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14일> 포스터.

<신의 선물-14일> 포스터. ⓒ sbs


여러모로, 흥미로운 1, 2회였다. 액면가 그대로 '여러모로'란 표현이 중요하다. 작가와 감독의 선명한 의도가 하도 투명해서 보는 내내 아찔한 느낌이라니. '소재주의'란 함정은 그래서 무서운 거다. SBS <신의 선물-14일>(이하 <신의 선물>)이 딱 그런 꼴이다.

"'지금 내 아이는 살아 있다. 하지만 2주 후 내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다시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 딸을 살리기 위해 이제 엄마는 전사가 된다."

창작자들이 조심해야 할 제1의 원칙. 자신의 피조물, 특히 한 줄 설정을 너무 믿지 말라. 다시 말해, '자뻑'에 빠지는 순간 극 전체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미안하게도, <신의 선물>의 주인공 김수현(이보영 분)이 딸을 잃고 강물에 투신하기까지를 다룬 1, 2회 결말까지가 딱 그랬다. 분명 앞으로 달려나갈 길이 먼 드라마지만, 이 불안한 감정은 '슬픈 예감은 왜 틀린적이 없나'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딸의 유괴부터 엄마의 자살까지, 어수선하게 내달려

 <신의 선물-14일>의 주인공 김수현의 오열을 연기하는 배우 이보영.

<신의 선물-14일>의 주인공 김수현의 오열을 연기하는 배우 이보영. ⓒ sbs


자, 유괴범에게 딸을 잃은 엄마가 14일 전으로 돌아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전사가 된다. 이 한 줄의 태그라인이 주는 힘은 꽤나 강력하다. 할리우드에선 이런 태그라인이야말로 콘텐츠의 기본요소요, 이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을 '콘셉트 무비'라 부른다.

그리고 <신의 선물>은 2회까지 이 태그라인만 믿고 내달린다. 자신의 어린 딸이 살해된 것을 알고 오열하는 엄마. 이 만큼 강렬하고 휘발성 강한 장면이 또 어디 있으랴. 이 드라마의 작가와 감독은 마치 '이 장면이 언제 나올지 궁금하지?'라는 태도로 시종일관 시청자들을 몰아 붙였다. 그러나 친절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함정이다.    

제일 먼저 호흡. 작가가 제시한 극의 전제, 그러니까 '타임슬립'이니 '타임워프'니 하는 판타지적 설정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는 결국 자극적인 소재들뿐이다. 그리고 제작진은 그걸 그대로 밀어 붙여 버린다.

딸 아이의 유괴, 생방송 중계, 유괴범을 쫒는 엄마, 아이의 시체 유기 현장, 오열에 이어지는 엄마의 복수 다짐, 그리고 이 엄마의 투신 자살. 2회에서 이 모든 전개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속도감 있는 전개'와 '어수선한 전개'를, '빠른 호흡의 편집'과 '불안정한 편집'을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사건의 나열과 엄마의 감정, 이 두 가지만 가지고 내달린 결과 <신의 선물>의 초반부는 14일 전으로 돌아기가 전의 예고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면 성공적인 것 아니냐고? 헌데, 지금까지와의 구성을 보면 꼭 그럴 거 같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연기 잘 하는 이 배우들이 왜 평범해 보이지?

 SBS 새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 출연하는 배우 조승우

SBS 새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 출연하는 배우 조승우 ⓒ sbs


듬성듬성 이가 빠진 것 같이 들쭉날쭉한 조연들의 등퇴장도 이러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러니까, 시간을 되돌려 딸을 살려야 하는 엄마가 벌이는 이후 추적의 서사를 위해 '누가 범인인가'하는 후더닛(whodunit, 범죄와 그 해결에 주력하는 유형) 구조를 취한 것이라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다.

'설정'과 '모성'만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주요 디테일들을 놓치고 간 탓이다. 단편적인 인물 소개, 김수현과의 관계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비기닝'과 같은 특집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더욱이, 캐릭터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아 배우들의 연기조차 빛을 보기 힘들었다. 김수현은 '자기 때문에 아이를 잃었다'는 설정으로 몰아 넣어야 하는 캐릭터다. 1, 2회에서 그가 보이는 극단의 행동들은 몰입과 공감을 주기보단 눈물과 액션과 분노로 가득찬 강요에 가까웠다. 이보영의 감정 연기는 그래서 '한국식 명연기'에 가까웠다.

'범인이 누구냐'가 전제가 되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 기동찬(조승우 분)이 술을 마시고 두 번이나 기억을 잃는 장면도 꽤나 억지스러웠다. 해리성 기억상실이나 이중인격에 대한 복선 아니냐는 간단한 추리가 난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조승우의 연기도 그래서 더 헐거워 보였다. 신구, 김혜선, 김태우, 강신일 등 연기 잘 하는 베테랑 배우들이 기능적인 장면에서 낭비되는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게 다 범인을 숨기기 위한 복선 때문이라고?

자극적 설정의 과잉, 한국식 신파와 장르물의 결합?

 SBS 새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 출연진

SBS 새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 출연진 ⓒ sbs


저 '후더닛 구조'에서 요구되는 것은 결국 정교함과 완성도다. 범인이 누구냐를 꼭꼭 숨기고, 심지어 14일 전으로 돌아가는 판타지까지 도입하며 지향하는 정서가 '모성애'라면, <신의 선물>이 정서 과잉과 자극적 설정으로 가득 찬 한국식 신파와 장르물의 결합이 될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더욱이 작품 외적으로 생방송에 가까운 촬영 일정이란 소문이 들리고, 웹툰 <다시 봄>과의 설정 유사 논란까지 불거졌다. 2013 SBS 연기대상 이보영과 2012년 MBC 연기대상 조승우가 출연하며 화제 속에 출발한 드라마 <신의 선물>이 뚜껑을 열면서 이는 잡음들 중 하나라 여기기엔 그 심각성이 가벼이만 보이지 않는다.

막장 드라마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신의 선물>과 같은 장르물은 분명 신선한 시도로 응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기엔 좀 더 세심함과 주의가 필요하다. 드라마 곳곳에 포진한 과도한 자극(유괴범을 쫓던 김수현이 지하철에서 지나치게 오랫동안 맞는 장면이랄지, 현실과 동떨어지게도 생방송에서 범인에게 호소하는 장면 등등)은 피할 수록 좋지 않을까.

전체 설정이 극적이라고 해도 표현과 편집 상에서 그걸 거를수 있을 때 훨씬 깔끔하고 완성도 넘치는 장르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시청률을 의식해야 하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이미 SBS 미니시리즈들은 그러한 전례로 성공한 바 있다. <추적자>가 그랬고, <유령>이 그러했다. <신의 선물> 3회를 좀 더 즐겁게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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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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