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희야>에서 영남 역의 배우 배두나가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도희야>에서 영남 역의 배우 배두나가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일본 영화 <공기인형>에 이어 할리우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주피터 어센딩> 등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배두나. 그녀가 신예 정주리 감독의 첫 장편영화 <도희야>를 통해 오랜만에 국내 영화팬들에게 돌아왔다.

<도희야>는 가정 폭력에 홀로 노출된 소녀 도희(김새론 분)와 그녀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외딴 바닷가 마을의 파출소장 영남(배두나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으로 가정폭력, 동성애, 사회적 편견의 부조리한 시선 등을 담담히, 하지만 밀도 높게 담아냈다.

<도희야>의 진가를 가장 처음 알아본 이는 바로 배두나. 첫 신인감독의 이 시나리오에 배두나는 매료됐고, 단박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다음에 <도희야>를 알아본 이들은 바로 프랑스 칸이다. 이 작품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SF영화 찍다 보니, 바닷가 냄새 맡는 '도희야' 끌려"

 영화<도희야>에서 영남 역의 배우 배두나가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도희야' 배두나 "영남이 밤마다 소주를 마시는 것, 제복을 깔끔하게 다림질 하는 것. 그런 디테일이 좋았어요. 말로 설명이 필요 없이 우회적으로 시나리오에 다 표현돼 있는 게 고단수의 글쓰기 같았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되게 만나보고 싶었어요." ⓒ 이정민


- 해외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것 같아요.
"좋은 감독님들의 부름을 받아서 작품을 선택한 것이라 그런 거겠죠. 세계적인 감독님이면 더 그런 인연이 오는 것 같고요. 근데 이번에는 좀 더 특별히 기뻐요. 제가 매니지먼트에 소속이 되지 않은 딱 1년 동안 선택하고 촬영했던 작품이었거든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혼자 선택했는데 이게 정말 좋은지,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할 데가 없었죠. 제 안목에 확신이 없었는데, 언론시사 끝나고 기자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한 시름 놨어요."

- 이번 작품에 노개런티로 참여를 했을 정도로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한 걸로 아는데요. 어떤 점이 좋았어요?
"소설책도 처음 한두 줄, 한 장 읽을 때부터 내가 빠져들 수 있을지 없을지 감이 오잖아요. 근데 <도희야>도 처음 한두 줄부터 좋았어요. 감독님이 쓴 문체 자체가 굉장히 좋았고, 글도 여백이 많아서 좋았어요.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고 탁탁 내놓는데 모든 것이 그려지죠. 영남이 밤마다 소주를 마시는 것, 제복을 깔끔하게 다림질 하는 것. 그런 디테일이 좋았어요. 말로 설명이 필요 없이 우회적으로 시나리오에 다 표현돼 있는 게 고단수의 글쓰기 같았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되게 만나보고 싶었어요."

-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클라우드 아틀라스><주피터 어센딩>을 연이어 할리우드에서 촬영하고 2년 만에 한국영화로 돌아왔어요.
"그린스크린에 들어가서 연기해야 하는 SF영화를 연속 두 편 찍다 보니까 이렇게 작고 친밀하게 찍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애초에 <고양이를 부탁해> <플란다스의 개>처럼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일상적 캐릭터를 좋아해서 더 끌렸어요. 바닷가 냄새 맡으면서 찍는 영화라는 것도 끌렸고요. <도희야>는 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영남보다 약한 배두나"...억누른 감정 터져 나오기도

 영화<도희야>에서 영남 역의 배우 배두나가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도희야' 배두나 "영남은 최대한 자신에 대해서 표현을 안 하고 감추려고 하는 인물이에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장면에서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 영남이 돼 있었기 때문에, 실제 영남이 된 것처럼 화가 나고 치욕스러웠습니다." ⓒ 이정민


- 막상 섬에서 촬영해보니 어땠나요? 바닷가를 바라보는 장면, 조깅하는 장면 등 섬에서의 바다와 바람 등의 풍경이 영남의 고독해보이고 쓸쓸한 느낌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배경은) 여수에서도 배를 타고 30분 들어가야 하는 금호도라는 섬이고요. 저녁 5시가 되면 배가 끊겨요. 촬영할 때 첫날 하루는 '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구나! 절경이구나!'하고 좋았는데, 길어지니까 고립되고 외로운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순천에서도 찍고, 여수, 그리고 금호도로 돌아가면서 찍었는데 촬영하면서 고립되고 외로운 느낌을 스태프들도 다 같이 느꼈어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금호도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한 달 동안 내내 어떻게 참았냐'고도 했어요."

