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은 친구들>의 포스터.

영화 <좋은 친구들>의 포스터. ⓒ 오퍼스 픽쳐스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과정과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선의는 그 자체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까. 우리는 종종, 의도와 상관없이 선의를 베풀지라도 상황과 어떤 이유에 따라 상대에겐 상처가 되는 일을 경험한다.  

사실 인간관계에서의 상처는 필연적이다. 친구사이든, 부부사이든 마냥 행복하고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바꿔 말하면, 남이 아니니까 서로 상처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관계에 있어서 상처는 어쩌면 더 두터운 믿음으로 가는 통과의례일 수 있다.

영화 <좋은 친구들>은 바로 이 '관계'와 '믿음'을 중심 소재로 잡았다. 표면적으로는 20년 지기 우정을 간직한 세 남자의 이야기다. 중학교 졸업식을 빼먹고 자기들끼리 산으로 졸업 여행을 떠났다가 조난을 당하며 서로의 우정도 재확인했던 이들이 성인이 돼서도 그 관계를 이어나가며 겪는 일을 그렸다.

결핍이 있는 세 남자들의 우정...배우들 호흡 돋보였다

 영화 <좋은 친구들>의 한 장면.

영화 <좋은 친구들>의 한 장면. ⓒ 오퍼스 픽쳐스


소방관이 된 현태(지성 분)와 보험설계사 인철(주지훈 분), 그리고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민수(이광수 분)는 저마다 결핍된 부분이 있는 인물이다. 현태는 청각장애인 아내를 맞았다가 사행성 게임방을 운영하는 부모와 등을 지고 살아가며, 인철은 고객을 이용해 보험사를 등쳐먹는 속물이다. 마음씨는 곱지만 사회성이 결여된 민수는 술에 절어 살기 일쑤다.

현태와 현태의 부모를 화해시키고 적당히 자신의 이익도 챙기려던 인철이 민수를 방화 사건에 끌어들이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계획적이었던 범행이 우발적 사고로 이어지고 세 남자의 우정 역시 위기를 맞는다.

<좋은 친구들>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극적 몰입도를 위해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범죄 드라마를 표방하면서도 과감한 액션과 혈투로 치장하는 관성을 빗겨갔다. 최근까지 등장한 한국형 느와르가 대부분 필요 이상의 폭력과 잔인함으로 피로감을 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세 친구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와 주변 인물 간의 이야기로 채워간다. 마치 화학조미료를 최대한 배제하고 성실하게 맛을 낸 반찬으로 식탁을 꾸리는 것처럼 말이다.

캐스팅 면을 보면 살짝 아쉬울 수도 있다. 흔히 극장가에서 말하는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들은 아니니 말이다. 본래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와 물망에 올랐던 이들이 한발 물러나면서 지금의 진용이 갖춰졌는데, 작품성 면에서 어쩌면 더 잘 된 일이기도 하다.

감정 변화 폭이 크지 않은 현태와 겉으로 내지르는 인철, 다소 모자라 보이지만 순수함을 간직한 민수의 모습을 세 배우가 잘 표현해냈다. 예상 외로 세 배우의 '케미'(어우러짐)가 좋다. 언론시사회 직후 "그 어떤 영화 현장보다도 즐겁고 좋았다"고 입을 모았던 이들의 말이 사실인 듯하다. 

신예 이도윤 감독의 집중력, 관객들의 선택 받을까

 영화 <좋은 친구들>의 한 장면.

영화 <좋은 친구들>의 한 장면. ⓒ 오퍼스픽쳐스


단편 <우리 여행자들> <이웃> 등으로 알려진 이도윤 감독은 <좋은 친구들>로 장편에 도전장을 냈다. 감독의 변을 통해 그는 <좋은 친구들>의 모티브를 중국의 설화집 '태평광기-의기' 중 파경 편에서 따왔다고 했다. 요즘 들어 부부사이의 갈라짐을 의미하는 파경이라는 단어가 본래 위 설화집 내의 '파경중원(破鏡重圓)'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나왔다. '깨진 거울이 다시 둥글게 된다'는 뜻으로 본래 무너진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이도윤 감독은 영화 곳곳에 관객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야하는 복선을 잘 깔아놓았다. 자칫 불친절해 보일 수도 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앞서 의미 없어 보였던 장면과 인물의 대사들이 힌트였음을 깨닫는 쾌감도 얻을 수 있다. 흔들리는 인물들의 관계를 엿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감정에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부산을 배경으로 했으나 영화 속에서 사투리 등의 지역적 특색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 역시 감독의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적 배경을 고려해 지역 색을 담기보다 오히려 이야기 자체와 인물의 심리 변화에 집중하며, 영화 <친구> 등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과의 관습적인 비교에서 벗어날 여지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친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국 남성 느와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친구>(2001)의 속편이 <친구2>(2013)로 나오기까지 했지만, 한국 범죄 드라마 혹은 느와르의 계보를 이을 작품은 <친구2>보다는 <좋은 친구들>이 적합하다고 본다. 최소한의 폭력과 혈투로 여성 관객 역시 환호할만한 진한 남성물을 만들어냈다.

영화를 보면 소주 한 잔이 생각날 게 분명하기에 웬만하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모처럼 질 좋은 '유기농 범죄 드라마'를 만난 것 같다.

좋은 친구들 지성 이광수 주지훈 이도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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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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