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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나라를 방문하거나 한동안 머무르던 외국인들이 한국, 한국 사람에 대해 가장 명료하게 정의내리는 말이 있다. '정이 많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도 이런 말에 동의할 뿐더러, 정이 많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이란 게 무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이란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도 쉽게 내 주변의 사람처럼 잘 받아들여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마음을 나눈다는 이 말, 정말 좋을까? 문제는 사람들이 마음만 나누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속담에도 있듯이, '정'을 무기로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식이 된다는 데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대한민국 사회의 정겨운, 하지만 알고 보면 징글징글한 인간적 관계들이 '불륜'이라는 도덕적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따뜻한 말 한 마디>는 고스란히 그려내 보인다.

주변까지 번져나가는 '불륜'이라는 사건의 파급효과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의 나은진(한혜진 분).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의 나은진(한혜진 분). ⓒ SBS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는 흡사 불륜에 대한 세밀화와도 같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불륜 이후에 게임의 다음 행로를 버튼을 눌러 선택하듯 이혼, 복수 등 명료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과 달리, <따뜻한 말 한마디>는 불륜을 겪는 과정, 불륜 이후의 심리, 불륜이 미치는 파급에 대해 마치 섬세한 조사 보고서라도 되는 양 그려 내고 있다.

덕분에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불륜'이 부부 사이의 흔해빠진 사건이나 이혼이나 간통이라는 법률적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부부 사이에 인간적 모멸과 심지어 파멸까지도 불러오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가져올 만한 사건이라는데 공감대를 충분히 자아내고 있다.

물론, 그간 통속적으로 부부관계를 그려냈던 타 드라마와 달리 섬세한 이런 묘사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보다 대중적인 입지를 차지하는데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인간관계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드라마라는데 있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려가는 세밀화는 이제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들의 배우자를 넘어 존속과 친지의 관계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 대한민국에서만 보일 수 있는 이혼의 풍속도로 그 색채를 변주하고 있다. 처음 은진(한혜진 분)과 재학(지진희 분)이 만났을 때만 해도 불장난 같은 사랑이었다가, 그게 재학의 아내 미경(김지수 분)이 알게 되고, 드디어 성수(이상우 분)까지 알게 되며 본격적인 불륜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두 부부 사이의 일은 언제나 주변 인간들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두 부부, 혹은 네 사람의 일로 그칠 수가 없다. 아직 모두가 자신들이 벌여놓은, 혹은 예상치도 못하게 배우자의 배신으로 겪게 되는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그로인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터지는 폭탄 세례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딸의 불륜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은진(한혜진 분)의 부모.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딸의 불륜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은진(한혜진 분)의 부모. ⓒ SBS


가깝게는, 미경의 가족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재학의 어머니(박정수 분)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잘난 자신의 아들과 번듯한 집안을 내세우며 며느리 미경의 상처를 긁으며 덮을 것을 종용한다. 자기 가족에 대한 자부심을 똘똘 뭉친 은진의 엄마(고두심 분)는 딸의 불륜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지레 앞서 사위를 가족의 이름으로 가둬두려 애쓴다.

공교롭게도 양 집안의 직계 존속들은 그들과 관계가 어떻든, 두 부부의 관계를 봉합하려 애쓴다. 여전히 어른들 세대에서 부부 사이의 믿음이라는 개인적 가치보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적 관계가 우선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미경을 너무 안쓰러워하는 의붓동생 민수(박서준 분)는 누나를 괴롭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은진 부부가 탄 차를 사고로 내몬다. 왜곡된 가족애의 전형이다.

하지만 연예인의 가족사에조차 달려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처럼, 정작 보탬도 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 열 내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은진, 미경과 함께 쿠킹 클래스를 다니던 은진의 대학 선배 영경은 미경에게 위로와 응원의 꽃바구니를 보낸다. 그런가 하면 은진을 쿠킹 클래스로 불러내 갖은 모멸과 물세례까지 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경이 그러는 이유는 자신이 바로 미경처럼 남편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수모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남의 일과 내 자신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지랖의 전형, 심하게는 자아분열의 예시이다.

정작 은진의 동생들, 그리고 미경의 자식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문제를 동네방네 사람들이 알고 자기 일처럼 떠들고 흥분하는 요지경 속이다. 오지랖은 그 영역을 확장한다. 미경에게 수모를 겪는 은진을 본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는 은진의 뒤에서 수군거리고, 천리를 간 은진의 불륜 사실은 동창회에 참석한 성수로 하여금 동창들에게 손찌검을 하게 만든다.

그저 부부간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화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불륜 한 번 했을 뿐인데, 은진은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얼굴을 들고 살아가기 힘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불륜을 일으키고 고통을 받는 당사자들도, 불륜으로 인해 신뢰가 깨지고 사랑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도움의 손길은 멀다. 쿠킹 클래스 선생이 건네 준 정신과 상담 명함을 집어넣고 점집을 찾은 미경의 선택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듯이. 번번이 어긋나는 미경 부부의 노력,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서로가 가져왔던 시간의 깊이에 대한 미련에도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자꾸만 파멸로 떨어지는 은진 부부를 길어 올릴 사회적 두레박은 드라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분주히 어른들 세대의 통념으로 봉합하려는 어설픈 시도거나, 자기 일인지 남의 일인지 구분하지 못하거나, 가십으로 즐기려는 오지랖이 있을 뿐이다. 봉합할 도구도, 상처에 바를 약도 오로지 부부 자신들 말고는 찾아낼 길이 없는 고달픈 부부들의 현실, 그것이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려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륜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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