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KBS 2TV 일일드라마 <루비반지>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일 기준으로 시청률 18.9%(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동일)를 기록하며 종전의 최고 시청률을 갈아 치운 것은 물론이고, 스토리 전개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 역시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루비반지>의 선전은 '복수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시청자들의 식지 않는 관심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모은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복수극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960~70년대] <월하의 공동묘지>와 <청춘의 덫>

 한국 공포영화의 조상격인 <월하의 공동묘지>

한국 공포영화의 조상격인 <월하의 공동묘지> ⓒ 한국영상자료원

아직 TV가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시절,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복수극은 공포 영화였다. 1967년 제작된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국고전 공포영화의 상징이자 B급 컬트무비의 선두격이라고 할 수 있는 <월하의 공동묘지>는 한 서린 처녀귀신이 자신을 괴롭힌 시어머니와 악당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가한다는 내용으로 개봉 당시 관객들의 폭발적 사랑을 받았다.

<오부자>로 유명한 권철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강미애, 박노식, 도금봉, 정애란, 허장강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작품이다. 특히 도금봉과 허장강은 이 영화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악역 연기를 확실히 소화해 '역시 명배우'라는 찬사를 얻었다. 무덤이 갈라지며 처녀 귀신이 튀어나오고,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등의 파격적 설정은 훗날 한국 공포 영화의 토대가 됐다.

1970년대 본격적인 'TV 시대'가 개막하면서 복수극은 처녀귀신류의 공포 영화에서 벗어나 하나의 드라마 장르로 완전히 독립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복수극의 원형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 바로 1978년 MBC에서 방영 된 드라마 <청춘의 덫>이다.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가 대본을 쓰고 이효춘, 이정길, 김영애, 박근형이 주인공을 맡은 작품으로 미혼모가 자신을 버린 남자에게 처절한 복수를 한다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내용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내용이 사회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방송심의회의 제재를 받았고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조기종영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집필을 맡았던 김수현은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청춘의 덫>의 마지막 장면을 아무런 결론조차 내지 않은 채 "나 혼자 망할 것 같아!"라는 이정길의 비명과 그를 쏘아보는 이효춘의 얼굴로 어정쩡하게 마무리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의 덫>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대단한 것이어서 동명의 소설이 오랜시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1년 뒤인 1979년 김기 감독에 의해 영화 <청춘의 덫>으로 만들어져 다시 한 번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청춘의 덫>에는 '70년대 트로이카' 유지인을 비롯해 한진희, 원미경, 박근형 등이 출연했다. 원미경은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 여우신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1980년대] '유괴'부터 '치정'까지, 다양해진 복수극

 김희애 주연의 MBC <내일 잊으리>

김희애 주연의 MBC <내일 잊으리> ⓒ MBC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복수극의 형태는 한층 다채롭고 현란하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월하의 공동묘지>의 영향을 받은 고전 공포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었음은 물론이고, <청춘의 덫>과 비슷한 치정 멜로와 80년대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유괴'를 소재로 한 작품들 또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과 컬러 TV 보급이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 것도 복수극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월하의 공동묘지>와 함께 귀신 영화의 대표격으로 손꼽히는 <월녀의 한>(1980)과 <여곡성>(1986), 관객의 심리를 치밀하게 파고들며 훌륭한 스릴러를 그려낸 <깊은 밤 갑자기>(1981) 등이 바로 80년대 극장가를 수놓은 작품들로 이 시기 한국 공포영화는 인간 내면의 복수심과 공포심을 극대화 시키는 한편 다양한 연출 기법을 시도하며 양적, 질적 발전을 일궈내기 이른다.

1988년 방송 된 김희애 주연의 MBC 드라마 <내일 잊으리> 또한 큰 사랑을 받은 복수극이다. 출세와 야망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버리고 떠난 남자와 그에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절한 복수를 가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내일 잊으리>는 김희애와 임채무, 이휘향의 명연기와 박정란 작가의 탄탄한 극본이 어우러져 <청춘의 덫>에 버금가는 치정 멜로의 극치를 선사한 작품이다.

