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존재감을 드높인 연상호 감독이 신작 <사이비>로 돌아왔다. 지배자인 개와 피지배자인 돼지들의 현저한 이분법에 기초하여 폭력의 악순환을 선명하게 각인했던 <돼지의 왕>. 시간과 더불어 악화일로를 겪는 세상의 치유할 수 없는 숱한 폭력의 연쇄를 섬뜩하게 그려낸 <돼지의 왕>.

<사이비>는 믿음과 진실, 개인과 집단, 세속과 교회 같은 대비를 전면에 배치하고, 그 이면에 내재한 인간과 세상의 본질에 문제를 던진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것은 언제나 진실에 기초하고 있는지, 그 진실이란 것이 언제나 진실인지 등에 대한 문제를 던지는 영화가 <사이비>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한 달 남은 2013년 달력과 한국사회가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이런 기시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주 명백한 사실관계마저 권력기관의 힘으로 축소되고 은폐되는 세계 최고의 '스마트한' 한국사회의 질곡!    

수몰예정 지구에서 드러난 인간의 표상들

 영화 <사이비> 스틸컷.

영화 <사이비> 스틸컷. ⓒ 스튜디오 다다쇼


수몰예정 지구에 커다란 임시천막이 들어선다. 밤이면 밤마다 붉은 십자가가 유령처럼 빛나고, 사람들이 소리 높여 '주 예수'를 찬양한다. 평온하고 한적한 마을 사람들을 느닷없이 예수의 어린 양으로 만들어낸 장로 최경석. 그가 마을에 들어온 데에는 까닭이 있다. 수몰민들이 받은 거액의 보상금을 가로채기 위함이다.

평생 농투성이로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의지할 그 무엇이 절실하다. 물에 잠기게 될 고향을 떠나야 하는 그들의 절박함을 파고 든 인물 최경석. 마을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기도원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는 최경석 장로. 신출내기 목사 성철우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사이비 이적을 창조해내는 비루한 인간 최경석.

고약한 사건에 연루된 성철우의 과거도 관객을 매혹한다. 단 하나의 흠집 때문에 거룩한 목자에서 타락자로 전락하는 성철우에게서 느껴지는 비루함 혹은 인간적 연민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백미 가운데 하나는 성 목사가 연출하는 영선의 편지 대독일 것이다. 그의 놀라운 변신에 전율하지 않는 관객은 없을 듯하다.

성철우와 최경석이 천국행 기도원 장사 행각을 벌일 즈음 등장한 인물 김민철. 가정폭력을 일삼는 술주정뱅이 김민철. 공장 노동으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한 딸 영선의 통장마저 털어내 도박하고 술 먹는 개차반. 아무에게나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는 야만과 폭력의 화신 김민철. 이런 인물설정과 대결구도를 바탕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권선징악'·'할리우드'식 영화 문법은 가라

<사이비>가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인 영화문법을 거스른다는 사실이다. 이분법에 기초한 '권선징악' 구도나 가족주의를 설파하는 할리우드 영화문법을 분쇄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갈등을 인도하여 사건을 추동하는 동력은 김민철에게서 나온다. 그는 모든 인물과 투쟁하고 갈등하며 대결한다. 지독스레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태의 진실을 깨닫고 허위를 밝혀내려는 김민철에게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객석도 동의하지 않는다. 아내와 딸자식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술꾼이자 도박자에게 누가 선뜻 동의하겠는가. 여기가 연상호 감독이 허방다리를 부설한 지점이다. 그는 우리와 같은 편에 속한 사람들의 본질을 묻는다.

성철우 목사와 최경석 장로의 대결구도 역시 흥미롭다. 성철우는 기도원 건립을 약속한 최경석을 믿고 온순한 앞잡이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사기꾼 최경석의 속셈으로 인해 그들 내부의 충돌과 대결은 불가피해진다. 양처럼 순결해 보이는 성철우의 어둑한 과거를 틀어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최경석.

