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임진왜란 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과 현 정치권을 비교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 가능성을 높이 본 황윤길과 달리, 김성일은 일본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하게 받았음에도 이를 부인했다고 한다. 이른바 당시 집권당이었던 동인이었기에, 그 사실을 인정하면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이는 비단 조선시대의 일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의 정략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개진하는 것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었다.

악을 덮기 위해 악을 되풀이 하는 뻔뻔한 사람들

 KBS 2TV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의 서동하(정보석 분).

KBS 2TV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의 서동하(정보석 분). ⓒ KBS


우리가 시청하는 드라마 속에도 자신의 입장에 따라 뻔뻔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은 신문 지상을 통해 어디선가 접했던 경제계, 법조계 인물들의 잔향을 그대로 드리운다. 그리고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논리는 바로 우리 사회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논리다.

KBS 2TV <골든크로스>에서 서동하(정보석 분)는 딸 서이레(이시영 분)가 강도윤(김강우 분)의 동생과 아버지를 죽였냐고 물었을 때,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계속되는 추궁에 기껏 서동하가 인정한 건, 강도윤의 동생을 사랑했었다는 사실만이다. 자신이 이런 일을 겪게 된 건, 마이클 장(엄기준 분)이 한민은행을 집어 삼키려는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곤 마이클을 찾아가 당신이 한민은행을 무리하게 집어 삼키려 해서 이런 사단이 난 거라고 추궁을 하며, 내가 죽으면 당신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협박을 한다. 딸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듯 고백도 해보고, 마이클을 협박도 해보고, 심지어 무릎을 꿇고 강도윤에게 애걸복걸도 하지만, 딱히 시원한 결론을 얻지 못했던 서동하는 마지막 카드로 장인을 찾아간다. 그리곤 자신이 모아놓은 골든크로스 멤버들 앞에서 한민은행 매각은 그 어떤 법적 하자가 없었다며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강도윤에게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하다 그가 돌아서 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경지에 이른 서동하는 카멜레온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인 듯하다. 강도윤 앞에서까지 자신은 결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오히려 네 동생을 사랑했을 뿐이라며 읍소하는 서동하에게 강도윤은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이면 그럴 수 없단 말로 그를 정의 내린다.

하지만 서동하는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반성은커녕 감히 자신을 건드렸다고 호시탐탐 강도윤을 없앨 궁리만 한다. 오히려 그의 측근인 박희서(김규철 분)는 아버지를 기소하려는 서이레를 다그친다. 온실 속에서 자란 네가 아버지의 세상을 아냐고, 자식을 버린 어미가 자식이 싫어서였겠냐고, 자신이 데리고 있으면 굶어 죽일 거 같으니 눈물을 머금고 유기한 것이라며 자신과 서동하의 행보를 대변한다. 사실을 밝혀서 무얼 할 거냐고, 무엇이 달라질 거냐고 당당하게 다그친다.

<골든크로스> 속 세상에 사는 그들이 국가나 개인들 따위는 아랑곳 않고 벌이는 온갖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행각들은 우리가 조우한 사회적 사건들의 데자뷰라서 더 섬뜩하다. 한민은행이란 낯선 드라마 속 은행이 매각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경제 관료와 외국 기업의 앞잡이가 벌이는 행각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사건들을 복기하게 해준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악을 덮기 위해 다시 악을 되풀이하는 서동하와 그것을 돕는 사람들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소름끼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사고방식들이다.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저지르는 짓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유의미한 해결 방식이라고 논리적으로 무장한 그들의 생각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미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버렸다는 박희서의 말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협잡을 그들만의 논리로 설득하려 드는 것이다.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성심성의를 다해 진실처럼 되풀이하는 서동하의 입장을 듣노라면, 순진한 누군가는 그의 말에 감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치 눈물만으로 악어를 오해하듯이 말이다. 지역과 시장을 돌며 친근한 미소를 띠고 노동에 휘어지고 갈라진 손을 덥석 잡아주는 정치인들에게 감동하는 순진한 서민들처럼 말이다.

요즘 드라마들에서 악의 축은 종종 타인에게 공감을 느끼지 못하며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감정에만 충실한 '소시오패스'라는 사회 병리학적 증상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골든크로스> 속 그들을 보면, 그건 개인의 심리학적 증상이 아니라 이 사회의 집단적 정신적 증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적 소시오패스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의 정신심리학적 진단명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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