특히 가구 디자이너로 성공한 김희애가 임채무와 이휘향을 궁지로 모는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줬으며,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임채무가 교통사고로 죽고 이를 지켜보며 통곡하는 김희애의 모습은 복수의 허망함과 부질없음을 깨닫게 한 명장면 중 하나였다.

이 드라마와 함께 확실한 MBC 간판 여배우로 떠오른 김희애는 이 후, <산 너머 저쪽><이별의 시작><폭풍의 계절><아들과 딸> 등을 히트시키며 1991년과 1993년 MBC 연기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박철수 감독의 영화 <에미>

박철수 감독의 영화 <에미> ⓒ 한국영상자료원


1980년대의 사회 문제 중 하나였던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복수극도 있었다. 바로 1985년 제작된 영화 <에미>다. 내용은 파격의 극치다. 남편을 잃고 딸 나미와 단란하게 살고 있는 홍여사에게 어느 날 비극이 닥친다. 딸 나미가 납치단에 의해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다. 나미는 사창굴에 끌려가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를 알게 된 홍여사는 복수심에 치를 떨며 딸을 납치한 범인들을 차례차례 잔혹하게 살해한다.

혈흔이 낭자한 충격적 영상과 몰입도 높은 스토리로 1985년 나온 작품들 중 가장 큰 이슈를 몰고 다녔던 영화 <에미>는 그 해 대종상 최고 작품상을 비롯해, 편집상과 신인 여우상을 받는 금자탑을 쌓았다. MBC PD 출신인 박철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윤여정과 전혜성이 홍여사와 나미를 연기했으며, 윤여정의 소개로 그의 절친한 친구인 드라마작가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박철수 감독은 김수현과의 강렬했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거실과 통하는 주방으로 햇살이 비껴 떨어지고, 왼손에 담배를 든 채 가스불을 조절하며 음식이 알맞게 익을 때까지 레인지 앞을 떠나지 않고 찬찬히 생각에 잠긴 채 오래도록 서 있는 뒷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았고 근사했다. 이윽고, 공부에 열중해 있는 딸을 친구처럼 부르며 이층으로 올라가 딸을 데리고 와 식탁에 앉히기까지, 난 그 모습을 영화 <에미>에서 윤여정 씨를 통해 그대로 재현했고 아직도 내가 가장 아끼는 화면 중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김수현 단상(박철수) 중)

재밌는 사실은 평단 뿐 아니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을 정작 시나리오 작가였던 김수현은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신이 의도한 시나리오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대종상은 김수현에게 시나리오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김수현이 위와 같은 이유로 수상을 단호히 거부해, 결국 그 해 시나리오상은 <깊고 푸른 밤>의 작가 최인호에게 돌아간 일도 있었다.

[1990년대] <빙점>부터 <청춘의 덫>까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다

 채시라 주연의 MBC <아들의 여자>

채시라 주연의 MBC <아들의 여자> ⓒ MBC


1990년에 들어서면서 복수극은 한층 촘촘해진 완성도와 다양한 소재, 탄탄한 극본으로 변함없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1990년 방송된 KBS 수목드라마 <빙점>은 90년대 복수극 중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일본의 여류 소설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물보라><은실이><푸른안개> 등으로 유명한 작가 이금림의 각색으로 더욱 세련미를 갖출 수 있었다.

한 여자가 남편의 후배와 밀회를 나누다가 유괴범의 손에 딸을 잃고, 남편은 불륜에 대한 복수로 유괴범의 딸을 입양해 아내에게 키우게 한다는 내용으로 김영애, 임동진, 이미연 등이 출연해 인기를 모았다. <빙점>은 14년이 흐른 2004년에는 <사랑이 꽃피는 나무><토지>로 이름을 날린 최수지가 주연을 맡아 다시 한 번 리메이크 된 바 있다.

