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후아힌에서 11월 11일부터 2주간 열린 'FLY2013' 프로그램 현장.

태국 후아힌에서 11월 11일부터 2주간 열린 'FLY2013' 프로그램 현장.ⓒ 부산영상위원회


|오마이스타 ■태국 현지 취재 이선필 기자| 누군가에겐 그저 일상의 연속이었을 2주의 시간(11.11~11.24)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증명하고 목표를 세울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시아 14개 국가 28명의 청년들에겐 함께 영화 작업 전반을 경험하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 FLY'(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이하 FLY 2013)의 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적게는 16세에서 많게는 34세. 미래에 대해 나름의 고민도 많을 이들이 '영화'라는 분야로 하나가 됐다. 태국 후아힌, 우리에겐 휴양지로만 알려진 그곳에서 배창호 가독, 구재모 감독, 차승재 전 싸이더스 FNH 대표, 민용근 감독 등이 저마다 노하우를 나누고 전했고, 아시아 각국 청년들은 스펀지처럼 자신에게 내린 영화의 소나기를 듬뿍 맞았다. 

힘들수록 기쁨은 배가 돼... 'FLY 2013' 현장에서 돌던 유행어?

올해로 2회째를 맞은 'FLY 2013'에서 특기할 점은 한국 멘토(배창호 감독, 구재모 촬영감독)와 태국 멘토(아딧야 아사랏 감독, 샘 촬영 감독) 그룹에서 느껴지는 묘한 대조와 조화였다. 이들 멘토는 가르침의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한국의 거장이며 영화계 대선배인 배창호 감독은 말 그대로 열정을 불살랐다. 현장 관계자들은 "마치 자기 작품을 하듯 참가자들을 대하고 있다"며 그의 지치지 않는 교수법을 전했다. 구재모 감독은 한 술 더 떠 쉬는 시간과 자유 시간에 특별 강의를 자체 편성해 멘티들을 불러 모았다. "놀면 뭐해? 하나라도 더 배우자"는 구 감독의 말과 "거봐, 해보니까 되지?"라는 배창호 감독의 말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미 유행어가 돼있었다.   

"잠잘 때만 빼고 다들 거의 붙어있어요. 스킨십을 강조했죠. 나라와 문화가 서로 다르니까 이해심을 갖자는 의도였어요. 서로가 경험하지 못한 파트를 나눠서 맡아 보면서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이려고 했습니다." (구재모 촬영감독)

"내 작품을 할 때보다도 더 힘들었습니다. 내 영화를 찍을 때도 입술이 안 터졌는데 이번에 터졌어요(웃음). 14명의 서로 다른 문화인들이 하나의 스토리에 집중하다보니까 공감대가 생기는 기쁨이 있더라고요." (배창호 감독)

태국의 국민 감독...아시아 청년들 눈동자에 빠지다

 'FLY 2013' 행사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자신들이 맡은 영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FLY 2013' 행사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자신들이 맡은 영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


프로그램 졸업식이 끝난 직후 아딧야 아사랏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4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태국에서는 이미 국민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졸업식 현장에서는 필리핀 출신의 기안카를로 아브라한 4세와 미얀마 출신의 메이 바라니가 장학금을 받고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올해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성암베넥스 재단이 장학금 1만 달러를 후원) 그리고 이 장면을 아사랏 감독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딧야 아사랏 감독은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좋고, 짧다면 짧은 나의 10년 경력을 젊은 친구들과 나눈 게 좋다"며 "오히려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더 많이 배운다"고 취재진에게 소회를 전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가 태국에서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도 방콕과 후아힌을 옮겨 다니며 아시아 청년들의 수업을 이끌었다.

"이 프로그램(FLY2013)은 대단합니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기의 나라를 벗어나지 못했을 이들이 해외에서 한 자리에 모였어요. 이들에겐 정말 좋은 기회죠. 영화산업이 전혀 없는 브루나이, 미얀마, 라오스 등에서 영화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이런 기회가 없다면 사실 막막한 현실인 게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 청년들은 어떻게 영화를 바라보고 만드는지,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절차를 배우는 좋은 기회입니다."

 태국 후아힌에서 열린 'FLY2013' 프로그램에 멘토로 청년들을 이끈 아딧야 아사랏 감독. 취재진의 사진 촬영에 익살스런 포즈를 보이고 있다.

