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또 하나의 약속>에서 택시기사 상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또 하나의 약속>에서 택시기사 상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 이정민 기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개봉은 누구보다 박철민에게 꿈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첫 소개될 당시 해운대 포장마차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을 당시만 해도 제대로 배급이 될 수 있을지 걱정했던 그였다.

지난 6일 개봉한 이후 영화는 목표했던 상영관 수는 얻지 못했지만 나름 관객들을 '잘' 만나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박철민에게도 '연기 인생 26년 만의 첫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기 전에 '애틋한 작품'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황유미씨의 실화를 다뤘다는 이유 때문인지, 박철민은 배우로서 겪지 않아도 될 과정을 겪었다. 극 중 산업재해로 딸을 잃은 아빠 한상구 역을 맡았고, 주연이었기에 그만큼 느꼈던 책임감도 컸을 터. 멀티플렉스 극장의 상영관 축소 논란 등의 이슈에 박철민은 조심스럽게 "서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개봉을 했으니) 정말 활이 시위에서 떠났네요. 부담도 있었고 걱정도 됐고, 지금도 이 영화의 운명이 불확실하고, 상황은 여의치 않아 여러 생각이 교차하네요. 그래도 관객분들 반응을 보면 이 시점에 <또 하나의 약속>이 필요한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많이들 기다리셨다는 것을 느껴요. 사실 빨리 이 작품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홍보도 막바지고 당장 드라마와 다른 영화 촬영도 있거든요. 근데 떠나보내기 쉽지 않아요. 아마도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단 한관 남을 때까지 계속 전 돌아볼 거 같아요."

"아빠, 꼭 출연해"...노동문제 공부하는 딸의 권유

 영화<또 하나의 약속>에서 택시기사 상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렸을 때 좀 못살지만 화목한 집에 가면 느낄 수 있던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 있잖아요. 우리가 그랬어요. 더 왁자지껄했고, 사람 냄새가 났죠. 비록 김밥과 물로 연명했지만 서로 사정을 아니까 연기로 더 채워주려고 한 거 같아요." ⓒ 이정민


박철민은 이번 작품으로 영화 원제처럼 '또 하나의 가족'을 얻었다. 드라마로 이미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윤유선을 비롯해, 이번에 부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박희정, 그리고 김규리, 이경영 등과 뭉쳤다. 제작비 전액을 시민들의 모금으로 진행할 만큼 외부 환경은 어려웠지만, 그게 동시에 내부적으로 단단하게 뭉칠 수 있는 계기였단다.

"어렸을 때 좀 못살지만 화목한 집에 가면 느낄 수 있던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 있잖아요. 우리가 그랬어요. 더 왁자지껄했고, 사람 냄새가 났죠. 비록 김밥과 물로 연명했지만 서로 사정을 아니까 연기로 더 채워주려고 한 거 같아요. 더 밀도 있고 집중력있게 했다고 할까. 이 영화를 하게 된 것에 후회는 없어요. 다만 내가 티켓파워도 없고, 송강호·김윤석씨처럼 연기로 정평난 배우가 아닌 게 미안할 따름이죠.

김태윤 감독과 박성일·윤기호 PD가 참 힘들었을 텐데 내색을 안 하더라고요. 제작이 한 달, 두 달 밀리는 걸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배우와는 입장이 다르죠. 그래도 웃으면서 돈 구해왔다고 좋아하고, 격려하는데 연기는 오히려 이 사람들이 해야겠더라고요. 너무 능청스러워서(웃음). 최영환 촬영 감독도 이 작품 기다리느라 다른 비싼 상업영화 여러 개를 포기했어요. <베를린><도둑들>을 담당했던 그 베테랑 촬영 감독이 말이죠. <또 하나의 약속>은 결국 이들 덕에 만들어졌어요."

진짜 가족, 그러니까 그의 아내와 두 딸은 어땠을까. <또 하나의 약속>에 출연을 권유한 게 바로 대학생인 큰 딸이었다. 학교에서 노동 문제를 공부하는 큰 딸은 박철민이 받아 온 시나리오를 읽고, "꼭 출연했으면 좋겠다"며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개봉 후에 홍보로 바빴던 박철민은 모녀가 영화를 함께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영화에 보편적 정서가 있다는 뜻이니 속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며 박철민은 당시 소회를 전했다.