1994년에는 MBC 수목드라마 <아들의 여자>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복수를 위해 그의 형을 유혹해 집안을 파멸시킨다는 파격적 내용으로 방영 당시 스토리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비정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시청률만큼은 남 부럽지 않게 높았다. 방송 초반 SBS <모래시계>와 맞붙어 10%대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모래시계> 종영 후, 시청률이 폭등해 최고시청률 49.7%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우리들의 천국><폭풍의 계절><아파트><육남매> 등으로 유명한 최성실 작가가 대본을 썼고, 당시 김희애-최진실과 함께 MBC 트로이카 중 한 명이었던 채시라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특히 채시라가 나이트클럽에서 빨간 드레스 하나만을 걸친 채 선보였던 섹시 댄스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명장면이다. 채시라는 이 작품으로 1994년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심은하 주연의 SBS <청춘의 덫>

심은하 주연의 SBS <청춘의 덫> ⓒ SBS


1997년 방송 된 <미망> 또한 복수를 소재로 차용한 작품 중 하나다. 1995년 발간된 동명의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사극의 달인' 임충이 극본을, 이재갑 PD가 연출을 맡았다. 일본인 하야시에게 피살 당한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거상으로 성장하는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미망>은 특히 여주인공 채시라와 하야시 역의 최주봉의 불꽃 튀는 대결이 시청포인트였다. 치밀한 준비 끝에 하야시를 총살하며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채시라의 모습은 <미망>을 통틀어 가장 통쾌했던 장면 중 하나였다.

1999년에는 1978년에 대히트 했던 <청춘의 덫>이 리메이크 되어 다시 한 번 큰 사랑을 받았다. 심은하, 이종원, 유호정, 전광렬의 열연이 돋보였던 <청춘의 덫>은 최고시청률 53.1%의 경이로운 기록으로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는데 "당신 부숴 버릴거야", "신은 죽었어. 복수는 내가 해." 등의 명대사들은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는 유행어다. 심은하는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배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바 있다.

[2000년대] '막장'부터 '걸작'까지, 계속되는 복수극의 진화

2000년대 복수극은 영화와 드라마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 발전했다. 때로는 너무 자극적인 전개로 '막장'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그에 비례하여 '걸작'에 가까운 작품들도 대거 출현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그 대표적 예다. 송강호 주연의 <복수는 나의 것>을 시작으로 최민식 주연의 <올드보이>, 이영애 주연의 <친절한 금자씨>는 여전히 박찬욱 영화의 백미이자 전성기의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에 박찬욱이 있었다면 드라마에는 김지우가 있었다. 김지우 작가의 '복수 3부작'으로 유명한 <부활><마왕><상어>는 촘촘한 스토리 진행과 확고한 캐릭터 구축,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다만, 안방 채널권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부 시청자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지 못한 관계로 흥행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고수 주연의 <그린로즈>, 이준기 주연의 <개와 늑대의 시간> 등은 각각 스릴러와 느와르를 복수극과 접목시켜 새로운 형태로 진화시킨 작품이다. 시청률 또한 매우 좋았을 뿐 아니라 탄탄한 스토리 전개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김인영 작가의 복수 시리즈물인 <태양의 여자>와 <적도의 남자> 또한 초반 낮은 시청률을 극복하고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던 히트작들이다.

 장서희 주연의 MBC <인어아가씨>(좌)와 SBS <아내의 유혹>(우)

장서희 주연의 MBC <인어아가씨>(좌)와 SBS <아내의 유혹>(우) ⓒ MBC, SBS


그러나 여전히 막장 드라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도 많았다. 장서희의 출세작인 <인어아가씨>는 강렬한 복수극의 전형적 형태를 띄며 50%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무리한 연장과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던 작품이다. <인어아가씨>의 대본을 쓴 이는 최근 <오로라 공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임성한 작가다.

장서희의 재기작이기도 한 <아내의 유혹> 역시 마찬가지 케이스다.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자극적 내용 안에 불륜, 이혼 등 다양한 소재를 녹여냈던 <아내의 유혹>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전개로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하지만 시청률은 굉장히 높아서 장서희는 그 해 SBS 연기대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복수극은 지난 반세기 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가 계속 되는 한 복수극의 명맥 또한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앞으로 남은 과제는 복수극에 대한 재해석과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려는 꾸준한 노력일 것이다. 복수극이란 장르가 진화와 발전을 멈추지 않기를 대중의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