이 됐다"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 언젠가 정현민 작가가 '역사적 사실이 징검다리이고 그를 엮는 것이 창작자들의 역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도전>에선 이 징검다리를 어떻게 건너려 했나.

정: "정확히 말하자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보좌관이 이런 거다. 예를 들어 아침에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오후 1시에 상임위가 열린다. 의원이 (상임위에서) 한 마디라도 하게 하려면 2~3시간 정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보좌관들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소스를 찾아서 시간 안에 무조건 뭘 만들어야 하는 거다. 7~8년 정도 일하면 '선수'가 돼서, 자료가 죽 오면 핵심만 뽑을 수 있게 된다. 그걸 나는 10년간 훈련했다. (웃음)

대본 작업에 들어가면 보조작가들에게 자료만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받은 자료를 넘겨보는 거다. '이 정도면 되겠다'는 선을 찾는 감각이 훈련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마지막 왕자의 난 같은 경우엔 시간이 없다 보니 (보조작가들에게) '시간별로 정리해 달라'고 했다. 그 자료를 보고 장면 구성을 했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이슈가 손에 만져져야 한다.

그렇게 위화도 회군까지는 마음속에 그려뒀던 대로 엔딩까지 다 짰다. 그런데 정확히 31회부터 '신천지'가 열렸다. (웃음) 어렵더라. 역사의 징검다리는 불친절하게 놓여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 사람이 구축했던 캐릭터와 감정선을 따라가야 하니까 다르게 가야 할 때가 있다. 결국 방법은 없었다. 그냥 계속 머리만 쥐어뜯는 거지. 그래도 운 좋게도,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쯤 생각이 났다."

- 이야기만 들어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는 게 느껴진다.

정: "나는 원래 '(대본) 퀄리티보다 스피드에 충실하고, 애프터서비스에 충실하자'는 기조를 갖고 있었다. 예전에 아주 호기롭게 '은퇴할 때까지 쓰는 드라마는 무조건 예고편이 나오게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이번에 실패했다. (웃음) 정말 호기롭게 생각했다니까. <사랑아 사랑아>를 할 땐 극 중반이 지나니 일주일에 한 번은 쉬게 됐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끝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더라."

강: "이야기가 계속 바뀌니까 매회 새로운 드라마 같았을 거다."

정: "(고개를 끄덕이며) 매회가 1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엄청 투덜대기도 했다. 진짜 힘이 들었던 것 같은 게, 이상하게 마지막에 잠이 그렇게 오더라. 한 시간 (대본) 쓰고 소파 누워 30분 자고. 묘한 느낌이었다. 많이 혹사했던 것 같다."

- 그래도 '정통사극'으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을 것 같다.

정: "그동안 좋은 사극이 많았지만 나는 왜 몰입하지 못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있어서였다. '만약 쓴다면 나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정통사극을 쓰는 선배님들이 존경스러워졌다. 만만한 산이라 생각했는데 해보니 정말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수천 명이 있는 거잖나.

일단 기획의도에 충실하려 했다. 1, 2회 반응 보고 나온 평들을 보니 시청자가 우리의 방법을 지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이렇게(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1, 2회 반응이 안 좋았다면 우리도 흔들렸을 것 같다."

강: "기대도 있었지만 사실 불안감이 컸다. 한정된 시청층 에 '정통사극은 어렵다'는 인식, '트렌드와 어긋나는 거 아니냐' 하는 인식…. 하지만 분명히 이걸 원하는 사람이 있을 가라 생각했다. 그리고 반응을 보니 맞았던 거다. '기획의 승부'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대하드라마 다시 하라고? 더 내공 쌓여야 할 것 같다"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 정도전은 50부 내내 '대업'을 부르짖었다. 마지막엔 '꿈을 꾸라'고 했고. 작가로서, 연출자로서의 '대업'은 무엇인가.

강: "뭐, 한 세상 잘 살다 가는 거다. 뭐. 언제까지 드라마 연출을 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건 없다."

정: "아마 다음 작품은 나에게 굉장한 위기가 될 거다. 3개월 전에 강병택 PD가 '넌 어쩔 거냐, 너 앞으로 3년 작품 못한다'고 했을 때 호기롭게 아니라고 했는데, 진짜 그 말이 맞다. 그동안은 다 도전이었지만, 이젠 뭘 해도 부담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긴장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한 말들을 겸손하게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 조그마한 성공에 도취돼 떠드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다.

