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 이보영 조승우

'신의 선물' 이보영 조승우 ⓒ sbs


부녀자 살인사건의 범인 차봉섭도 아니었고, 아동학대 및 살인을 저지른 장문수도 아니었다. 의심스러운 행동을 일삼던 한지훈(김태우 분)도, 증거를 하나 둘씩 감추던 현우진(정겨운 분)도 김수현(이보영 분)의 딸 샛별이를 유괴한 범인이 아니다. 보아하니 '손모가지'로 불리는 대통령 경호원도 아닌 듯하다. 그들은 진짜 범인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일 뿐이다.

15일 방송된 <신의 선물> 14회에서는 기동찬(조승우 분)의 엄마인 이순녀(정혜선 분)가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 그녀는 한지훈에게 자신의 아들인 기동호(정은표 분)의 누명을 벗겨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샛별이를 잠시 볼모로 잡아 둔다. 처음부터 작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을 살리고 봐야 한다는 일념이 그녀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순녀도 샛별이를 유괴하고 살인한 범인이 아니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줄 모르고 도토리묵을 먹인 탓에 샛별이는 고열에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킨다. 불안해진 이순녀는 한지훈에게 연락을 하고 한걸음에 달려온 한지훈은 응급조치를 취한 후 샛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이순녀의 바람은 물 건너가 버렸고, 본의 아니게 유괴범은 이순녀에서 한지훈으로 바뀌게 된다.

한지훈은 샛별이를 으슥한 별장으로 데리고 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맡긴다. 당연히 누군가가 샛별이를 또 다시 유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수현과 한지훈이 별장에 도착할 때는 이미 샛별이가 유괴를 당한 후였다. 거기다 샛별이를 유괴범으로부터 되찾아오게 하는 유일한 거래 물증인 차봉섭의 전리품, 살해 피해자들의 반지는 한지훈이 아닌 기동찬의 손에 있다.

김수현은 곧바로 기동찬을 만나 샛별이를 구할 수 있는 반지를 돌려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동찬은 그녀의 말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기동찬에게도 그 반지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동호의 누명을 벗겨낼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기도 했다. 반지 하나에는 두 명의 목숨이 매달려 있었던 거다. 김수현의 딸 샛별이와 기동찬의 형 기동호.

범인 찾기보다 중요하게 다가오는 '신의 선물' 의미

<신의 선물> 14회의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반전 중의 반전이었다. 샛별이 유괴의 배후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보다 더욱 소름 돋는 상황이었다. 반지를 손에 쥐기 위해 서로를 노려보며 경계심을 갖게 된 두 주인공. 이제 김수현과 기동찬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조력자가 아닌 사건이 던져 놓은 갈등 관계에 갇힌 경쟁자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서로 절박하다. 그동안 김수현이 샛별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일들은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넘어지고 깨지고 부서지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쳐버릴 뻔한 적도 있고 죽을 뻔한 적도 있다. 딸을 향한 엄마의 모성애가 얼마나 맹목적이고 희생적일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기동찬의 가슴은 후회로 사무쳐온다. 형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기동호는 기동찬을 대신해서 차디 찬 감옥에서 수년을 보냈다. 그것을 생각하면 기동찬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미안한 마음과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반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이 확실한 증거를 내어줄 수가 없다.

종영까지 단 2회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은 어떤 합의를 보고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반지는 누구의 손에 넘겨져 누구의 가족이 살아남게 될까. <신의 선물>은 후반부에 가서 가장 어려운 질문을 시청자들 앞에 던진다. 만약 당신이 김수현이라면, 기동찬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제는 샛별이가 누구의 손에 유괴가 된 것인지, 그리고 그 배후에는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지에 대해 그다지 궁금하지가 않다. 이 작품이 정작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씩 감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 제목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드라마 속 인물들의 상황과 행동들을 보자. 김수현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눈물겨울 정도로 희생적이고 감동이 느껴질 만큼 헌신적이다. 그러나 여기엔 또 다른 비정함이 은밀하게 내포되어있다. 내 가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의 목숨쯤은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그릇된 마음 말이다.

김수현은 딸을 살리기 위해서 차봉섭을 죽이려 했었다. 기회가 된다면 장문수를 죽일 수도 있었다. 남편 한지훈의 목숨도 제 딸의 목숨만큼 아깝지가 않다. 그녀는 딸의 생명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이순녀도 아들 기동호를 위해서 샛별이를 납치했다. 결국 그녀의 계획대로 흘러가진 못했지만 기동호가 풀려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이보다 더한 범행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결말을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샛별이를 유괴한 범인 또한 가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거라 여겨진다. 복수가 아닌 희생을 감수한 범행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신의 선물'은 도대체 무엇을 뜻한단 말인가. 김수현이 샛별이를 다시 되찾게 된다는 것? 아니면 딸을 얻고자 애써온 엄마의 모성애?

'내 가족만큼이나 당신의 가족도 소중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가족부터 먼저 살리세요. 그럼 나의 가족도 누군가가 살려주시겠지요.' 만약 김수현과 기동찬 둘 중의 한 명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선물이 아닐까. 나의 아픔만큼 남의 아픔도 들여다 볼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것은 아닐까.

과거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물심양면으로 키우고 보살폈다. <신의 선물>에 나오는 인물들을 빗대어 보자면 모자란 짓이고 미련한 짓이며 얼토당토아니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어쩌면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함이 맞는 것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는지. <신의 선물>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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