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논란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의 흥행에 불이 붙었다. 개봉 8일 만에 3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벌써부터 천만 관객 동원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변호인>은 <광해>, <7번방의 선물>보다도 하루 빨리 200만 고지를 점령해 천만 동아리의 가입 가능성이 높아졌다.

<변호인>은 흥행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연일 화제를 쏟아 놓으며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야권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극장으로 향하고 <변호인> 단체관람은 송년회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었다. 한마디로 '변호인 증후군'다.

[흥행요인1] 흥행에 불 당긴 일베의 '별점테러'

 영화 <변호인> 포스터

영화 <변호인> 포스터 ⓒ 위더스필름


<변호인>은 충분히 흥행할 만한 영화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의 강한 흡입력,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와 안정감이 있는 연출,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감성코드 등 흥행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증후군을 일으킬 정도의 영화는 아니다. 물론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천만 관객을 만족시킬 만큼 압도적인 완성도의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흥행 열풍의 요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관람 열풍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변호인> 흥행의 일등공신은 '일베인'(일부 누리꾼들은 그들을 벌레에 비유하지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필요가 있다)들이다. 개봉 직전까지 <변호인>의 네이버 평점은 5점 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12월 24일 현재 네이버 평점은 8.44으로 5일 만에 무려 3점 이상 치솟았다. 역대급 평점 상승률이다. 다음에서도 9.5점을 기록하는 등 대부분의 영화사이트에서 9점을 상회하는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변호인>이 높은 평점을 기록하는 이유는 일베의 '별점 테러'에 대한 '별점 응징'이 국민운동처럼 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인>의 평점은 매우 극단적이다. 1점 아니면 10점이다. 평가구간이 0점에서 100점이었다고 하더라도 0점 아니면 100점이었을 것이다. 7,8,9점 등 상식적인(?) 평점도 간혹 볼 수 있지만 극히 드물다. 영화 사이트에서 10점이 쏟아지면서 <변호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별점 테러'가 오히려 <변호인>의 평점을 높이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 일베의 맹목적인 네거티브 전략(?)은 오히려 <변호인>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변호인>에 대한 지독하게 정치 편향적인 일베인들의 극악한 평가는 <변호인>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를 낮췄다. 게다가 영화는 예상보다는 훨씬 비정치적이었다. 기대치가 낮으면 상대적인 만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변호인>에 대한 기대 이상의 호평은 '일베 효과'라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다면 제작사는 자발적 홍보대사로 맹활약하고 있는 일베인들에게 감사패라도 전달해야 할 것이다. 자고로 사람은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한다.

[흥행요인2] '별점테러'에 이어 '티켓테러'까지?

지난 2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스스로 영화관 매니저로 근무 중이라는 한 누리꾼은 21일과 22일 <변호인>을 각각 100장씩 예매한 고객이 영화 상영 직전 환불하는 일이 10여 차례나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상영 20분 전에 예매를 취소하면 전액 환불받을 수 있는 약점을 이용해 이른바 '티켓 테러'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영화 시작 1분 전에 티켓 100장을 가져와 환불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주장했다.

배급사 측은 "예매 취소 사태에 대해 전달받은 것이 없다"며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현재 사태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일단 배급사 측에서는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지만 '티켓 테러'가 벌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몇 달 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7일 영화 <어떤 시선>의 민용근 감독은 자신의 SNS계정에 '<어떤 시선>에 관련한 어떤 사건'이라는 글을 올려 '티켓 테러'의 의혹을 제기했다. 민 감독의 주장에 따르면 10월21일 개봉 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한 상영을 앞두고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객석의 1/4에 해당하는 좌석이 한 사람에 의해 예매되었다가 상영 직전에 갑자기 모두 환불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10월 30일 부산 상영 때도 "객석의 가장 좋은 자리 1/3이 비어 있는 채로 시네마톡 행사를 진행하였다"며 "의도를 알 수 없으나, 특정 관객에 의해 독점예매 후 대량 취소로 많은 관객들의 관람이 방해받는 일이 벌어졌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10월 30일과 12월 4일 상영 분에 대해서도 한 관객이 대량의 좌석 예매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티켓테러' 의혹을 제기한 민용근 감독의 글

'티켓테러' 의혹을 제기한 민용근 감독의 글 ⓒ 민용근 트위터


10월 24일 개봉한 <어떤 시선>은 민용근, 박정법, 이상철, 신아 등 4명의 감독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선'이라는 기획연작의 10번째 작품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지체 장애인의 우정, 유괴범으로 몰린 택시운전사 등의 이야기를 다룬 진보적 시각의 인권영화다.

