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지난달 20일 서울 홍대에 위치한 스트레인지 프룻(Strange Fruit)에서 열린 샤이 네이처(Shy Nature)의 공연을 보며 문득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가 떠올랐다.

고작 두 문장, 짧은 언어 속에 커다란 울림을 담고 있는 고은의 시처럼 샤이 네이처의 음악에는 단순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깊이가 있었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울창하지만 거칠지 않은, 풀냄새 가득한 오후의 숲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이랄까. 걷다 보면 미처 보지 못한 그 꽃을 발견할 것만 같은.

 지난날 서울을 방문한 샤이네이처 강남의 한 거리에 서 있다

지난날 서울을 방문한 샤이네이처 강남의 한 거리에 서 있다 ⓒ shy nature


샤이 네이처란 밴드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지난해 4월 런던을 기반으로 결성한 샤이 네이처는 4인조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윌리엄 블래커비(William Blackaby, 28세)가 노래와 기타를, 개리 살로만(Gary Saloman, 29세)이 기타를, 매튜 패이즐리(Matthew Paisley)가 드럼을, 마지막으로 루치아노(Luciano, 27세)가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다.

'얼터너티브'를 지향한다고는 하나 그들이 보여주는 음악의 색깔은 규정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에 가깝다. 누군가는 그들의 음악을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나 케이트 부시(Kate Bush)에 비교하기도 한단다. 샤이 네이처의 데뷔 트랙인 '데들리 신(Deadly Sin)'은 영국 음악잡지 < DIY Magazine >으로부터 "몽환적 기타 사운드와 코러스의 향연(flurry of starry-eyed guitars and wild-eyed choruses)"이란 평을 받으며 BBC 라디오의 전파를 탔다.

서울에서 갖는 첫 해외공연, 작은 공연장이 꽉 찼다

지난해 말 발매한 동명의 데뷔 EP <샤이 네이처(Shy Nature)>가 평단의 호평을 사며 샤이 네이처는 영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밴드 결성 후 활동 시기가 1년이 채 안 되는 탓에 아직 투어공연은 걸음마에 가깝지만, 올해 초 싱글 '라이 백(Lie Back)'을 발표하면서 국내외 투어에 나섰다. 지난달 20일 서울에서 열린 그들의 공연은 샤이 네이처의 첫 번째 해외공연이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다소 심각한 얼굴로 연주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실제로 본 샤이 네이처는 영국 시골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순박한 청년들이었다.

공연 시작 두 시간 전인 오후 7시부터 공연장에 모여 리허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영국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는 등, 잡담을 나누며 킬킬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친구들 같았다. 한국 친구의 도움으로 구매했다는 '송골매, 2NE1, 지드래곤 등 국내 뮤지션들의 CD를 보여주며 "한국 음악은 어떤지 기대된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샤이네이처가 국내의 한 음반가게에 들러 한국앨범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샤이네이처가 국내의 한 음반가게에 들러 한국앨범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 fake virgin


이날 공연은 소규모 어쿠스틱 콘서트 형태로 이뤄졌다. 샤이 네이처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빙 둘러앉는 식으로 무대가 마련됐다. 하나 둘 보이는 외국인 관객을 포함해 이날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은 40여 명에 불과했지만 빈 공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꽉 찬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사실 뮤지션과 관객이 서로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기에 최적의 인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샤이 네이처 공연에 앞서 싱어송라이터 모리(Morrie)가 오프닝 무대를 마련했다. 모리의 나직하고 달달한 음성이 공연장을 물들여 갈 무렵, 샤이 네이처의 본 공연이 시작됐다. 본래 베이스를 담당하는 루치아노가 개인적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으나, 본래 3인조 밴드인 양 빈틈없는 사운드를 보여줬다.

첫 번째 EP의 수록곡을 비롯해 'Lie Back', 얼마 전 발매한 싱글 '쉬 컴즈 쉬 고즈(She comes she goes)' 등 1년간 그들이 쌓아온 흔적이 약 60분가량 부드럽게 흩어졌다. 마지막 순서로 데뷔곡인 'Deadly Sin'을 연주했고, 앵콜곡으로 다음 EP에 실릴  '투나잇 이즈 온 유어 사이드(Tonight Is On Your Side)'을 공개하기도 했다.

어쿠스틱을 콘셉트로 한 이날 공연은 전반적으로 안정적 전개를 보였다. 물론 어쿠스틱 자체의 달콤함과 편안함도 공연의 묘미였으나 기존 앨범에서 선보였던 어떤 '원시적 순수함'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이날 공연만으로 "샤이네이처의 공연을 제대로 봤다"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제프 버클리를 연상케 하는 윌리엄의 섬세한 보컬과 꾸밈없는 개리의 기타 사운드, 나아가 다양한 소규모 타악기들과 한몸이 되어 분위기를 주도한 매튜의 재간은 한국팬들의 마음 속에 샤이 네이처란 이름을 새겨넣기에 충분했으리라.

생업 따로 있는 멤버들 "사람들과 즐기고자 음악 한다"

 지난달 20일 홍대 클럽 스트레인지 프룻에서 샤이네이처가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지난달 20일 홍대 클럽 스트레인지 프룻에서 샤이네이처가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 fake virgin


무엇보다 공연 자체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밴드 문화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뮤지션들의 삶은 이곳의 그것보다 조금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샤이 네이처는 "영국에서도 음악만 하면서 먹고 살기는 정말 힘들다"고 영국 신생 밴드들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밴드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일상적으로 음악을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더욱 심하고 재능을 인정받기가 어려울는지도.

실제로 샤이 네이처의 멤버 모두 수익을 충당하기 위해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개리는 초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재직 중이며 루치아노는 영업 업무를 맡고 있다. 합주나 연습은 런던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빌리기도 하지만 비교적 방음이 잘 되어 있는 매튜의 방에서 주로 한다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게 좋아서 음악을 한다"는 샤이 네이처.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그들에게는, 그들의 음악에는 꾸밈없는 순수함과 일상의 열정이 묻어 있었다.

밴드에서 작곡을 담당하는 윌리엄 역시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샤이 네이처라는 이름 역시 특별하고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샤이(shy)'와 '네이처(nature)'라는 단어가 좋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멋쩍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없는 자연스러움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샤이 네이처란 마치 완벽한 이름처럼 느껴졌다.

오는 9월 새로운 EP 발매를 앞두고 있는 샤이 네이처는 올 여름 영국 내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새로운 투어에 나설 예정이다. "다시 한 번 방한해 어쿠스틱이 아닌 '풀 일렉트릭 사운드(full electric sound)'로 함께 하고 싶다"는 샤이 네이처와의 재회를 기약하며 내려다 본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뮤직웹진 M(http://webzine-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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