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난자들>에서 학수 역의 배우 오태경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조난자들>에서 학수 역의 배우 오태경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박민영 기자·사진 이정민 기자| 영화 <낮술>의 노영석 감독이 4년 만에 장편 <조난자들>을 만들게 됐을 무렵, 우선 오태경을 찾았다. 강원도 산골 오지에 고립된 주인공 상진(전석호 분)을 무표정하게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학수 역에 그가 제격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캐릭터였다.

전과자라는 것 외에 어떤 정보도 없는 학수는 때론 능청스럽게 상대를 배려하고, 때로는 섬뜩하게 변모하며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한다. 함께 고립된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할 때 학수는 그만큼 주요 살인 용의자 중 하나가 됐고, 끝날 때까지 그는 의문의 사나이로 남아 있었다. 오태경은 "그런 긴장감과 영화 결말에 대한 설정에 반해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출연하게 됐던 것"이라며 당시 기억을 전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매니저 형에게 목숨 걸고 진행해보자고 했어요. 아마 관객들 입장에선 정통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좀 의아할 작품일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론 코믹 스릴러라고 생각했거든요. 유쾌한 스릴러 정도? 잔인한 영화라고 생각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전에 <컨저링>이란 영화 카피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였나. 근데 막상 영화는 갑자기 뭐가 튀어나오게 하고 음악으로 긴장감 주고 완전 뻥이었잖아요. <조난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스릴러잖아요(웃음). 물론 스릴러 장르라 쫄깃한 맛은 있죠. 하지만 사지절단하고 뭔가 갑작스럽게 공포감을 주는 장면은 없어요. 피는 살짝 나와요. 아주 조금(웃음)."

"<낮술> 감독답게 노영석 감독은 역시 술통령"

 영화 <조난자들>의 한 장면.

영화 <조난자들>의 한 장면. ⓒ CJ E&M


영화와 여러 드라마를 거치며 관록이 쌓인 오태경이었지만 노영석 감독과의 작업은 신세계였다. <낮술>에서 송삼동을 발굴했던 노 감독은 영화 전면에 경험있는 기성 배우가 아닌 신인 배우 전석호를 내세웠고, 작업 스타일 역시 현장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이기보다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전석호와는 이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어요. 처음에 걱정은 있었죠. 그 친구의 실력을 걱정한 게 아니라 연극 무대, 그러니까 카메라 안이 아닌 공개된 넓은 무대에서 놀던 친구라 어색한 부분이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제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큰 무리가 없었어요. 똑똑한 친구라는 걸 느꼈죠.

노영석 감독님은 <낮술>을 연출한 분답게 '술통령'이시더라고요. 석호도 그렇고 두 사람이 술을 좋아하다보니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 무진장 마셨어요. 대본 리딩하러 만나서 40분 정도 하고 6시간 술 먹고, 그 다음 날도 1시간 리딩하고 5시간 술 먹고, 어휴.(웃음) 또 감독님이 배려심이 엄청나요. 그가끔은 너무 과한 배려가 불편하더라고요.(웃음) 농담이고요. 선구안이 진짜 좋은 분 같아요. 석호를 찾아낸 것도 그렇고, 제게 학수 역을 맡긴 것도 그렇고요. 근데 왜 절 학수 역으로 꼽았는지 이유는 아직 못 들었네요(웃음)."

눈으로 고립된 강원도 지방에서의 촬영이었기에 현장이 무척 추울 법했지만 오태경은 "난 겨울 촬영에 특화된 배우"라며 웃어 보였다. 이미 장동건과 김인권 등과 함께 영화 <마이웨이>를 경험한 터였다. 오태경은 "<마이웨이> 때 발열 내의와 레깅스 등등을 다 써봤다"고 회상했다.

"7살부터 연기 시작한 아역 출신, 그래서 더 성장하기 어렵다"

 영화 <조난자들>에서 학수 역의 배우 오태경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선구안이 진짜 좋은 분 같아요. 석호를 찾아낸 것도 그렇고, 제게 학수 역을 맡긴 것도 그렇고요. 근데 왜 절 학수 역으로 꼽았는지 그 이유는 아직 못 들었어요(웃음)." ⓒ 이정민


영화 <화엄경>으로 데뷔한 오태경은 사실 7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아역 배우 출신이다. 드라마 <육남매>로 당시 신인이었던 송혜교보다 앞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스타성 또한 갖춘 배우였다. 대중들에겐 <올드보이> 최민식의 아역으로 많이 알려졌고, 그 때문에 종종 유지태의 아역이었던 유연석과 함께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이후 돌연 갑상선 항진증을 겪으며 공백기를 가졌다.

