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강동원, 여욱환, 임주환 등의 모델들이 다 소속된 회사 '맨모델' 김병철 대표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1탄: 시급 2050원에도 배정남은 배정남이었다) 그렇게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한 달 정도 대학물을 먹었던 배정남. 그해 4월부터 배정남은 부산대학교 앞에 있던 친한 형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패션디자인학과에서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그는 옷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누구보다 빨리 성공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부산 앞에 홍대처럼 옷가게가 쭉 있었거든요. 그 옷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잡지도 많이 보고 옷도 더 많이 만져 보고 많이 입어 봤습니다. 나중에는 도매업도 하고 기회가 되면 돈 벌어서 디자인도 배워보겠다는 포부였죠."

옷 도매업 사장 혹은 디자이너의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던 배정남의 인생에 느닷없는 기회, 인생이 180도 달라지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던 이가 있으니 바로 배우 김민준. 당시 모델로 활발한 활약을 펼쳤던 김민준이 배정남이 일하던 옷가게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모델들을 아예 몰랐지. 근데 옷가게 형이 그 사람이 모델이라는 거예요. 김민준 형이 '혹시 모델 해 볼 생각 없어요?' 라고 했었죠. 근데 전혀 그런 생각도 없었고 모델이 뭐하는지도 몰랐고. '모델이 뭔데요' 그랬죠."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컬렉션이 잡힌 것이죠. 송지효 컬렉션에 된 거에요. 진짜 잘나가는 분이었는데 쇼는 한 번도 서 본적도 없고 워킹도 배워본 적 없는데 피팅을 했죠."ⓒ 이정민


'마스크가 괜찮다'며 모델을 권했던 김민준의 말에 배정남은 "키가 크고 준수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며 거절을 했다. 190cm 가까이 되는 사람만 모델을 하는 줄 알았다는 것.

그런데도 김민준은 "괜찮으신데, 아는 사람 있으니까 인사 시켜드릴게요"라며 재차 배정남에게 권했다. 부산에서 세상 물정 잘 모르고, 모델이 뭔지는 더더욱 몰랐던 배정남은 "못 한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옷가게 형이 "경험 삼아 해 봐라"라고 한 번 더 권유해 그때부터 배정남은 그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도 모른 채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와서 사우나 하고 미팅을 했어요. 당시 강동원, 여욱환, 임주환 등의 모델들이 다 소속된 회사 '맨모델' 김병철 대표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형님 처음 만났는데, 제가 부산 말도 지금보다 더 세고 눈빛도 살아 있었죠. 만나서 '안녕하십니까' 부산스타일로 했죠. 미팅이 뭔지도 몰랐고."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준 형이 '혹시 모델 해 볼 생각 없어요?' 라고 했었죠. 근데 전혀 그런 생각도 없었고 모델이 뭐하는지도 몰랐고. '모델이 뭔데요' 그랬죠."ⓒ 이정민


김병철 대표와 인사를 처음 나누고 미팅이 다시 잡히면 올라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옷가게에서 일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다지 환영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일주일 뒤에 일이 잡혀 서울로 올라왔고 그는 생애 처음으로 잡지 촬영을 하게 됐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편안하게 하라고 해서 그냥 했어요. 그거 하고 올라온 김에 며칠 뒤에 있는 오디션 같은 거 또 보라고 해서 보러 갔는데 다른 모델들이 저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더라고요. 옷은 샘플이니까 저는 옷도 안 맞고 줄줄이 오디션 다 떨어졌죠. 새빠지게 올라왔고 계속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줄줄이 떨어져서 마음도 지치고 부산 가게도 눈치 보여서 다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산대학교 앞의 작은 옷가게보다 더 큰 세상을 보았던 배정남은 옷가게에서 일을 하면서도 서울에서 일했던 잔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바에야 올라가서 부딪쳐보겠다며 부산 생활을 다 잡고 상경했다.

