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상영가를 받은 <미조>와 영화 속 욕설로 청소년불가 판정을 받은 청소년 소재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제한상영가를 받은 <미조>와 영화 속 욕설로 청소년불가 판정을 받은 청소년 소재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 마운틱픽쳐스&상상마당


'제한상영가 판정에 블러(Blur·이미지의 초점을 흐려 뿌옇게 만드는 것) 처리까지 했는데도 또 다시 제한상영가가 나왔다. 불복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내 개봉을 포기하겠다.'

지난 3일 영화 <미조> 제작사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 결과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미조>는 제한상영가를 받은 후 재심의를 요청했으나 영등위는 다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블러 처리 되었지만 부녀간의 성행위가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등 일반 사회 윤리와 어긋난다"는 게 이유였다. 

영등위는 심의 기관이 아닌 검열기관?

이 때문에 7월 3일로 예정했던 영화의 개봉은 무산됐다. 만일 이의 신청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경우, 국내에서 이 영화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국내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는 개봉이 불가능하다.

제작사 측은 영등위가 말도 안 되는 심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존에 나온 <올드보이> <피에타> <뫼비우스> 등에서 비슷한 설정이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미조>에 대해 납득하기 힘든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영등위 심의 결과에 대한 비판은 배급사의 인식만이 아니다. 영화계 시각도 비슷하다. 영등위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에 영등위가 심의가 아닌 검열기관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18세 이상 성인이 봐도 되는지 여부를 몇 명의 심의위원들이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코미디'라며 영등위의 심의에 냉소적 반응을 보내고 있다. 영등위 심의가 계속 구설수에 오르면서 영등위 해체와 대안 심의기관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개봉한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역시 영등위에 대한 불신을 크게 만들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점원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정작 청소년들과는 만나지 못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욕설 등이 문제가 돼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린 게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이 볼 수 없는 영화가 된 것이다.

이에 감독이 예전에 다른 작품으로 영등위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어 보복당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현실 문제에 깜깜한 사람들이 자기들 기준으로 심의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등급심의에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다. 

무리한 제한상영가 판정, 무효 판결에도 감정적 소송

 영화 <미조>에 대해 제한상영가를 내린 영등위의 등급판정

영화 <미조>에 대해 제한상영가를 내린 영등위의 등급판정 ⓒ 영상물등급위원회


영등위의 심의가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영화계 일각에서는 등급을 매기는 심의가 정치적 바람을 타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시대의 유물인 검열과 가위질의 악령이 21세기에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영등위는 각계의 추천을 받아 구성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압력에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영등위 심의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지적이다.

최근 논란이 된 영화들의 심의와 관련해 영등위의 한 관계자는 "영화등급분류 소위원회의 경우 7명이지만 다수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등급에 대한 시각이 다른 경우 영화적으로 넓게 봐야한다는 의견도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많으면 소수의견으로 묻힌다"고 전했다.

"심의는 과반 출석이 기준인데, 등급기준에 대해 2:2가 나오더라도 소위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기에 사실상 3:2나 다름없다. 물론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표결로 들어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조>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도 그런 경우라고 보면 된다."

또한 인적 구성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1년 임기의 소위원회 구성은 영등위원장의 영향력이 크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영등위 규정에 따르면 '소위원은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각 분과별로 5~10인 이내로 위원장이 위촉'하도록 돼 있다. 위원장이 소위 구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등위는 지난 2011년 박선이 위원장 취임 이후 더 문제가 커졌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 등 제한상영가 판정이 늘어나면서 영화계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보수 언론 기자는 "박 위원장 등장 이후 영등위 심의에 문제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한 유명 중견감독은 "박 위원장이 기자 초년 시절에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보였으나 영등위원장에 오르고서는 정권에 코드를 맞추려는 듯하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영화감독조합은 "박선이 위원장 취임 이후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 사례가 급증했다"며 지난해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 상영을 막기 위한 영등위의 '노력'은 과연 영등위가 등급분류기관이 맞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표적 사례다. <자가당착>은 제한상영가 처분에 불복한 감독들이 낸 소송에서 1~2심에서 승리했음에도, 영등위가 끝까지 불복해 대법원까지 간 상태다. 이 때문에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영등위가 감정적으로 무리한 법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등위 없애고 선진국처럼 민간심의기구로 대체해야"

영등위가 검열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영등위를 민간심의기구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다.