진보적 시각의 영화에 대한 이 같은 테러 사례를 고려할 때 <변호인>에 대한 '티켓테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실관계는 좀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아무튼 지극히 일베스러운 어느 장난꾸러기의 귀여운 테러는 오히려 화제를 양산하며 이미 불붙은 <변호인>의 흥행에 기름을 붓고 있다. 홍보 효과를 고려하면 설령 '티켓 테러'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제작사에게는 오히려 이익이었다. 제작사의 자작극이 의심될 지경이다.

[흥행요인3] 흥행의 마침표를 찍은 경찰의 '커피 테러'

3가지 테러 중에 단연 백미는 경찰의 '커피 테러'다. 지난 22일 <변호인> 제작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희소식(?)이 생중계로 전해졌다. 경찰은 민주노총 중앙본부가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을 영장도 없이 압수 수색했다. 민주노총 중앙본부가 '침탈'된 것은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신문사 건물에 전투경찰이 난입한 것도 초유의 사태다.

경찰청장이 정동을 황산벌로 착각했는지 모르지만 5천의 체포결사대는 <정무문>의 이소룡처럼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들, 야당 국회의원과 당원들을 차례로 때려눕히며 보무도 당당하게 14층으로 진격했다(게임 개발자들은 이번 사건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1층부터 14층까지 최루액을 난사하며 진격하는 전투경찰액션게임은 상당한 흥행이 기대된다). 아무튼 박근혜 연출, 이상한(앗 오타다, 이성한) 주연의 시간여행SF공안블록버스터에는 <식스 센스>에 못지 않은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즉각 떠오르게 하는 허무한 결말은 하루 종일 '더 테러 라이브'로 시청률 대박을 꿈꾸던 종편 관계자들을 삽시간에 '멘붕' 시켰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영화 끝에는 모두를 경악시킨 충격적인 쿠키 영상(엔딩 크레딧 뒤에 상영되는 부가영상)이 숨어 있었다. 경찰이 은밀하게 커피믹스를 체포하는 파격영상은 모든 관객들의 허를 찌르는 영화사상 최고의 쿠키 영상이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정당하게 법집행을 한 것이며 작전 실패라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작전의 목표는 철도노조 지도부가 아니라 커피믹스였던 셈이다. 왜 경찰이 커피를 체포하기 위해 왜 5천 명의 대병력을 투입했는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작전명 커피믹스는 실패라고 볼 수 없다. 전 국민을 완벽하게 속인 기발한 작전이었다.

 경찰의 민주노총 압수수색을 풍자한 누리꾼의 패러디

경찰의 민주노총 압수수색을 풍자한 누리꾼의 패러디 ⓒ 아이디 @pyh**


경찰의 '커피테러'는 YH사건을 직접적으로 연상 시킨다. 유신독재가 종말로 치닫던 1979년, 경찰이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성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다. YH사건은 김영삼 의원 제명과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10.26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다.

비극으로 막을 내렸던 YH사건은, 마치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유명한 마르크스의 명제처럼, 희극으로 다시 한 번 재연되었다. 마르크스의 명제가 유효하다면 다음에는 국회의원 제명(놀랍게도 이석기 의원 제명과 통합진보당 해산이 이미 추진되고 있다)과 국민항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번에는 희극이니까.

커피 테러로 대표되는, 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극장으로 간다. 현실은 <변호인>에 그 어떤 영화도 흉내낼 수 없는 초현실적 사실성을 불어넣었다. 과거와 현재,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변호인>의 기묘한 사실주의는 관객들에게 값비싼 3D영화나 4DX영화로도 맛볼 수 없는 생동감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일베의 '별점테러'는 1천만 관객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경찰의 '커피테러'는 1백만 노동자의 총파업을 불렀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현실은 <변호인>을 천만영화로 떠밀고 있다. 아무튼 천만 흥행은 운이 따라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변호인 커피믹스 티켓테러 별점테러 최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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