이런 대결양상은 영선과 최경석의 관계, 신도들과 성철우의 관계처럼 영화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호감 가는 인물은 하나도 없다. '운명'과 '신앙' 사이에서 무너지는 영선도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나 장로와 목사의 품에서 갱생을 꿈꾸는 영선의 무기력한 타락은 중심 잃은 인간의 최후를 보여주기에 손색없다.

집단적 무의식과 깨어있는 개인

 영화 <사이비> 스틸컷.

영화 <사이비> 스틸컷. ⓒ 스튜디오 다다쇼


"이 사람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최경석을 둘러싼 경찰관과 성철우의 대화 장면이다. 성철우 부근에 있던 사람들 역시 목사 편에 선다. 그들을 바라보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김민철. 이들에게 온전한 정신이 붙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자신의 말을 누구 한 사람 믿어주지 않는 기막힌 현실 앞에 억장이 무너지는 김민철. 그 순간 그에게서 쌍욕이 터져 나온다.   

<사이비>에서 김민철은 홀로 깨어 있지만 그는 마을사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가 살아온 날들의 총화에 대한 응분의 결과다. 이것이 나는 불편했다. 최경석을 확인하는 것과 김민철에 대한 평가는 별개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 같이 침묵하고 부인한다. 사기꾼을 덮어주는 인간들의 집단적 무의식이 뼈에 사무친다.

왜 그들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왜곡된 집단 심리의 기저에 놓여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거짓말하는 성철우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믿음의 근거는 기독교인들의 동류의식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명제는 수몰 지역에도 똬리를 튼 것이다. <사이비>는 집단무의식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가짜와 사이비 사이에서

 영화 <사이비> 스틸컷.

영화 <사이비> 스틸컷. ⓒ 스튜디오 다다쇼


<사이비>의 영어 제목은 <The Fake (가짜)>다. 영화 광고전단 문구도 그러하다.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입니까?"

가짜는 문자 그대로 진짜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이비(似而非)의 뜻은 다르다. 그럴 듯하지만 진짜가 아닌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짜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악랄한 것이 사이비다. 그래서 기성 종단이나 교파의 공인을 받지 못한 종교를 수식하는 어휘로 가짜가 아니라 사이비가 사용되는 것이다.

가짜와 진짜 사이에 자리하는 사이비의 폐해는 녹록지 않다. 진짜와 가짜의 진위 여부가 가려지면 사태는 명쾌하게 종결된다. 하지만 사이비는 양자에 걸쳐 있기 때문에 진위 여부 식별도 어렵거니와, 설령 본질이 규명된다 해도 그것을 척결하기 어렵다. 사이비를 신봉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사이비가 기생하는 조건은 우리에게 나온다.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세상과 인생사고 보면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운 개인과 집단은 없다. 김민철에 대한 불신과 성철우를 향한 메시아적 숭배, 최경석에 대한 신뢰에는 인과성이 있다. 그 인과성의 균열에서 우리는 사이비와 진실을 가늠한다. 

사람들의 야만성과 맹목성... 21세기 한국사회와 같다

영화는 시종일관 소란스럽고 광포하며 잔인하고 강렬하다. 음악은 고막을 찢고, 폭력적인 언사와 칼부림은 동공을 자극한다. 사람들의 야만성과 맹목성은 지난날의 미망에 사로잡힌 21세기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치료약 대신 '생명수'를 고집하는 암환자. 지상의 불행을 끝내고 천국을 꿈꾸는 정신질환자. 신의 종복이 되기에는 너무 심약하여 종당에 악마가 되는 성철우와 그를 따르는 대중. 비루한 현실과 맞서지 못하고 야화로 꺾어지는 스무 살 청춘.

동굴에서 홀로 통성 기도하는 민철의 개심은 역설적이다. 늙고 외로운 인간이 최후로 기댈 언덕이 자신이 부정한 기독교라니?! <금강경>의 가르침이 들린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모든 것은 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2012년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과 경찰 같은 국가기관의 국기문란과 민주주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을 비난하고 억압하는 '종북몰이'가 보수신문과 종편에서 끝없이 진행 중이다. 출구는 정녕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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