- 파출소장 역할인데, 보통의 영화에서 봤던 굉장히 고압적이고 거칠고 강하게 보이려고 하는 여자 경찰 느낌이 아니더라고요. 경찰대를 나온 엘리트라서 지적인 느낌도 있고, 사생활 문제로 좌천되어서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 그런 것인지...?
"실제 감독님의 친구 중에 경찰대 나와서 젊은 나이에 파출소장을 하는 분이 있어요. 경찰서 아동청소년 부서에 있었던 분인데, 직접 보니 굉장히 차분하고 지적이더라고요. 굉장히 여성스럽고 일상적인 느낌이지, 고압적인 느낌 자체가 없었어요. 거기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 영남이 외딴 섬에 유배가 된 것처럼 좌천된 상황에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도희가 등장합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의 의붓아버지(송새벽 분)와의 갈등이 계속 빚어지고요. 극 중 상황에 푹 담겨 있는 듯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호흡, 눈빛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던데요.
"영남은 최대한 자신에 대해서 표현을 안 하고 감추려고 하는 인물이에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장면에서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 영남이 돼 있었기 때문에, 실제 영남이 된 것처럼 화가 나고 치욕스러웠습니다."

- 영남이 너무 표현을 안 하는 인물이라, 실제 연기를 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았나요.
"정말 외로웠어요. 영남은 처음에 섬에 내려올 때부터 답답함을 안고 내려오는 여자잖아요. 섬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분명히 있었고. 불안하고 정신적인 갈등이 있는 상태인데 그걸 계속 감추고 있는 거죠. 사실 배두나는 영남보다 약하니까 (감정이) 터져 올라오기도 하고, '아 답답해 누가 좀 안아주었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에 들기도 했어요. 마지막에 도희랑 마을을 떠날 때는 다 내려두었는데, 그 전까지 굉장히 답답했어요."

- 소주를 수십 병 사서 1.5리터 플라스틱 패트병에 담아 물처럼 유리잔에 따라 마시는 영남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건 감독님의 디테일. 전 소주를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 장면도 영남의 캐릭터를 파악하기 좋은 소재 같아요. 감독님이 그렇게 소주를 물잔에다가 정갈하게 따라서 마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남자 배우 위주의 한국영화판, 그래서 더 뿌듯해요"

 영화<도희야>에서 영남 역의 배우 배두나가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도희야>에서 영남 역의 배우 배두나가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이번 영화에서는 클로즈업도 많았는데, 메이크업을 거의 안 한 것 같더라고요.
"전 눈화장이나 피부화장은 안 하는 편이에요. 사람이 화가 나거나 하면 눈 색깔도 변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흥분하면 얼굴도 빨개지고 파래지고 하는 사람인데, 화장으로 그걸 감추면 연기에 마이너스라고 생각해요."

- 역할 준비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절대 대본을 먼저 외우지 않아요. 현장에서 상대배우가 말할 때 그 충격으로 연기를 합니다. 이번에 연기할 때, 실제처럼 어이없었고 황당했어요. 그런 느낌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시나리오 보고 나서 다시 백지 상태로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써요. 그럼 현장에서 영감을 받아서 깨달을 때 더 희열이 옵니다.

대본을 보고 떠오르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나왔던 게 욕조 장면이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도희가 들어온다고 '똑똑' 소리가 나니까 갑자기 부끄러워졌죠. 그런 느낌과 디테일은 현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럴 때 희열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도희야>에서 영남 역의 배우 배두나가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도희야' 배두나 <도희야>가 편견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한국영화엔 남자배우들의 작품이 많아서 그것에 대항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가 호평을 받고 있으니까 좋고, 앞으로도 여배우들이 할 만한 좋은 캐릭터들이 담긴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이정민


- <괴물><공기 인형>에 이어 세 번째로 칸에 입성하네요.
"<공기인형>은 3박 4일의 일정이었는데, 이번에는 2박 3일. <공기인형> 때 해외 매체, 일본, 한국 매체까지 인터뷰를 해서 새벽 1시에 끝나고 그랬어요. 시차 적응도 안 되는데 인터뷰만 하다 온 기억이 나고요.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시간이 없어서 칸을 즐길 시간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 남자주인공들의 영화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잘 보이는 영화라 더 반가워요.
"그런 점에서도 되게 뿌듯해요. <도희야>가 편견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한국영화엔 남자배우들의 작품이 많아서 그것에 대항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가 호평을 받고 있으니까 좋고, 앞으로도 여배우들이 할 만한 좋은 캐릭터들이 담긴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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