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은 연기선생님

12년째 연기 트레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안지은은 배우 이보영·임시완·유연석·박신혜·황정음·이시영 등의 선생님이다. ⓒ 조경이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 그룹 제국의아이들(ZE:A)의 멤버인 임시완. 그가 <변호인> 진우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충무로에 들렸을 때,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기자의 길을 착실히 걷는 또래 배우들은 그 역할을 따내기 위해 고전했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인기를 등에 업고 역할을 따낸 거라고, 연기를 얼마나 잘하겠느냐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임시완은 <변호인>이 첫 스크린 진출작이라고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엄마 역으로 출연한 김영애와 송우석 변호사로 출연한 송강호 등 충무로 거장들에게 밀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췄다.

데뷔작인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임시완은 아이돌 중 처음으로 천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필모그라피를 쌓은 것이다. 물론 오롯이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낸 것은 아니다. <변호인>의 오디션 준비부터 임시완과 함께한 이가 있으니, 올해로 12년째 연기 트레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안지은(36)이다.

"<변호인> 캐스팅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임시완, 대견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진우 역을 맡았던 임시완.

영화 <변호인>에서 진우 역을 맡았던 임시완. ⓒ NEW


안지은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부터 임시완과 함께해서 <변호인>도 같이 준비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임시완은 송강호·오달수 등 대선배들과 한 공간에서 숨 쉰다는 것 자체를 굉장히 두려워했어요. 오디션 할 때부터 캐스팅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고요. 실제 부산대학교 학생이었고 부산에 살았으니 그 부분이 참 잘 맞았지만, 그래도 '안 되겠지?' 하면서 오디션을 준비했어요."

임시완은 그렇게 확신 없이 준비했던 오디션을 당당히 통과했고, 캐스팅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임시완이 맡은 진우는 야학에서 배움을 나누는 순수한 대학생이지만, 용공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역할이다. 안지은과 임시완이 가장 막막해했던 건 바로 고문 장면이었다.

"고문당하는 장면을 어떻게 연습하겠어요. 꼬집을 수도 없고. 다만 그런 고문을 당할 때 '감정이 어떨까' '신체는 어떻게 될까' 많이 보고 상상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여배우들은 출산하는 장면을 준비할 때 주로 다큐멘터리를 봐요. 시완이도 고문 장면을 위해서 소설을 읽고 영화, 다큐멘터리를 찾아봤습니다. <일급살인> 같은 것을 보면서 상상했어요. 

무엇보다 임시완은 부산사투리를 잘 구사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변호인>을 준비하면서 제가 엄마 역할도 하고, 송우석 역할도 하면서 대사를 맞췄습니다. '이럴 때는 이런 감정이 아닐까'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요."

임시완은 해외 콘서트 등 빡빡한 일정으로 연기 선생님을 직접 만나 연습할 수 없는 상황에도 혼자 숙소에서 고문당하는 감정을 연기한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안지은에게 보여줬다.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던 안지은은 "영상을 보는 순간, 이제 됐다 싶었다"고.

감정적으로 가장 공을 들였던 장면은 엄마도 모른 채 끌려간 진우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몇 개월이 지나서야 어머니와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다. 어머니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아들의 모습을 보고 오열하고, 진우는 벌벌 떨던 장면이다.

"여러 번 촬영하는 영화는 똑같은 연기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 감정을 준비해 가야 해요. 그 장면에서 엄마를 보고 '어무이...'라고 할까? '엄마 맞아요?'라고 할까, 여러 가지를 다 연습했어요. 영화를 봤는데 정말 잘 해내서 대견했어요."

"이보영과 7년째 호흡...연기는 물론 인생 이야기 나눠"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 분)

배우 이보영.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출연 당시. ⓒ DRM미디어


임시완 외에 안지은과 함께하는 배우는 이보영·유연석·박신혜·황정음·이시영·이광수·채정안·남규리·민효린 등이 있다. 특히 이보영과는 2008년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총 연기 디렉터로 처음 만나 현재까지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안지은은 "이보영과의 인연이 계속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보영의 대사 소화 능력은 대한민국 최고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을 많이 읽고 공연도, 영화도 많이 보기 때문에 대본을 읽을 때 어휘력이 좋아요. <신의 선물> <내 딸 서영이> 등을 보면 대사가 굉장히 많거든요. 근데 그 많은 대사를 완벽히 소화합니다. 자신이 이해하면 막 받은 대본마저도 금방 다 외우고 몰입합니다. 지적 수준이 뛰어난 것 같아요.

