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16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첫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러시아는 무려 56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투입했고, 테러를 막기 위해 4만여 병력을 투입하며 대회를 안전하게 치러냈다. 또한 금메달 12개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박수를 받은 올림픽은 아니었다. 러시아의 동성애법 통과, 반정부 인사 탄압 등에 항의하는 뜻으로 적잖은 국가의 정상이 개막식에 불참했고,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당혹스러운 판정은 큰 오점을 남겼다.

금메달 4개 이상과 동계올림픽 3회 연속 '톱 10' 진입을 목표로 세웠던 한국은 금메달 3개·은메달 3개·동메달 2개로 총 8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13위 성적을 거뒀다. 한국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또한 '피겨 여왕' 김연아, 한국 빙속의 '맏형' 이규혁과도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오는 2018년 평창에서 더 좋은 활약과 성과를 보여주고, 더 훌륭한 올림픽을 만든다는 각오다.

한국, 메달 줄었지만 희망 봤다

한국의 금메달이 4년 전 밴쿠버 대회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믿었던 '효자 종목'의 부진이 컸다. 남자 쇼트트랙은 대표팀의 부상과 슬럼프가 겹쳤고, 안현수의 귀화로 더욱 위축되면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12년 만에 노메달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밴쿠버 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하며 새로운 효자 종목으로 떠오른 스피드 스케이팅도 이번에는 빙속 최강국 네덜란드의 높은 벽에 막혀 금메달과 은메달 하나씩 따는 데 그쳤다.

올림픽 남자 500m 2연패에 도전한 모태범은 4위로 밀려났고, 남자 5000m 은메달리스트 이승훈은 12위에 그치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그는 대회 막판 후배 선수들을 이끌고 남자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희망을 찾았다.

한국 빙속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국내에서 국제 규격을 갖춘 전용 경기장은 단 하나뿐이다. 국가적인 지원과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으로 실력파 선수를 쏟아내며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만 무려 23개의 메달을 가져간 네덜란드는 우리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반면 여자 선수들은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이상화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스피드 스케이팅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고, 여자 쇼트트랙은 경쟁국의 끈질긴 견제와 추격 속에서도 금메달 2개를 수확하며 한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비록 메달은 따내지 못했지만 역사도 짧고 선수도 많지 않은 여자 컬링은 올림픽에 나선 10개국 가운데 가장 세계랭킹이 낮지만 3승 6패의 성적으로 8위에 올랐다. 또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등 썰매 종목은 여전히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으며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래도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갈아치우고 젊은 유망주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훈련 시설이 보강되면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해볼 수 있다.

안현수부터 김연아까지... 한국 뒤흔든 논란들

한국에게 소치 올림픽은 '논란'으로 뒤덮인 대회였고, 그 시작은 '빅토르 안' 안현수였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는 500m, 15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3관왕에 올라 '쇼트트랙 황제'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에 올랐던 안현수는 국적을 바꿔 8년 만에 출전한 소치 올림픽에서 다시 3관왕에 오르며 올림픽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보유한 선수가 되었다. 

안현수는 러시아의 금메달 12개 중 3개를 책임졌고, 이는 한국 선수단 전체가 따낸 금메달과 같다. 안현수는 러시아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반면, 한국 팬들은 국가대표였던 우리 선수가 다른 나라의 국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허탈해 했다.

안현수의 활약에 밀려 12년 만에 충격의 '노메달'에 그친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그늘은 더욱 짙어 보였다. 선수를 파벌 다툼의 희생양으로 만든 빙상연맹에 거센 비난이 쏟아지면서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를 언급했다. 

거센 후폭풍에 마음고생을 겪은 안현수는 "파벌은 귀화의 직접적 이유가 아니었다"며 해명에 나섰다.

안현수 사태가 가라앉기도 전에 김연아가 최고의 연기를 펼치고도 금메달을 놓치는 판정 논란이 벌어졌다. 전 세계 외신과 피겨의 전설들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와 김연아의 뒤바뀐 메달에 의문을 던지고 있지만 올림픽과 국제빙상연맹은 공정하게 판정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메달을 떠나 김연아는 모두가 인정하는 '피겨 여왕'이 되었고, 최고의 연기로 보답했다.

설상 종목,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빙상 종목과 달리 눈 위에서 펼쳐지는 설상 종목의 부진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았다. 한국은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스노보드 등 다양한 설상 종목에 도전장을 던졌으나 아무도 메달권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20살 남짓한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약진하면서 4년 후 평창에서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최재우는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 경기에서 상위 12명이 겨루는 결선 2라운드까지 진출했다.

첫 공중묘기에서 백 더블 풀(뒤로 돌면서 720도 회전)을 마치고 너무 서둘러 내려오다가 스텝이 꼬여 코스를 이탈하는 실수로 실격을 당했지만 한국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결선 무대를 밟았다.

올 시즌 월드컵 대회에서 10위권에 진입하며 기대를 모았던 남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의 이광기도 예선에서 최종점수 69.50점으로 11위를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1.72점이 부족해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영국은 제니 존스는 33살의 나이에 스노보드 슬로프 스타일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영국의 동계올림픽 참가 9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설상 종목 메달을 선사했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도넛 가게와 골판지 공장 등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스토리까지 더해지며 존스는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번 소치 올림픽부터 설상 종목에서만 금메달이 10개나 늘어났다. 안방에서 열리는 다음 올림픽을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과연 한국도 평창에서 첫 설상 메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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