태국 후아힌에서 열린 'FLY2013' 프로그램에 멘토로 청년들을 이끈 아딧야 아사랏 감독. 취재진의 사진 촬영에 익살스런 포즈를 보이고 있다.ⓒ 이선필


배창호 감독과 아딧야 아사랏 감독의 지도 아래 두 그룹은 <비욘드 더 프레임>(Beyond the Frame)과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라는 단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졸업식 전날인 11월 23일 후아힌 마켓빌리지에 위치한 시네플렉스 극장에서 상영됐다. 깐깐한 지도방식과 격려하고 다독이는 지도방식의 결과물이 현장에서 함께 환호를 받았다.

아사랏 감독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배창호 감독과 달리 청년들을 방임하다시피 했던 그에게 교수법에 대해 물은 것. 아딧야 아사랏 감독은 "가르치는 방식의 차이는 당연히 있다"며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 비교할 수는 없다. 단지 내 스스로가 학생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할 수 있는 위치인지 의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차피 영화를 만드는 데엔 왕도가 따로 없기에 현장에서 멘티들이 뭔가 잘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가만히 있다가 편집실에 돌아와서 다른 방향을 제안하는 쪽으로 알려줬다"며 나름의 생각을 드러냈다.

헌신적 교육에 감동...청년들 저마다의 꿈 품고 돌아갔다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난 뒤 'FLY 2013'에 참여한 각국 학생들을 만났다. 저마다 졸업식의 여흥을 나누며 혈기 왕성함을 보였던 이들은 취재진의 인터뷰에 사뭇 진지한 깨달음을 내놓았다. 이들은 대부분 멘토와의 수업, 그리고 각국의 아시안 친구들이 생겼다는 사실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았다.

요르단 출신으로 'FLY 2013'을 처음 경험한 베이루티(22) 양은 "아사랏 감독님이 자신의 장편을 보여주면서 너무 못 만든 영화라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며 "진짜 좋은 영화였는데 감독님은 뭣도 모르고 만들었다더라. '좋은 영화란 나만의 목소리를 찾고 담는 것'이라는 감독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베이루티는 "할리우드를 카피하는 게 아닌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한국 출신의 한동균(24) 군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의 시작은 이해"라는 말을 짚었다. 그는 "촬영 때 추천받은 배우가 연기가 부족해서 힘들었는데 배창호 감독님이 마치 손녀를 대하듯 차근차근 이해시키셨다"면서 "배우의 무엇을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해를 전하는 모습에서 역시 영화는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유원(22) 양은 차승재 전 싸이더스 FNH 대표의 말을 곱씹었다. "훌륭한 거짓말쟁이가 되어라"는 말에 정유원 양은 "작은 진실이 마음을 변화시키듯 영화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태국 후아힌에서 열린 'FLY2013' 프로그램에 참여한 각국 청년들. 왼쪽부터 기안카를로 아브라한 4세(필리핀)와 메이 바라니(미얀마), 베이루티(요르단), 정유원(한국), 한동균(한국), 료지 큐레(일본).

태국 후아힌에서 열린 'FLY2013' 프로그램에 참여한 각국 청년들. 왼쪽부터 기안카를로 아브라한 4세(필리핀)와 메이 바라니(미얀마), 베이루티(요르단), 정유원(한국), 한동균(한국), 료지 쿠레(일본).ⓒ 이선필


사실 언어는 이들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 의사소통이 이번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일 거라는 예상을 했다지만 2주의 시간이 지난 이후 참가자들은 그 누구도 서로 다른 언어를 장애물로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일본 국적의 료지 쿠레(24) 군은 "어느 순간엔 한국말도 알아먹고 현장에서 우리가 움직이고 있더라"면서 "바디랭귀지를 통해 소통할 수 있기도 했고, 신뢰에 기반을 둔 관계를 만들어가니 언어 장벽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필리핀 출신으로 이번 프로그램에서 장학금 5000달러를 받게 된 기안카를로 아브라한 4세는 "함께 지내면서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면서 "그럼에도 우리는 아시안이라는 의식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도 볼 수 있었지만 영화라는 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소신을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아시아적 정서를 메시지로 전할 수 있었고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이제 이들은 고국으로, 자신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얻은 건 커보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마다 고민했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나름의 방향을 잡은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경험을 위해 여행을 더 많이 하겠다고 했고, 누구는 예술 영화의 중요성을 알고 더욱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여러 다짐 중 료지 쿠레 군의 말을 실어본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LA에서 공부해왔어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 일본에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결정했습니다.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한국 영화 관계자를 만나면서 진짜 성장의 동력을 찾았어요. 한국 영화가 일본 영화에 비해 번창하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리더십이더라고요. 일본만 해도 너무 보수적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을 갖자고 생각했어요. 수천만의 관객을 위한 경쟁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 아시아 영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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