"사실 공백기는 몸이 아파서라기보다는 일이 없어서 생긴 거예요. 당시 기자 분들이 잘 써주신 거죠. 영화 <알포인트> 출연 이후 갑자기 대중적 관심이 커져서 시나리오가 엄청 들어왔던 때였고, 속으로 이 관심을 어떻게 감당하나 고민도 했었는데 다른 작품을 다 마다하고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을 정했거든요. 몇 개월 정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돌연 그게 엎어지더라고요. 그리고 갑상선에 이상이 온 거죠. 군대도 그 때문에 안 가게 됐고요. 한 8개월 놀았나? 사람 일이 참 재밌는 게 그렇게 들어오던 작품이 그때 싹 끊기더라고요."

20년 이상을 연기에 매진했다지만 오태경은 "<육남매>를 하기 전까진 엄마가 시켜서 연기를 했다"며 "남들은 집안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지만 난 집안의 강요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재치 있게 연기 입문 시절에 대해 운을 뗐다. "자연스럽게 연기에 욕심이 생겼고, 이젠 그 누구보다 갈망한다"며 오태경은 의욕을 드러냈다. 이제 아역 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진 않지만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들과 현재 아역 배우를 보며 나름 느끼는 게 많을 법했다.

"제가 아역일 때는 시키는 것만 하곤 했는데 요즘 아역 친구들 보면 참 영특하다는 걸 느껴요. <화엄경> 때는 진짜 아무 것도 몰랐죠. 철학적인 작품이고, 제가 출연했다지만 지금 봐도 내용을 잘 모르겠어요(웃음). 10대 연기는 내 자신에게 창피해요. 스스로 개발하고 만들어 온 게 아니었거든요. 제가 또 수줍음이 많았어요. 당시 볼 살이 많아서 하도 주변에서 살 빼라고 뭐라 하니까 울면서 밥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화려했던 옛날이여? "과거를 먹고 살지 마세요"

 영화 <조난자들>에서 학수 역의 배우 오태경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과거를 먹고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역 출신이니 더 멋진 성인 연기자가 돼야지라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지금은 고딩 역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왜 억지로 몇 년을 앞당겨서 압박을 느껴야 해요? 지금 충실하게 하면 되죠." ⓒ 이정민


아역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올드보이>에서 함께 호흡했던 유연석의 최근 상승세를 보고 스스로 비교하는 마음이 드는지 물었다.

"근데 연석이가 <응답하라1994>를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그걸 잘해냈기에 관심을 받는 거죠. 대중적 관심을 신경 써 본적은 없어요. '10년 전 함께 했던 연석이는 이렇게 떴는데 난 왜 이러지?' 이런 생각은 1프로도 안 해봤어요. 자괴감을 가질 게 아니라 축하할 일이죠. 연석이도 나름 오래 연기를 했고, 저 역시 진실하게 절박하게 하다보면 소수일지언정 누군가에게 인정받겠죠. 

그리고 왕년에 잘 나가지 않았떤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들 전성기가 있지. 기자님도 있잖아요.(웃음) 과거를 먹고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역 출신이니 더 멋진 성인 연기자가 돼야지'라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지금은 고등학생 역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왜 억지로 몇 년을 앞당겨서 압박을 느껴야 해요? 지금 충실하게 하면 되죠."

그에겐 많은 끼가 있었다. 인터뷰 안에 다 담진 못했지만 대학 시절엔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기보단 오히려 연출과 기획을 많이 경험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당시 엉터리 연출이라고 질타를 받았다지만 그가 맡았던 작품은 '상식을 벗어난 연출'이라며 최다 관객 기록을 이끌어 내기도 했단다.

어쩌면 오태경의 행보도 '상식을 벗어난 길'일 수도 있겠다. 인기와 작품 규모에 연연하기보다 본인이 즐겁게 또 잘 해낼 수 있는 길을 우직하게 가고 있다. "충실하게 준비했으니 단 5미터를 가더라도 조심스럽게 이젠 앞으로 나가고 싶다"며 오태경은 각오를 다졌다. 목표나 계획은 없단다. 그저 그는 "굉장히 연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짧은 다짐이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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