"처음에는 김민준 형 집에 얹혀 있다가 나중에 이언 형이랑 같이 살았어요. 그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형도 부산 형이고 정말 잘 챙겨줬어요. 만나서 맨날 운동하고 그랬죠. 그런 중에 쇼 기회가 딱 왔습니다. 컬렉션이 잡힌 것이죠. 송지오 컬렉션에 된 거에요. 진짜 잘나가는 분이었는데 쇼는 한 번도 서 본적도 없고 워킹도 배워본 적 없는데 피팅을 했죠.

'너 느낌대로 걸어라'고 했어요. 시간은 얼마 안 남았고 첫 무대라서 임팩트를 줘야 하는데 키는 작고. 근데 어릴 때부터 운동도 하고 복싱도 해서 몸을 살벌하게 만들었습니다. 원래 운동했던 사람들은 금방 하면 잘 나오는 편이라서 쇼 1분 서려고 한 달 가까이 준비를 했죠."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무대에 배정남이 처음 섰는데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고 했다. 기존의 모델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키, 배정남의 표현대로 "저 쪼맨한 놈 뭐지?"라는 시선을 느꼈다고.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윗옷을 쫙 벗었어요. 탄성이 '와' 하고 나오라고요.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이 안 났지만 분명히 느꼈던 것은 무대 위에서 워킹 할 때 희열이었습니다. 그 짧은 찰나에 뿜어내는 에너지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송지오 컬렉션을 시작으로 그는 모델 업계에서 이단아가 되었고 그리고 핫한 스타가 되었다. 이후부터는 쇼와 다수의 잡지 모델 제의도 계속 들어왔다. 디자이너 송지효의 메인 모델은 물론 김서룡 디자이너의 모델로도 활약했다. 송지오의 수트 파리콜렉션에도 서며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그의 얼굴을 알렸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그는 모델로서의 전성기를 보냈다.

"부산에서 처음 올라왔을 때 빈티지를 입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너 거지가?'라고 했었죠. 서울에서는 당시 빈티지를 입는 사람들은 아예 없었고 부산에서도 우리 또래 정도만 입었죠. 구멍 난 청바지, 찢어진 청바지 그런 거죠. 저는 제가 좋은 것을 입습니다. 내가 좋아야지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써서, 남이 좋은 것을 입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느 순간 '거지'라고 욕하는 놈들이 빈티지 옷을 하나둘 따라 입기 시작하더라고요."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특히 배정남은 여성팬들보다 남성팬들의 우성이었다. 2000년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배정남의 홈페이지를 찾는 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남자 애들이 '형 멋있어요' '간지나요' 하면서 좋아해주셨어요. 최근에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에 섰는데 여전히 부산 학생들이 팬이라고 좋아해주더라고요. 남자팬들이 더 오래 가는 것 같아요.(웃음)"

배정남의 나이 스물다섯에 모델로서의 정점을 찍고 뮤직비디오에 섭외도 다수 들어오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그는 "연기의 재미"를 처음 느끼게 됐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재미도 알게 됐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에스팀 소속으로 있다가 배정남은 싸이더스 등 큰 기획사의 러브콜도 받았다.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에 이러저러한 회사들을 알아 보고 있던 터에 모델 회사에 같이 있던 매니저 형이 둘이 함께 해보자는 제의를 해와서 오직 '의리'로 같이 시작했는데 집에 팩스 기계 한 대 가져다 두고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형이 아닌 허세만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 나중에 그 매니저는 잠수를 타고 계약 관련 내용증명이 보내져왔다. 배정남은 다른 회사로 이적도 하지 못 하고 홀로 2년 동안 혼자서 소송을 겪었다.

"그때 제가 주가가 제일 높을 때였는데 그런 소송에 휘말리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에 빨리 겪으니까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나이 들어서 그런 일에 휘말리면 못 일어섰을 것 같아요."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윗옷을 쫙 벗었어요. 탄성이 '와' 하고 나오라고요.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이 안 났지만 분명히 느꼈던 것은 무대 위에서 워킹 할 때 희열이었습니다."ⓒ 이정민


당시 전 매니저와의 소송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배정남은 고향인 부산에서 같이 올라왔던 형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한다고 생각했다. 형들이 인터넷 쇼핑몰을 하나 열자고 제안, 함께 부산에서 올라온 그들과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열게 됐다. 그렇게 2008년도에 배정남의 남성전문 브랜드 인터넷 쇼핑몰 '레이건'이 시작되게 됐다.

