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이힐>에 출연한 배우 차승원.

영화 <하이힐>에 출연한 배우 차승원 ⓒ YG엔터테인먼트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보름달은 초승달로 기울고, 다시 차오른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마초성과 강한 남성성을 대표하는 배우 차승원의 이번 선택을 두고 던질 수 있는 표현이지 않을까. 의외라는 반응을 무릅쓰고 차승원은 장진 감독의 <하이힐>을 통해 스스럼없이 여성성에 자신을 맡겼다.

강한 남성성을 풍기며 범인을 일망타진하는 강력계 형사 윤지욱. 그러나 누가 예상했을까. 누구보다 여자가 되고 싶어 남성을 버리려 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는 걸 말이다. 트랜스젠더를 원하는 형사 역할을 차승원이 맡았다는 사실 또한 이 극과 극의 대비를 더욱 강조하는 한 수라고 할 수 있겠다.

"장진 감독이 대본을 줄 때 성 소수자의 비중에 대해선 많은 얘기를 안 했어요. 다만 윤지욱이 한번 결혼에 실패했고 아이가 있다는 설정만 있었죠. 그 점은 이해가 안 됐어요. 트랜스젠더라면 결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상의 후에 그 설정은 뺐죠.

캐릭터를 맡아서 그게 사람들의 공감을 사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배우는 혼란에 빠집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시나리오를 접할 때가 있는데 일단 배우는 최대한 캐릭터에 접근해서 관객을 그럴싸하게 속여야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견뎌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복잡한 내면 갈등을 어느 정도 수위까지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죠. 그렇다고 제안에 여성성이 강하게 있냐고요? 그렇게 보지 마세요!(웃음)."

차승원이 여자가 된 이유..."익숙한 길로 가기 싫었다"

 영화 <하이힐>에 출연한 배우 차승원.

ⓒ YG엔터테인먼트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고, 이번 작품까지 세 번째 호흡을 맞췄지만 장진 감독과 차승원의 목표는 하나였다. 전작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것. "친한 사람 앞에서 연기하는 게 사실 불편한 일"이라는 차승원은 "<하이힐>을 하면서 장진도 나도 기존의 작업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하이힐>이 다룬 소재, 즉 한국 사회에서 금기일 수도 있는 성전환에 대해 차승원은 전향적이었다. 영화의 홍보 과정에서 오히려 그 부분을 숨긴 게 아쉬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예고편을 무슨 거친 느와르처럼 포장했는데 굳이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라면서 "내 영역은 아니지만 관객 입장에서 악한을 일망타진하는 줄 알고 보면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어찌 됐건 차승원은 선택했고, 충실하게 제 몫을 해냈다. 그는 "막상 하이힐을 신었을 때 의외로 괜찮았다"며 "모델 일을 오래 해서인지 이상하게 걷는데 불편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해서도 "태초에 하느님이 사람에게 양성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여성과 남성 혹은 제3의 성을 준 것도 신의 일"이라고 했다. 

"사람에게는 갈수록 익숙한 길로 가려는 습성이 있잖아요. 나이를 먹으며 그게 좀 싫어지더라고요. 영화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보는 것이기에 기대심이 있기 마련인데 그걸 충족 못 하면 안 되죠. 저도 극장에 가봐서 알지만 기대치에 못 미치는 작품을 볼 땐 욕이 나오거든요.(웃음) 관객에게 여태껏 봐온 차승원이 아닌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관객이 기대할만한 작품을 택하는 게 제 몫인 거죠."

모델 차승원이 배우가 되기까지..."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만족시키고 싶었다"

 영화 <하이힐>에 출연한 배우 차승원.

ⓒ YG엔터테인먼트


매번 치열하지 않은 적이 없다지만, 차승원은 <하이힐>을 통해 거친 액션을 소화하면서 진화했다. 삼각근육이 파열되는 등 본인이 진단하기에 전치 8주 정도의 부상도 당한 건 약과였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 번 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한 계기가 됐단다.

"나이가 들면 서사가 중심인 작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여태껏 그랬고 전 주로 캐릭터 플레이를 하는 배우였던 것 같아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원했고, 그걸 관객에게 각인시키고 인정받고 싶은 거죠. 앞으로도 그렇게 접근할 것 같습니다. <최고의 사랑>을 찍은 뒤 일본에서 연극을 하고 작품을 쉴 때가 있었는데 그때 배우에 의문을 품었거든요.

고할 것인가 스톱할 것인가. 역시 배우는 작품으로 부딪히며 성장하는 거 같아요. 아무리 쓰레기 같은 작품을 하더라도 그걸 좋아하는 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배우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나이를 먹고 생각이 많아진다면서 좀 쉬고 그런다고 연기력이 일취월장하진 않아요."

인색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기에 '모델 출신'이라는 수식어를 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활동하는 모델들의 머나먼 선배기도 한 차승원은 언제부턴가 배우라는 수식어가 더 자연스러워졌다. 수십 편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그에게도 전환점이 된 작품이 있었다. 바로 <밀회>의 안판석 PD와 함께한 <장미와 콩나물>(1993)이란 드라마였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계기였어요. 지금 그 작품을 하면 더 사이코처럼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웃음) 그때 안판석 감독님과 무수한 얘기를 했어요. 지금 관점으로 안 감독님은 PD가 아니었어요. 하나 찍고, 다음 것 찍고 그렇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캐릭터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감독이셨죠. 요즘 말로 오타쿠(마니아) 같은 분이랄까. 안판석 감독님 덕에 대본과 현장의 중요성과 스태프와 유대관계를 맺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갔어요. 그만큼 제게 남는 작품이었던 거죠."

차승원 하이힐 장진 오정세 고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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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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