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주말드라마 <끝없는 사랑>에서 아버지 한갑수(맹상훈 분)의 죽음 이후, 최전방 부대에 강제로 징집 당한 청년 광훈(류수영분).

SBS 주말드라마 <끝없는 사랑>에서 아버지 한갑수(맹상훈 분)의 죽음 이후, 최전방 부대에 강제로 징집 당한 청년 광훈(류수영분).ⓒ SBS


40부작 SBS 주말드라마 <끝없는 사랑>이 시작되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비장하다. 부산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두 형제를 키우던 아버지 한갑수(맹상훈 분), 하지만 그의 작은 아들 한광철(정경호 분)과 서인애(황정음 분)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용의자들을 피신시켜 주는 바람에 비극의 타깃이 된다.

한때 안기부에서 일했지만,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고기잡이 배 선장이 된 한갑수. 사건을 추적하여 찾아온 악연 박영태(정웅인 분)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한 협박으로 인해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갑수가 죽은 후 큰 아들 한광훈(류수영 분)은 강제 징집을 당하게 되고, 잡혀가던 서인애를 구하려고 애쓰던 작은 아들 한광철은 차에 치인 채 바다로 실종되고 만다. 서인애 역시 미성년자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물고문 등 갖은 고문 끝에 감옥에 갇혀 버리고 만다. 대통령이 되고 싶던 한광훈과 미국이라는 꿈의 나라를 선망하던 소녀의 희망은 시대의 아픔 속에 갈가리 찢겨 나간다.

1980년대의 비극, 드라마의 배경이 되다

주인공들을 파멸로 이끌어 들이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1980년대 초의 대표적인 반정부 사건이다. 80년대 광주 항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미국이 사주했다 하여, 젊은 대학생 등 지식인들이 미문화원을 찾아가 시위하고, 상징적 징벌의 의미로 방화를 시도했던 사건이다. 바로 그렇게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만났던 역사적 사건이 <끝없는 사랑>의 배경이 된다.

악역인 박영태가 전화를 거는 방안에 걸려있는 사진 속 대통령은 전두환이다. 그리고 한갑수와 박영태가 만나게 된 인연은 바로 그들이 함께 안전기획부라는 정부의 정보 시설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이다. 바로 그 인연, 즉 박영태에 대한 기억 때문에 한갑수는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한갑수의 아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반정부적 의식을 지닌 대학생들을 처리했던 방식으로 유명한 '강제 징집'이요, 그가 배치 받은 전방 부대의 억압적 훈련 방식은 그 강제 징집 받은 학생들이 '의문사'로 이어졌던 비극의 역사들이다.

드라마 속 미국은 방화사건의 대상이자, 서인애가 자신의 복수를 위해 꿈을 꾸는 드림월드의 양면성, 즉 80년대 우리가 겪었던 미국의 이중적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애가 의지하는 파란 눈의 신부님의 모습도 이미 우리가 80년대의 역사에서 마주쳤던 인물의 가상 캐릭터다. 우리 중 누군가가 겪고 살아왔던 시대가 어느 틈에,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 80년대는 역사적 존재가 되었다.

극 중 80년대의 그것들은 낯설지 않다. 정보부의 벽을 장식하는 대통령의 얼굴, 그 앞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권력의 그림자, 그의 비리를 알아서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꿈을 향해 달려가던 젊은이들이 빠져드는 운명의 구렁텅이. 벽에 걸린 대통령의 사진이 전두환이 아니라, 박정희라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역사다. 우리의 근대사는 결국 80년대이든 70년대이든, 막상 이렇게 드라마화 되고 보니 '독재'가 내재화 되었던 억압적 모습에 있어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끝없는 사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야망의 세월>(1990년)을 필두로 해서, 70년대의 억압적 역사를 배경으로 했던 작품들과 <끝없는 사랑>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대적 사건 혹은 시대적 아픔으로 인해 '부재'하게 된 부모님 세대,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자식 세대,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결국은 '복수'를 하고, '성공'을 성취하는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의 배경을 단지 좀 더 현재에 가까운 80년대로 바꾸었을 뿐이다.

한광훈과 한광철은 공부를 잘 하는 아버지의 촉망받는 엘리트 형, 그런 형과 달리 말썽만 피우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진국인 동생이라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드라마의 구도를 고스란히 이어간다. 더구나, 형이나 동생이나 비극적 운명에 빠져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하는 건 또 어떻고. 그런데 그 여자가 형을 사랑하고, 그것이 형과 동생의 애증과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한다는 점 역시 우리가 익히 보던 드라마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끝없는 사랑>의 80년대는 무척이나 고유한 듯하면서 동시에 무척이나 진부하다. 박영태의 사무실에 걸린 대통령 사진을 전두환에서 박정희로 바꾸어도 그리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이는 <끝없는 사랑>의 클리셰는 조성모의 애절한 OST의 회고적 분위기와 함께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경험했던 그 드라마들을 복기하게 만든다.

과연 이 드라마의 80년대가 이제는 역사성을 띤 그 시대를 유의미적으로 회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만들어져 왔던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와 그를 둘러싼 운명의 장난을 다룬 드라마의 그럴 듯한 배경으로 소비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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