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공주>에서 한공주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한공주>에서 한공주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영화 <한공주>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천우희는 내심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조심스러웠다.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이라는 실제 사건을 빌었기에 캐릭터를 표현하기 전부터 많은 생각을 했던 터였다. 

이름은 곧 존재의 이상과 바람을 담아낸다. 극중 한공주라는 이름 역시 공주처럼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고 곱게 커 나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공주는 동년배 일그러진 괴물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고 어른들과 사회는, 그리고 언론 매체는 그런 공주를 한 번 더 외면하고 상처를 줬다. 내면과 외면에 모두 상처를 입은 공주는 자신의 분노를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관객들을 향해 외친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연기 칭찬? 황송하지만 들뜨지 않겠다"

 영화 <한공주> 한 장면

영화 <한공주> 한 장면ⓒ 리(里)공동체 영화사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하고 싶었어요. 제가 가진 어떤 면을 보일 수 있어서도 아니었고, 그냥 저도 모르게 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읽으면 읽을수록 성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공주의 상처를 설명하지도 않고, 그녀의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아요. 피해 학생 역할이 부담은 전혀 아니었지만 조심스러웠어요. 이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혹시나 상처받으면 어쩌나 싶었고, 참여하기로 했을 때부터 진심을 담아서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책임감이었다. <한공주>를 통해 천우희의 연기력에 영화계 안팎에서 새삼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그는 "관객의 입장에서 몰입할 수 있게 연기에 힘 조절을 주려했고, 공주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게 온 마음을 다해 표현하려 했다"고 답했다. 천우희는 "칭찬에 기분이 좋고 황송하지만 들뜨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자극 받았으면 좋겠다"며 "최고의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부족함이란 건 언제든 보일 수 있는 것이니 그 부분을 채워가겠다"고 말했다.

"사실 감독님에게 우리 영화가 피해자 분들에게 혹시나 상처가 되면 어떡하는지 묻기도 했어요. 감독님은 '그러지 않을 것이고 이건 꼭 필요한 얘기'라고 하셨죠. 또 감독님이 '불편한 사실이지만 영화화 하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며 '그 작업을 우리가 하는 거다'라고 말했어요. 저 역시 그 분들을 대변까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진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위로를 못 주더라도 (사건을 일으킨) 누군가에게는 죄책감을 줄 수도 있고요. 그런 걸 위해서라도 <한공주>는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고민한 만큼 <한공주>는 천우희에게 남다른 의미가 됐다. 배우로서 천우희는 "연기라는 것 자체가 개인의 흥미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얼마나 영향이 있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진심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한공주>는 터닝 포인트"...슬럼프 극복의 신호탄 되다

 영화<한공주>에서 한공주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위로를 못 주더라도 (사건을 일으킨) 누군가에게는 죄책감을 줄 수도 있고요. 그런 걸 위해서라도 <한공주>는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정민


눈치 빠른 대중들은 천우희를 떠올릴 때 영화 <써니>에서 '본드를 불던 학생'으로 많이들 생각할 것이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강렬한 연기로 눈도장을 찍었다. 좋은 재능으로 여러 작품에 등장할 법 했고, 실제로 2004년 영화 <신부수업>의 단역으로 출연이후 꾸준히 작품을 쌓고 있지만, 다작은 아니었다. 마치 사사구가 적은 투수처럼 천우희는 정직한 연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 빗나가지 않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있었다.

"<써니> <우아한 거짓말> <한공주>까지 교복을 계속 입는 역할이었는데 어릴 땐 다른 역할도 좀 해보고 싶었거든요. 어려 보인 다는 걸 싫어하기도 했고요. 좀 무시 당하는 것 같잖아요. 근데 돌이켜보면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오디션 볼 때 더 어색했던 거 같아요. 굳이 교복 입은 10대면 어때요? 색깔이 저와 맞고 어울린다면 할 수 있는 거죠. 이때 아니면 언제 또 교복을 입어보겠어요(웃음).

<한공주>가 터닝 포인트가 될 거 같아요. 바로 직전까지 슬럼프를 겪기도 했거든요. 아무리 노력하려고 해도 일이 잘 안 풀려 조급했던 때였어요. 오디션을 봐도 다 떨어지곤 했죠. 그러다 이 영화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슬럼프 때는 진짜 1년에 다섯 사람도 안 만났어요. 원래 진짜 제가 긍정적인데, 가족이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불안해하기도 했어요."

고등학생 때 반이 달라졌던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 연극반을 따라 들어갔던 천우희는 영화 <허브> <마더> 그리고 <써니> 오디션에 모두 합격하며 자연스럽게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차에 슬럼프를 겪었고, 재미를 얻고자 진행했던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진심을 담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사색 많은 천우희, "배우 이외의 삶 상상할 수 없어"


자연스럽게 배우가 됐다던 말에 혹시 배우가 아니었으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물었다. 천우희는 "전혀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무언가에 깊게 흥미를 갖고 파들어간다거나 마니아 성향도 없다"고 말한 천우희는 "연기만큼은 괴로워도 하고 싶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작품을 할 때는 더 생각이 많아져서 잠을 못자기도 해요. 역할에 대해 고민해서가 아니라 이것저것 메모 하고 적어 보느라고요.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웃음)"

말하기 부끄럽다는 천우희에게 최근에 끄적거린 생각의 단상 하나를 부탁했다. 

"일상에서나 다큐멘터리에 종종 감응해요. 밥을 짓고 있었는데 연기라는 게 밥 짓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죠. 적당한 뜸을 들여야 하고, 때가 있다는 점에서요(웃음). 참, 저 사람 관찰도 좋아해요. 저 사람은 어떤 인격을 갖고 있을지 바라보곤 하죠. 흉내도 많이 내고요."

말을 마치며 천우희는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 안에는 눈빛을 밝히며 상대와 감응하려는 천우희가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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