영화평론가협회장인 동국대 민병록 교수는 "영화 선진국들은 자율 심의제를 하고 있는데, 정부기관에서 심의한다는 것은 미개한 상황이라며 자율적 민간심의기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또 "영화 비전문가들이 심의위원 참여하던데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보인다"며  "외국의 심의위원들과는 달리 우리는 정치나 정권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면이 많다"고 등급 심의위원 구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영화 <폼페이>포스터. 키스하는 장면(왼쪽)이 영진위 심의 과정에서 유해 판정을 받아 바뀌었다.

영화 <폼페이>포스터. 키스하는 장면(왼쪽)이 영진위 심의 과정에서 유해 판정을 받아 바뀌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심의와 관련해 민 교수는 "포스터 키스 장면을 문제 삼던데 애들이 보는 드라마에도 키스 장면이 나온다"면서 "창작의 자유를 억제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자율심의로 등급규정을 바꾸고 제한상영가 등급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업영화는 수익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예술영화는 다르다"며 "자유로운 창작을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 실험영화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심의에 대한 세부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곽영진 영화평론가는 "한국영화가 성장하면서 민간심의 자율기구 분위기가 성숙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등위가 부산에 내려가면서 지역 편중성이 커졌다"고 지적하고 "법규에 성별·지역·연령별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 만큼 민간 심의기구를 통해 관 주도의 심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제한상영가 부정하기보단 출구전략 찾아야"

이에 대해 영등위의 한 심의위원은 "등급 심의는 제도적으로 안정된 기구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정권이나 정치적 영향으로 바뀌면 안 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해서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는 출구전략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어느 정도 인정하고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이어 "박선이 위원장도 제한상영관에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예술영화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 독립예술영화관 실무자들 모임에서 예술영화관들을 제한상영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면서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선이 위원장 연임설 '솔솔'
"영등위원장 연임 사례 없다"

 지난 6월 영등위 주관으로 열린 영화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

지난 6월 영등위 주관으로 열린 영화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 ⓒ 영상물등급위원회


지난 6월 30일로 5기 영등위 구성이 끝난 상태에서 차기 위원 선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화부는 "현재 4배수 추천을 받은 상태로 이달 말까지 선임을 끝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등위원은 대한민국예술원회장 추천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위촉한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위원회에서 호선해서 선출한다.

현재로서는 박선이 위원장이 연임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최근 '언피아'로 불리는 언론인 출신들이 영화기관을 장악하는 흐름과 연장선상에서 보는 시선도 있다. 영상자료원과 영등위를 조선일보 출신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영진위원장도 동아일보 출신 내정설이 나오면서 영화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다.

부산 이전 과정에서 박 위원장이 거주지를 이전한 것도 연임 예상을 부추기고 있는 요인이다. 부산으로 이전한 다른 기관장의 경우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임시 거처를 두고 서울을 오가며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6일 서울에서 개최된 '영화 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도 박선이 위원장의 연임을 위해 연 것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한 독립영화 감독은 "욕설 등을 이유로 청소년 대상 영화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부여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라며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을 목적에 둔 행사나 다름없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영등위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6월 토론회는 4월에 개최하려다 세월호 참사로 연기된 것으로 위원장 연임 의도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위원장의 거주지 이전은 출퇴근 문제와 개인적인 사유 등이 있는 것으로 다른 기관과 같은 기준에서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영등위원은 정부의 선임이 이뤄지기까지는 누가 될지 알 수가 없다"며 "로비를 한다거나 내정이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영등위원장의 경우 1기 위원장만 연임했다가 중간에 그만둔 경우가 있을 뿐 이후 연임한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문화부 관계자도 "내정설은 아마 추천 못 받은 분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다만 "규정상 연임할 수 있다고 나와 있고, 횟수 제한은 없으나 지금껏 3번 연임한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선이 위원장은 4기에서 부위원장을 맡았고, 5기에는 위원장으로 연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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