개인적인 대업이 하나 있다. <사랑아 사랑아>를 공동 집필한 작가에게 한 말인데,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작가 최초로 예능에 출연하는 작가는 되고 싶다'고. 소설가나 영화감독은 막 나와 이야기하는데, 대중에게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 드라마 작가들은 집필실 안에만 있지 않나.

이번엔 섭외가 들어왔지만 안 나갔다. 가벼운 사람으로 보일까봐. 지금은 조심스럽다. 당장은 열심히 더 좋은 드라마를 하고, 어느 순간 시청자가 '쟤 정도는 나와서 떠들 만 해'라고 평가할 때 방송인의 삶을 살 거다. 성격상 남을 끌어내리는 건 잘 못한다. 그래도 예를 들어 <역사저널 그날> 같은 프로그램에는 영화감독이 나와 이야기하는데, 드라마 작가는 못 나오겠나."

이: "겸손을 떠는 건 아니다. 진짜 드라마 PD로서 잘하고 싶다. 그게 내 목표다. 사실 조연출 딱지를 뗀 게 작년이다. <정도전>은 나에게 정말 정말 큰 배움의 장이었다. 강병택 PD를 보며 다시 처음부터 배울 수 있었다."

- 정현민 작가에게 궁금하다. 다시 정통사극, 대하드라마를 할 생각은 없나.

정: "한 번 해 보니 되게 보람 있다. 보조작가들에게도 '드라마 하면서 좋은 일 하고 있지 않냐?'고 말한 적이 있다. (웃음)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만큼이나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때 전율이 온다. 내가 상당히 좋은 일을 하는 느낌도 들고. 아마 모든 제작진이 마찬가지 보람을 느꼈을 거다. 언젠가 방송국에서 기회를 주면 하겠지만, 당장 다음에 하라고 하면 모르겠다. 더 내공 쌓은 다음 기회를 준다면 할 용의가 있다. 사명감을 갖고 쓸 수 있는 드라마니까."

- 마지막 질문이다. 도식적이긴 질문이긴 하지만. (웃음) 제작진에게 <정도전>이란 무엇인가.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이: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뜻 깊었다. 또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드라마 PD로서 좀 더 완성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

강: "두 가지다. 일단 적재적소에 필요한, 좋은 사람들과만 일할 수 있어 좋았다. 함께한다는 게 뭔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드라마를 말로는 '협업'이라 하지만 실제론 갈등도 있고 싸움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게 거의 없었다. 내 생애 정말 이런 드라마를…이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하나, 부담으로 작용했던 게 있었다. 드라마를 하면서 모셨던 선배님이 김재형 PD(<용의 눈물>을 비롯해 <왕의 여자> <서궁> <여인천하> 등을 연출한 한국 사극계의 거장. 2011년 타계했다-기자 주)였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 분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그 분을 흉내 내다 만 거라고 보이진 않을까' 많이 걱정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 분께 떳떳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유동근은 김재형 PD에게는 양아들 같은 존재였다. (유동근이) 사모님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는데, 그 분께서 '정말 잘 봤다'고 하셨다더라. 김재형 PD께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정: "간단하다. 이제부터 내가 잊어야 할 것. 빨리 비울 거다. <사랑아 사랑아> 같은 경우에도 8개월 했는데 2주 뒤에 주인공 이름이 잠시 생각나지 않더라. (웃음) 좀 멋있게 얘기하자면 <정도전>은 내가 부담 없이 쓴 마지막 드라마다. 그래서 이젠 내가 잊어야 될 드라마고, 내가 넘어야 할 산이다. 이젠 부담이 생긴다." 

==='정도전'의 세 남자, 강병택 PD-정현민 작가-이재훈 PD를 만나다===
①-"겉돌았던 정도전이 우리 드라마 주인공인 이유?"
②-"낙마사고 당한 선동혁, 전투신 표정 가장 좋았다"
③-'정도전' 속 화제의 명장면, 어떻게 만들었나 알고 보니
④-"매회 1회 같았던 '정도전', 이제는 넘어야 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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