"이기적으로 살던 나, 이 영화로 옆도 돌아보게 됐다"

 영화<또 하나의 약속>에서 택시기사 상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쩌면 <또 하나의 약속>을 통해 철없는 속물 놈이 좀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저 내 중심대로 이기적으로 살았는데 옆을 좀 돌아보게 됐다고 할까. 배우 입장에서 보면 절제하는 연기의 깊이를 알게 됐어요." ⓒ 이정민


인터뷰 중 박철민은 "난 부족한 배우"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80여 편의 필모그라피를 돌아보며 흡족해하기보다는 작품마다 남아 있던 아쉬움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졌다. 

"연기를 20년 넘게 했다지만 내 자신에게 '좀 원숙해지면 안 되냐? 왜 이리 느리냐?'라는  질문을 종종 해요. 답은 없죠.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모자람이 있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럼 다른 일 할래?' 이렇게 물으면 답은 나와요. 연기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니, 제 장점을 아끼고 발휘해야하는 거죠. 부족하다는 생각에 혼자 얼굴이 빨개지다가도 막 웃어보기도 합니다. 비록 제가 최고의 배우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궁금함을 가질만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해요.(웃음)"

겁 없이 작품에 뛰어들고, 스스로에게 잘 하고 있다며 다독이는 자신감이 박철민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부족함이 많기에 노력해서 채우는 배우지만 일단 작품에서는 그 순간은 내가 잘 하고 있다는 마음을 먹는다"며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보였다. 박철민을 박철민답게 하는 매력의 팔할이 곧 긍정적 생각이었다.

"근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요즘엔 자신감이 떨어지네요. 보다 이성적으로 관조하게 되는데, 이게 독이기도 하고 약이기도 해요. 어쩌면 <또 하나의 약속>을 통해 철없는 속물 놈이 좀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저 내 중심대로 이기적으로 살았는데 옆을 좀 돌아보게 됐다고 할까. 배우 입장에서 보면 절제하는 연기의 깊이를 알게 됐어요. 물론 머리로는 여러 감정을 삭이는 역할을 알지만 직접 경험하며 새로운 세계를 느낀 거죠."

경력에 비해 과한 겸손함이 아니냐 물으니 박철민은 "그렇다고 중견배우는 아니지 않나"라고 항변했다. 그는 스스로를 중견 배우가 아닌 '중간 배우'라 정의했다. 더욱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내로라하는 배우들 사이에 나름 스스로를 가늠한 말이었다.

"그저 숨 거둘 때까지 현역 배우이고 싶어"

 영화<또 하나의 약속>에서 택시기사 상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상영관 문제는 참 안타깝지만 전철을 갈아타고, 버스를 갈아타면 의외로 상영관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옆 동네, 옆 도시에서 보겠다는 분들도 많아요. 이렇게 생각하고 보시는 분들 덕에 위로가 됩니다. (웃음)" ⓒ 이정민


박철민의 이런 성격은 후배들로 하여금 마음 열고 다가오게 만든다. 연기에 고민하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박철민은 "너는 아름답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곤 한단다. "의심과 자기 비판이 물론 필요하지만 될 수 있으면 힘을 전하는 말을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연기를 배우는 기간에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죠. 연기에 대해 10원이라도 돈을 받는 프로가 됐을 때 하는 말입니다. 젊은 배우들이 이순재, 신구 선생님 같은 연륜과 깊이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반대로 그 분들이 표현할 수 없는 싱싱함이 있잖아요. 아름다워 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많이 줍니다. 자신감과 의심이 균형을 잡고 있기에 이 자리에서 버티는 거죠. 저 역시 자학만 했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진 못할 겁니다." 

"숨을 거둘 때까지 오래 현역배우로 남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었다. 대중 앞에 서는 만큼 그들의 사랑을 받는 게 숙명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철민은 "큰 역할을 쫓으며 동분서주하기보다는 나이 먹어서 한 달에 한두 번 카메라 앞에 서더라도 대중의 인정을 받는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또 하나. 박철민은 <또 하나의 약속>에 상영관이 근처에 없어 영화를 못 보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전했다.

"상영관 문제는 참 안타깝지만 전철을 갈아타고, 버스를 갈아타면 의외로 상영관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옆 동네, 옆 도시에서 보겠다는 분들도 많아요. 이렇게 생각하고 보시는 분들 덕에 위로가 됩니다. (웃음)"

박철민 또 하나의 약속 윤유선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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