"진짜 열심히 일 했어요. 27살 때였고, 고정 팬들도 있으니까 정말 잘 됐습니다. 3년 동안 쇼핑몰에 3명이 올인을 했죠. 금전적으로 많이 여유로워지기도 했고 제 이름으로 돈 모은 것으로 처음으로 작은 아파트 하나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거 하려고 서울 온 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 동안 인터넷 쇼핑몰에 올인했던 배정남은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된다. 본래 여행을 위해서 2주 예정으로 떠났는데 뉴욕의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이 그를 사로잡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뉴욕에 대한 잔상이 잊히지 않아 어학연수를 위해 아예 짐을 다 싸고 떠나게 된다.

"미국은 한국이랑 다르더라고요. 처음 갔는데 눈을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인사를 건네더라고요. 여기는 눈이 마주치면 '뭘 보노' 이런 느낌인데 말이죠. 뉴욕의 옷이 너무 예뻤어요. 또 제가 입은 옷을 칭찬해주고 그럼 저도 기분이 좋고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도 하고. 한국에서 너무 치열하고 바쁘게 지냈는데 뉴욕에 가니 그런 게 싹 풀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어학연수로 비자를 만들어 두 달 안에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들어갔어요."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대학에 한이 있었던 배정남은 랭귀지스쿨이라도 좋은데서 배우겠다는 심산으로 NYU 부설 랭귀지스쿨을 다녔다.

"집값·학비 정말 비싸더라고요. 나이 먹고 다니는 것이기도 해서 지각 결석 한 번 안 했습니다. 돈 아까워서. 새빠지게 벌어서 간 거잖아요. 도서관 다니고 숙제도 하고.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죠. 그러다 뉴욕필름아카데미를 한번 가 보았는데 너무 다니고 싶었어요. 근데 학비가 정말 말이 안 되게 비싸서 포기했습니다."

뉴욕필름아카데미에 다니지는 못 했지만 그는 뉴욕에서 단편영화도 찍으면서 연기를 놓지 않았다. 그러다 모델했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왔던 단짝 형인 류승범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나 영화 들어가는데, 너 오디션 볼 생각 없냐?"고.


[고인이 된 외할머니와 보리 사진작가님 감사해요]

  영화배우 겸 모델 배정남이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편집매장 커드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옷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잡지도 많이 보고 옷도 더 많이 만져 보고 많이 입어 봤습니다. 나중에는 도매업도 하고 기회가 되면 돈 벌어서 디자인도 배워보겠다는 포부였죠."ⓒ 이정민


배정남은 지금은 고인이 된 외할머니와 보리 사진작가님에게 모델 시절 가장 큰 마음의 빚을 졌다고 고백했다.

"저를 어릴 때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가 22살 때 돌아가셔서 그게 제일 한이에요. 외할머니가 없었다면 더 타락했을 거예요. 할머니 사랑을 받고 컸는데, 좀더 살아 계셨으면 제가 더 효도를 하고 진짜 잘 했을 텐데..호강 한번 제대로 시켜드리지 못 한 게 제일 한입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와서 얼마 안 돼 위독하다고 해서 내려갔는데 그렇게 되셨어요..."

배정남의 모델 시절 그의 프로필을 찍어준 사람은 지금은 고인이 된 보리 사진작가.

"제 주위에 좋은 형들, 누나들이 있어서 이렇게 제가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나랑 굉장히 일을 많이 했어요. 친누나 같이 잘 챙겨주셨고 제가 스튜디오에도 자주 놀러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해외 촬영도 많이 함께 했죠. 어려웠고 힘들었을 때 누나가 많이 도와주셨는데,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너무 안타까워요."


* 배정남의 이야기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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