사실 배우는 연기를 못 해서가 아니라, 연습상대가 필요해서 트레이너를 찾곤 해요. 내가 맡은 배우가 여자면 남자 역할을 해주고, 딸 역할이면 엄마 역할을 해주는 등 상대역으로 대사를 함께 맞추는 거죠.

저보다 한 살 어린 보영씨와는 작품 이야기뿐만 아니라 서로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보영씨가 경험하지 못한 삶 중 제가 경험한 부분이 있으면 나누고요. 배우의 거울이 되려고 노력해요. '네 모습은 이래서 좋아'하며 거울에 투시해서 객관화하려고 합니다. 안 예쁜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이야기하고요. 거울처럼 보여주는 거죠."

안지은은 6년째 함께 한 이보영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속이는 것은 못 하는 사람"이라고 평한 그는 "굉장히 솔직하고 털털하다. 세월이 더 할수록 더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스펙트럼 넓은 유연석, 지금까지는 빙산의 일각"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대학야구 최고 에이스 칠봉이 역의 배우 유연석이 31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역을 맡았던 배우 유연석. ⓒ 이정민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역을 맡아 대세 배우로 떠오른 유연석과는 <구가의 서>부터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안지은은 "보통 새로운 장르를 접했을 때나 캐릭터를 바꾸고 싶을 때 연기 트레이너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유연석도 연기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첫 사극 도전이라 인연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연석을 만나보면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가 가장 유연석다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연기자들이 모두 자기가 하고 싶다고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등에서 악역을 맡아서 카리스마가 있을 것 같지만 굉장히 순하고 배려심이 깊어요.

<응답하라 1994> 초반, 유연석은 야구 연습을 많이 했고 나중에 함께 대본을 보면서 남자로서 놓칠 수 있는 여성의 감성을 건드릴 포인트 정도를 짚었어요. 제가 '와, 멋있다' 그러면 유연석이 '이런 게 멋있어요?'하고 묻기도 하더라고요."

올해 유연석은 스크린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화 <상의원> <은밀한 유혹> 등에 캐스팅돼 촬영에 한창이다.

"유연석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다"고 강조한 안지은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사실 빙산의 일각"이라며 "<응답하라 1994>로 멜로적인 부분을 어필했지만, 현재 대학원도 다니고 있고 연기 공부도 많이 하고 있으니 앞으로 유연석의 지적인 부분도 많이 보여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30대에 맞게 더욱 깊어진 연기를 표현하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엄마랑 우연히 여의도를 걷다 호기심에 연기 학원에 등록했던 안지은은 한 청춘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처음 시작했다. 이후 국립극단에서 3년 동안 배우로 활약했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문화콘텐츠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자기 계발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더욱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명배우들의 연기 선생님을 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보람은 연기자 타이틀이 없었던 이들이 배우로 거듭났을 때 느껴요. 임시완, 한선화 등의 배우가 그렇습니다. 한선화도 <신의 선물>로 인정받고 있어요. 그런 친구들이 잘됐을 때 정말 좋아요.

제가 벌써 12년 동안 이 일을 계속 해왔다는 게 사실 믿기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배우들과 대본을 읽고, 이야기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배우들이 상처도 많이 받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많지만 그걸 대중에게 보일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 힘이 되는 상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실력이 있는데 현장이 뭔지 몰라서 힘들어하는 신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안지은의 12년 노하우 담은 책
<굿 캐스팅>


안지은이 12년 동안 연기 선생님으로 활약하며 배우들을 가르친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최근 출간한 <굿 캐스팅>이다.

"현재 서일대 연극영화학과 매체 연기에서 강의도 하고 있어요. 올해로 4년째인데, 가장 중요한 게 '네가 뭘 잘하는지 알아라'입니다. 단점 50가지, 장점 50가지를 쓰라고 해요. 누구나 무기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무기를 정리하면서 내가 어떤 류의 배우가 되어야 할지를 생각하면 훨씬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난 키가 작지만 비율이 좋다' '발음이 안 좋지만 감정이 좋다' 이렇게요. 저는 단점을 미친 듯이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장점을 더 크게 보이게 하려는 편입니다. 사실 단점은 본인이 간절히 원하면 고쳐집니다. 내가 진짜 잘하는 것을 기분 좋게 더 개발하고 더 잘 보이도록 하는 쪽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안지은 이보영 임시완 한선화 황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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