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기>에서 구조대원 지구 역의 배우 장혁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영화 <감기>에서 구조대원 지구 역의 배우 장혁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언혁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재난 블록버스터, 그중에서도 좀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이 남자에게 어쩌면 영화 <감기>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좀비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감기> 역시 바이러스로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말살을 담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순간적인 공포감은 감염내과 의사 인해(수애 분)는 물론, 한없이 강인해 보이던 강지구(장혁 분)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3년 영화 <영어 완전 정복>으로 호흡을 맞췄던 김성수 감독은 이번에도 장혁을 찾았다. 장혁 역시 의리로 화답했다. 그를 붙잡은 것은 또 있었다. 바로 캐릭터였다. 위기 상황에서 사명감에 동료애가 더해졌을 때, 구조대원이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수를 위한 정의'라는 식의 영웅적인 시각보다 감정이 앞서는 인물 강지구는 그렇게 탄생했다.


장혁은 <감기> 촬영에 앞서 구조대원의 훈련에 동참하기도 했다. 프로 구조대원의 자세를 갖추기보다는 그들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장혁은 "이들 또한 힘들지만 다른 이들보다는 사건, 사고 현장에 적응된 것뿐이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강지구를 이해하는 데 한계는 있다. 자신 역시 죽을 상황인데 호감을 느끼는 인해와 그 딸 미르(박민하 분)까지 책임지다니.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인해에게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그 딸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다 팽개치고 갈 수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너무 냉랭하게 보는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현실적이라면 이기적인 게 맞겠지만, 인해의 감성적인 부분을 접하면서 딸을 향한 엄마의 감정을 느끼고 움직이게 된 것 같습니다."


"구조대원 연기, 체력적으로 힘들었느냐고? 천만에"

<감기>를 재난 영화로 규정하지만, 정작 장혁에게 재난 영화는 따로 있었다. <화산고>(2001)였다. 당시 장혁은 골절상을 입는 것은 물론이요, 8번이나 기절하면서 1년간 촬영했다. "<화산고>에 비하면 <감기>는 힘들지 않았다"고 밝힌 장혁은 "김성수 감독님이 OK 사인을 잘 안 주셨다. 캐릭터를 끌고 가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시간이 지나면 캐릭터도 성장해야 하니까요. 어제의 연기를 그대로 가져오면 정체된 거잖아요. 난관에 부딪히면서 헷갈리기도 하고, 우연히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참 죄송한 게, <감기>를 찍을 때 다른 촬영을 하다가 낙마 사고로 팔이 부러졌어요. 오른쪽 어깨가 탈골됐죠. 구조대원에게 구조돼서 갔습니다. 결국 촬영장에서 재활까지 하게 됐는데 감독님에게 정말 죄송했어요."

지방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배우와 스태프들이 숙소 앞 편의점에 모두 모여 맥주 한 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게 일상이었다. 이들은 지금도 1~2개월에 한 번씩 '번개'를 한다. "항간에는 '집에 가기 싫어서 현장에 있는 편'이라고 하는데 꼬박꼬박 집에 들어간다"고 해명한 장혁은 "10년 동안 현장을 떠났던 김성수 감독이기에, 김 감독님과 더 오래 함께하고 싶었다"고 미소 지었다.


병역비리 있었던 장혁은 왜 <진짜 사나이>에 자원했을까

과거 병역비리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혁은 입대와 전역을 거쳐 이제 민방위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2013년 MBC <일밤-진짜 사나이>를 계기로 다시 군대를 찾았다. 그릇된 선택으로 질타를 받고 서른 살이 되어서야 군대에 갔던 '인간 정용준'은 "모든 게 바닥이었던 시절, 군 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지던 발자국을 다시 남기게 되었다"고 했다. 40대를 맞은 지금, 그때를 다시 떠올린 장혁은 <진짜 사나이>의 문을 두드렸다.

"2004년엔 자식이었지만, 지금은 아빠가 됐잖아요. 자식이 저를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과거의 실수는 없어지지 않을 테고, 제 아이가 이걸 접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느 순간부터 몸에 익숙함이 붙어서 붕 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때 우연히 <진짜 사나이>를 보고 직접 제작진을 찾아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힐링이 많이 되었어요."


남들이 알아주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장혁은 앞으로도 자신의 길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버티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힌 그는 "항상 생각하는 게 '눈 뜨고 맞자'이다. 눈을 감아버리면 왜 맞는지 모른다. 눈을 뜨고 맞으면 분명 나중에 피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시종일관 진지했던 장혁과의 인터뷰는 군대에서 들었다는 한마디로 마무리됐다.

"평온한 바다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거친 파도가 노련한 뱃사공을 만든다."

감기 장혁 수애 진짜 사나이 박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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