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밀회>의 오혜원(김희애 분).

JTBC <밀회>의 오혜원(김희애 분). ⓒ JTBC


김희애가 TV에서 형성한 크게 두 가지의 캐릭터가 있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표독스러운 '불륜녀', 그리고 예능 <꽃보다 누나>에서의 사랑스럽고 속 깊은 '누나'.

JTBC 월화드라마 <밀회>의 예고편과 포스터만을 보았을 때는 전자의 캐릭터에 집중된 배역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꽃누나> 캐릭터에 가깝다. 치열한 경쟁과 권력관계의 비루한 난장판이 벌어지는 아트센터 한 가운데서 고투하는 커리어 우먼임에도 불구하고, 극 중 오혜원(김희애 분)은 아랫사람을 배려하고 철부지 남편을 어르며 달래는 영락없는 '꽃누나'다.

이렇게 모범적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해내는 여인 앞에, 한 청년이 끼어들면서 모든 게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연주회를 몇 시간 앞두고 오혜원의 남편이자 음대 교수인 강준형(박혁권 분)이 깜빡 두고 온 나비넥타이를 퀵 배달을 통해 받는다. 그런데 소임을 다한 배달원 이선재(유아인 분)는 이상하게도 곧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이곳저곳 연주회가 열릴 아트센터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이내 피아노 리허설이 진행 중인 강당에 숨어든다.

치정·쟁투·예술, 세 요소의 조화가 재미의 관건

 JTBC <밀회>에서 오혜원(김희애 분)을 훔쳐보는 이선재(유아인 분).

JTBC <밀회>에서 오혜원(김희애 분)을 훔쳐보는 이선재(유아인 분). ⓒ JTBC


거기서 청년은 아름다운 두 가지를 목도한다. 가슴을 울리는 피아노의 선율, 그리고 그 옆의 아름다운 여자. 그는 오혜원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오혜원은 이선재가 선망하고 매료되었던 예술혼의 화신과도 같았다. 그렇게 청년은 예술을 가면삼아 가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자신의 근원적인 욕망에 다다른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이 처음엔 예술의 상징을 하고 나타났지만, 종국엔 그마저 벗어버린 채 민낯을 들이민 것이다.

연주회 직전에 악기들을 조율해놓기 때문에 외부인은 함부로 악기를 만져서는 안 된다. 연주회를 위해서는 당연한 규범이다. 그런데 이선재는 이 정당한 규범을 파괴한다. 그리고는 퀵 배달원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아무도 없는 강당에 들어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그는 듀오로 연주하는 곡을 솔로로 소화해내는 천재적인 실력을 뽐낸다.

이 때문에 그는 잠시 경비원들에게 쫓기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이선재는 오혜원과 강준형의 눈에 띄어 서한음대 정시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이선재와 오혜원의 만남은 이렇듯 기존의 규범, 관습으로부터 이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선재가 강당의 피아노를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버렸기에 오혜원과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었고, 이는 앞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는 양상 또한 탈관습적이고 탈규범적일 것임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기능한다.

단순한 불륜·치정 드라마로 보기엔 <밀회>의 스토리라인은 꽤 다채롭다. 김희애와 유아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위로는 서한재단, 아트센터, 서한음대의 음험한 권력 각축이 벌어지고, 아래로는 예술과 천재라는 사뭇 낭만적인 주제가 격정적이고도 잔잔하게 흐른다. 결국 앞으로 <밀회>의 품격과 재미는 치정·쟁투·예술이라는 세 요소가 어떻게 조화롭게 엮이며 이야기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풀어나가는지에 달려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밀회 김희애 유아인 박혁권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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