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방영한 JTBC <밀회> 한 장면

지난 31일 방영한 JTBC <밀회> 한 장면ⓒ JTBC


JTBC <밀회>는 싸구려 드라마가 아니다. 각종 언론사들이 지난 31일 방송된 5회에서 오혜원(김희애 분)이 이선재(유아인 분)에게 기습 키스를 한 장면을 하이라이트 삼아 호기심을 자극하고는 있지만, <밀회>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벌이는 애정행각이 아니다. 불륜을 시청률 상승의 촉매제로 사용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혜원이 이선재에게 덤벼들어 격정적인 키스를 한 것은 그를 밀어내기 위한 일종의 방어본능이었다. "됐니? 한 번 더 해줄까? 까불지 마라. 나 지금 너 아주 무섭게 혼내준 거야. 주제넘게 굴지 말고 반성해. 알았어?" 오혜원의 키스는 벌이었고, 질책이었다.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경고였다.

이는 오혜원이 자신에게 퍼부은 조롱이기도 했다. 나이 어린 제자와, 그것도 자신의 남편이 발굴한 제자와 불미스러운 감정놀이를 벌이고 있는 것에 야유를 보낸 것이다. 그녀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꿈틀대고 있는 것이 사랑인지, 연민인지, 아니면 동정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결코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음악으로 다시 하나가 된다. 피아노 선율에 따라 서로의 감정을 교환하고 나누고 또 공유한다. 악보를 같이 보고, 피아노 건반에 손을 같이 얹고, 멜로디에 몸을 같이 맡기고, 화음을 같이 만들어낸다. 그들의 합주는 이내 천상의 아름다움을 창조해낸다. 어쩌면 지옥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그들이 말이다.

위험한 고백,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감성

 <밀회>의 이선재(유아인 분).

<밀회>의 이선재(유아인 분).ⓒ JTBC


아마도 오혜원은 이선재가 가진 음악적 천재성을 질투, 혹은 경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사랑하는 그녀로서는 그 음악을 소유하고 있는 그가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런 그는 자신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저돌적이고 맹렬하게, 그러나 진심 어린 마음으로 자신을 끌어안고 있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이선재를 연기하는 유아인의 감성이다. 유아인의 상대역이 김희애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가 한참이나 나이 많은 그녀와 '밀회'를 그려나갈 예정이라고 했을 때, 내심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리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가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의 조합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아인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감성과 한 겹 한 겹 정성스레 쌓아 올려가는 차근한 연기력으로 위태롭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공감 어린 따스한 시선으로 바꿔 놨다. 엄마도, 여자 친구도, 친구도 있었지만 늘 외로웠던 남자.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보여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남자. 유아인은 그런 그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갔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제가 죽고 싶었을 때 피아노를 다시 치라고 권하셨고, 제 마음이 흔들리는 걸 읽어주셨어요. 그거 진짜 셌어요. 남자는 그럴 때 키스해요." 이선재에게 오혜원은 사랑하는 여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마치 목숨을 구해준 은인, 생명을 다시 부어준 신앙과도 같은 존재다. 그는 그녀 덕분에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됐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이선재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이를 엄마로 여기는 아기 새처럼, 그는 처음으로 새로운 삶을 보여준 그녀를 가장 소중한 이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가 결혼을 했든, 한 남자의 아내이든, 나이가 많든, 사는 환경과 형편이 다르든, 그러한 것들은 이선재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문제가 될 만한 것들도 아니다.  

"너무 좋아하면 들키지 않나요? 좀 비겁하더라도 들키지 않으려고요. 제 여친한테나, 교수님한테나." 이선재의 고백은 위험하다. 오혜원과 한 집에 살면서, 그녀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그녀의 남편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녀를 계속해서 사랑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맹목적이고 결연했다.

그래도 불륜이다. 오혜원이 그어 놓은 선을 이선재가 넘어가 버리는 순간, 이들은 혹독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죄인들이 된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이미 그 선을 넘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관계를 사랑, 혹은 이와 비슷한 다른 말로 미화시키고픈 욕구가 생긴다. 이선재에게서 묻어 나오는 짙푸른 슬픔이, 그가 품은 붉은 빛의 연모가 극을 아름답게 채워나가고 있는 탓이다.

이선재는 오혜원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힌다. '어후' '아…' 등의 탄성 비슷한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늘 떨리고 긴장되며 설렌다. 어떻게 해서든 잘 보이고 싶고, 잘 전하고 싶고, 잘 표현하고 싶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앞에 둔 남자일 뿐인데, 그의 모습은 사뭇 남다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이선재이지만, 그런 그를 유아인은 순수함으로 연기하고 있다.

오혜원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맑고 영롱하다. 또 한 편으로는 질투와 욕심을 말하기도 한다. 이중적인 분위기를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밀도를 조절하고 있는 유아인. 요즘 그의 연기력에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가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결곡한 눈매와 조릿조릿한 표정, 그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의 절제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유아인은 단순한 감성 연기자가 아닌, 극감성을 지닌 배우라고 칭찬해줘도 될 듯하다. 아직은 명배우로서 가야 할 길이 멀고, 많은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노련함이 부족하긴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아련하게 만드는 절대 감성은 이미 충분히 축적된 상태인 것 같아서 말이다. 불륜인 걸 알면서도 이선재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싶으니, 불륜을 순수로 물들인 유아인의 감성을 탓할 수밖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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