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으로 악명 높은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

악평으로 악명 높은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 ⓒ 온스타일


작년 4월, <할리우드 리포터>는 '리얼리티 TV의 어두운 면 : 26개의 비극적인 죽음'이란 기사를 전했다. 수많은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 출연자들이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됐는지 26개의 케이스를 소개한 것이다.

이 기사 속 사망자들의 사연은 각기 다양했다. 그 중 악평으로 유명한 요리연구가 고든 램지가 진두지휘하는 리얼리티 요리 프로그램 <헬스 키친>의 요리사 지망생 중 한 명은 방송 출연 직후인 2007년 권총 자살했다. 고든 렘지의 혹독한 비평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악명 높은 고든 램지는 2010년 <키친 나이트메어>란 후속 작품에서도 출연자 한 명을 자살로 인도했다.

이 기사가 예언이나 한듯, 작년 8월 미국의 인기 미팅 버라이티쇼 <베첼러>로 유명세를 탔던 지아 알만드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CNN 등 다수 언론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자살과 사망을 조명하기에 이르렀다. 근 10년이 넘도록 실로 프로그램은 많고, 사망자도 많으며, 사연도 다양했다.

예컨대, 외딴 섬에서 출연자들이 생활하는 <서바이버> 프로그램 출연 당시 유방암을 얻어 결국 자살을 한 여성 출연자도 있었고, 복싱 리얼리티쇼 <콘텐더> 출연 이후 자살한 프로복서도 있었다. 작년 3월, <서바이버 프랑스> 출연자 중 한 명은 촬영 첫날 돌연 심장사로 사망하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리얼리티쇼가 인기리에 방영됐고, 방영 중인지를 확인해 보시라. 최근 영화 <원챈스> 홍보를 위해 내한한 영국 <브리튼즈 갓 탤런트> 우승자 출신인 폴 포츠는 그러한 리얼리티쇼 출신의 '빛과 그림자' 중 빛에 해당하는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그림자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 이후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리얼리티 쇼의 '빛과 그림자', <짝>만의 문제일까 

 sbs <짝>의 한 장면.

sbs <짝>의 한 장면. ⓒ SBS


그리고, 5일 오전 SBS 리얼리티 미팅 프로그램 <짝>의 한 여성출연자가 이날 새벽 자살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프로그램 녹화 말미, 상대를 선택하기 전날 새벽, 그러니까 녹화가 끝나기도 전에 목숨을 끊었다는 점은 리얼리티쇼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선 초유의 일이라 더 큰 파장이 예견된다.  

SBS 측은 "제작진은 이 사실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사후처리와 유사 사태의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인의 유서를 발견한 경찰 측은 일단 제작진과 유족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사망한 출연자는 프로그램 초반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인기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 중간 벌어진 이 초유의 사고에 <짝>은 5일 본방송은 물론 재방송까지 결방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유족은 물론 이 소식을 접한 그 누구도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짝> 시청자 게시판에 (일부 사망자를 비난하는 의견과 달리)프로그램 폐지 의견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애정촌'에서 벌어지는 이성 간의 짝짓기를 소재로 한 <짝>은 그간 출연자들의 과한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부상자도 발생하곤 했다. 

일반인의 자발적인 출연이란 이유로 결혼과 사랑을 '경쟁' 구도에 몰아 놓는 프로그램의 전제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 역시 적지 않았다. 편집을 거쳐 방송되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 이후 결혼에 골인한 커플은 화제가 됐지만, 녹화 당시 짝짓기에 실패하며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감정'에 대해서 말이다.

이번 <짝>의 자살 사건은 과거 국내 리얼리티쇼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지난 1999년 배우 김성찬은 KBS <도전 지구 탐험대> 아프리카로 촬영 중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2005년 아나콘다에 물린 방송인 정정아 사건 이후 이 프로그램은 결국 폐지됐다.

프로그램 포맷을 수입했던 다이빙쇼 <스플래시>는 개그맨 이봉원의 부상과 함께 안전문제가 대두되며 작년 8월 4회만에 종영됐다. 미국과 해외 사례보단 덜 하지만, 국내 방송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역시 '안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안전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대부분의 리얼리티쇼가 장착한 '경쟁의 서사'그 자체다.

이미 깊숙이 침투한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경쟁의 서사

 SBS의 <짝>의 홈페이지.

SBS의 <짝>의 홈페이지. ⓒ SBS


개인적으로, <짝>에 출연했던 한 방송계 인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뒷풀이. 본방송에서 살짝 비춰지는 출연자들의 회식은 이성간의 호감과 이해도를 상승시키는 주요한 동력이라는 것. 술자리 문화와 관련된 한국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짝짓기 프로그램 녹화에서도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번 출연자 역시 회식 자리 이후 불과 몇 시간 만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출연자들의 감정 상태. 아무래도 전국에 얼굴을 알릴 수밖에 없고, 내밀한 속내나 감정들을 드러내다보니 지극히 낯을 가리거나 정중동인 캐릭터들은 출연 자체를 꺼리거나 출연해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욱이 끊임없이 동성 간에 경쟁을 하며 이성에게 어필해야 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안 그래도 '업'된 캐릭터들의 감정이 더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 리얼리티쇼에서는 갈등과 사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감정적으로 불안한 출연자들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이번 자살 사건은 획일적인 요인으로 파악하기 힘든 출연자의 복잡미묘한 상태와 '이성 교제'와 '사랑'이란 감정도 무한 경쟁을 벌어야 하는 리얼리티쇼 프로그램 특성이 만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연인과의 결별을 겪은 사망자는 이를 알고 자신을 비련의 여주인공 캐릭터로 만드려는 제작진의 의도를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우리가 3년 넘게 확인했던 <짝>의 캐릭터화 작업을 보며 그 풍경이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이번 사건이 <짝>의 폐지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유족과 제작진, 여타 출연자들의 심리적 안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가 리얼리티쇼에서 무얼 보고 무얼 소비해 왔는지는 분명 되짚어 봐야할 것 같다. 그에 앞서, 출연자들의 '안전' 문제는 각 프로그램 특성상 제작진이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될 문제다.

<슈퍼스타K>도, < K팝스타 >도, <짝>도, <마스터셰프 코리아>도, 결국은 '경쟁'이 서사의 축을 이룬다. 그것이 오디션이든, 서바이벌 형식이든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선택받는 무한경쟁의 서사. 누구는 거기서 우승의, 승리의, 선택의 기쁨을 맛보지만, 누구는 심사위원의 독설에, 패배의 기억에, 방송 출연 이후의 후폭풍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어린 출연자들이라면 그 감정의 무게와 실패의 경험은 쉬이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출연자와 제작진의 '합의'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그림자'를 짊어지는 이들은 분명 <짝>의 사망자와 같은 출연자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짝> 사건이 알려지고 만 하루도 안 돼 천 건이 넘는 인터넷 기사가 쏟아지고 각종 SNS가 빛의 속도로 퍼지는 곳이다. 경쟁'을 주요 서사로 삼는 프로그램들은 그래서 더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폐지 만이 살길'이란 얘기가 아니다.

그러기엔, 이미 우리 시청자들 역시 이 '경쟁'의 서사를 너무 깊숙이 받아들였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러하듯이. <짝> 사건이 던져 준 교훈은 자명하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자들에 대한 배려의 시선 말이다. 현장에서나, 편집에서 더 각별하고 세심한 주의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겪는 '감정' 노동자들이 일반인의 3~4배가 넘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애정촌 리얼리티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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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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