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이 <노예 12년>과 <그래비티>에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며 막을 내렸다. 무대 뒤에서는 빅마마&파파 피자와 트위터가 또다른 승자로 기록됐다.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쇼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복기할 만한 제86회 오스카 시상식의 뒷얘기들을 살펴보자.

더 화려한 백스테이지

 시상식 도중 엘렌이 트위터에 올려 280만회 리트윗을 기록한 셀카 사진

시상식 도중 엘렌이 트위터에 올려 280만회 리트윗을 기록한 셀카 사진 ⓒ 엘렌 트위터


아카데미 시상식은 할리우드판 '슈퍼볼'이다. 당일 수많은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인 만큼 백스테이지에서 여러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초기엔 레드 카펫에서 자태를 뽐내는 수준이었으나 요즘엔 아예 백스테이지 생방송 채널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로 또다른 아카데미 부가산업으로 자리잡았다. 할리우드 전체가 오스카 시상식을 기점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해마다 슈퍼볼 광고가 천문학적인 돈과 맞춤형 광고로 유명세를 타는 것처럼 아카데미의 광고 역시 평상시와 다르다. LA타임스에 따르면 펩시, 도브, 스니커즈 같은 광고주들은 30초에 180만 달러를 썼다고 한다.

필자는 ABC 생중계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했는데 거의 모든 광고가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만들어져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중 미니 할리우드 영화 촬영장에 '미니 캔'을 들고 다니는 청년이 나오는 1분짜리 펩시 광고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올해 시상식은 4000만 명이 시청했다. 이 숫자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시상식 내내 자리를 지키는 이유다.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하는 것 못지 않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에 TV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매체 전체의 효능은 커졌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SNS로 이슈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 TV와 모바일의 시너지는 폭발적이다. 올해엔 사회자 엘렌이 공식적으로 트위터를 통해 의견을 올려달라고 했고 트위터엔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전세계에서 접속자가 몰렸다.

리얼타임 스토리 마케팅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라면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어진 피자 퍼포먼스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벤트를 통한 리얼타임 스토리 마케팅의 생생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자 엘렌은 갑자기 "배고프죠? 피자 시킬까요?"라고 하더니 정말로 피자를 주문했다.

그녀는 대형 브랜드 대신 '빅 마마스&파파스'라는 동네 피자가게를 선택했다. 선셋대로점 점장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생방송에 출연해 피자를 객석의 스타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브래드 피트가 접시를 서빙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피자 서빙하는 브래드 피트"라는 제목으로 뿌려지기도 했다.

LA 현지시간으로 저녁 7시경, 동부 시간으로는 밤 10시경에 벌어진 일이다. 그 시간에 미국 전역에 얼마나 많은 피자 배달이 일어났을지 짐작조차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PPL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깜짝 퍼포먼스였다. 엘렌은 나중에 피자를 먹은 스타들에게 일일이 피자값을 걷으러 다녔다. 그 시간 TV를 보고 있던 대형 피자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SNS를 통해 우리도 엘렌에게 피자를 쏠 수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피자헛이나 립튼 같은 브랜드는 재치있는 문장으로 호응을 얻었다.

이날 피자를 배달한 점장은 스타들로부터 1000달러(약 107만원)를 팁으로 받아갔고 이후 '엘렌쇼'에 출연해 엘렌과 뒷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깜짝 이벤트가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다른 리얼타임 마케팅 사례로 엘렌의 셀카 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브래들리 쿠퍼가 갤럭시 노트3로 찍은 단체 셀카사진이 엘렌 계정에 올라오며 280만회 리트윗돼 화제에 올랐다. 기존 오바마 재선 사진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트위터 역사상 최고의 인기를 얻은 트윗이 된 것이다. 비록 엘렌이 개인적으로는 아이폰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스타일을 구기긴 했지만 삼성은 홍보효과를 톡톡히 얻었을 것이다.

또 허핑턴포스트, AOL, 야후, MTV 등 미디어 기업들은 일요일 밤 아카데미를 취재하느라 분주한 자신들의 '워룸(War Room)'을 트위터에 공개하며 친근한 방식으로 자사 홍보를 하기도 했다.

트로피를 받으러 무대에 올라갈 스타들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당신처럼 객석에서 피자를 먹고,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채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다. 스타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자신이 기사쓰는 공간을 사진 찍어 공개한다. 모바일 시대에 현장과의 거리는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점점 좁혀지고 있는 중이다.

결국 스토리가 선택받다

수상작 얘기를 해보자. 수상 결과는 필자를 포함해 많은 팬들이 예측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우조연상을 제외하면 깜짝 수상은 없었고 별다른 논란도 없다. 이는 그만큼 아카데미의 성향이 일관적이라는 뜻이다. 아카데미는 휴머니즘을 그린 영화를 편애한다. 칸, 베를린, 베니스 등 롱런하는 영화제 역시 대부분 이렇게 일관적이다.

시상식 초반에는 <그래비티>가 상을 휩쓸면서 독무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아카데미는 결국 '새로운 영화적 체험'보다는 '스토리'를 더 높게 평가했다. 노예제도를 다룬 <노예 12년>이 작품상, 각색상, 여우주연상 등 3개의 트로피를 가져갔고, 에이즈를 다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오바마 집권 이후 할리우드는 많은 흑인 관련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링컨> <장고: 분노의 추적자> <헬프> <버틀러> 등 대부분 흥행성적도 좋았고 평가도 좋았다. 그 정점을 찍은 영화가 <노예 12년>이다.

스티브 맥퀸은 작품상 수상소감으로 여전히 노예로 고통받고 있는 2100만 명에게 상을 바친다고 말했다. 노예가 아직까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텐데 맥퀸이 언급한 이 숫자는 유엔 산하기구인 ILO가 2012년 내놓은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전세계에서 납치, 감금돼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로 ILO에 따르면 이중 550만 명이 아이들이라고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1850년 미국 남부의 노예들은 오늘날의 가치로 평균 4만 달러 정도에 매매가 됐지만 현대 개도국의 노예들은 고작 90달러에 팔려나가고 있다.

<노예 12년>에서 성적 착취를 당하는 여성 노예를 연기해 여우조연상을 받은 루피타 니옹은 수상 소감에서 당시 노예제로 희생된 여성들에게 상을 바친다고 말해 찬사를 받았다.

수상하지 못해 억울한 후보들도 있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20년 전 데뷔작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래 올해까지 매번 빈 손으로 돌아갔다. <아메리칸 허슬>은 <그래비티>와 똑같이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한 개의 트로피도 챙기지 못했다. 11개 부문에 오르고도 무관이었던 <칼라 퍼플>의 기록을 깨지 않았다는 것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86년의 역사에서 오는 권위를 재미와 융합시킨 할리우드의 종합선물상자다. 사회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분위기가 전혀 달라지는데 올해는 엘렌 드제너러스가 진행했다. '엘렌쇼'를 진행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그녀는 편안한 말솜씨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실력을 인정 받아 올해 두번째로 진행을 맡았다.

그녀는 1997년에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데 2008년 동성결혼까지 했다. 미국의 주마다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이 나뉘는 가운데 할리우드는 이미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쇼를 두 번이나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도 아카데미가 만들어낸 또다른 스토리다.

아카데미 엘렌 드제너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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