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제목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푸어맨까지 합쳐 위 사진의 다섯명을 지칭한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제목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푸어맨까지 합쳐 위 사진의 다섯명을 지칭한다. ⓒ 스튜디오 캐널 UK


영국 비밀 정보국(서커스)의 국장 컨트롤(존 허트)은 짐 프리도(마크 스트롱)에게 서커스 내부에 잠입한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헝가리 파견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러시아 조직에게 짐 프리도가 살해되자, 컨트롤은 모든 책임을 지고 서커스를 떠난다.

서커스에서는 컨트롤의 가설, 내부 스파이에 대한 생각을 비웃고, 은퇴 후 그는 곧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와 함께 서커스를 떠난 스마일리에게 정보국으로부터 내부 스파이를 색출해달라는 요청이 오고, 관객은 곧 컨트롤의 가설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어서 영화는 스마일리가 5명의 고위 관부들 중 한 명인 스파이를 색출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존 르카레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다수의 등장인물과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으로 확실히 쉽게 이해가 가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드러나는 촬영의 방식, 그리고 영화 미술은 영화가 가진 반박할 수 없는 장점이 될 것이며, 전체적인 느낌은 깔끔하면서도 감성적인 영화다.

영화의 첫인상은 이랬다. 차갑고 직물적인 느낌. 영국 특유의 음울한 날씨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색상들로 점철되어 있는 영화는 첩보원이라는 유쾌하지만은 않은 직업군을 대변해준다. 게다가 카메라의 동선은 철저하게 명령에 따라서, 오차없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첩보원들의 특성을 담는다. 광학 렌즈를 사용해 초점의 명확한 이동을 유도하는 방식, 기계적인 움직임들로 영화가 얼마나 체계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감각은 서커스의 건물 구조와 상응하며 카메라의 동선이 나타내는 뛰어난 부분이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한 장면 ⓒ 스튜디오캐널 UK


영화가 프레임을 채우는 방식이 특이하다. 관객이 인물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으며, 부차적 인물들의 얼굴이 화면 밖으로 잘려서 장면이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요 인물을 잡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영화 특유의 긴장감이 감돌 때면 카메라는 마치 자신도 첩보원이 된 것 마냥 조심스럽다.

대상을 명확하게 비추지 않는 것에서 묘한 긴장감이 배어나오고, 이것은 관객들에게 시야를 확보시키지 않으려는, 다시 말해 관음의 특권을 향유하도록 만들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스파이와 첩보원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영화에서 한 명 혹은 다수의 인물이 상대편을 향한 관음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는 그와 같은 관음의 시선을 찾아볼 수 없다.(서커스의 또 다른 요원 리키 타르는 건너편 건물에서 이리나라는 여성을 감시하지만 이내 그녀도 그를 보게 되므로 관음의 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예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이 이 영화로 원작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가 그들에게 보내는 동정과 그들의 품위를 지켜주는 연출 등이 잘 말해주듯이 감독은 이야기에 최선의 배려를 다한다. 촬영과 미술에서 뛰어나던 영화는 베스트셀러로 공인된 원작에 힘입어 내용면에서도 물론 뒤지지 않으며, 게리 올드만과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화려한 액션을 배제하고 첩보원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들이 일을 하면서 얻는, 목숨을 걸고 일하는 한 명의 심부름꾼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좌절과, 첩보원들 사이의 우정과 배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에 충성하는 인간들이라는 특성이 나온다. 그 점에서 스마일리의 말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소, 우리에겐 그럴 가치가 없다는 걸..."은 기억할만한 대사다.

촬영, 미술 그리고 내용과 연기에까지 탁월한 이 영화에서 다소 걸리는 지점은 편집이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간극을 영화는 무엇으로든 메우려 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여러 장의 카드를 뒤집어 놓고 하나씩 뒤집어 가며 짝을 찾는 놀이를 할 때의 느낌과 유사하다. 한 장의 뒤집고 다른 한 장을 선택해서 뒤집었을 때 같은 무늬가 아니면 우리는 다시 그 카드를 덮는다. 그리곤 실패한 카드의 무늬도 기억해가며 다른 카드를 뒤집어본다.

이 영화가 짜임새를 맞추어 나가는 방법도 이렇다.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자유자재로 교차하는 영화는, 인물들에 따라 여러 가지 정보를 던져 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짝을 끼워 맞춰야 한다. 첩보물의 특성일 수도 있겠고 나름의 개성도 되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몇몇 장면들은 전환하기 전과 후의 간극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보인다. 그래서 영화가 살짝 튀는 느낌이 있으며,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내려고 하는 노력은 보이나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정말 멋진 시퀀스라고 생각한다. 유쾌한 음악을 바탕에 깔면서 스파이들이 가지는 비애, 모든 시스템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오는 희열을 동시에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조지 스마일리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영화가 주는 분위기에 유념하며 보면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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