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1일 부천에서 열린 스크린독과점 관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민병록 영화평론가협회장

지난 7월 21일 부천에서 열린 스크린독과점 관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민병록 영화평론가협회장 ⓒ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자율적 해결을 위해 영화계의 협상 테이블을 구성하자."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관련해 지난 5일 발표된 영화평론가협회(회장 민병록 동국대 교수)의 성명은 이렇게 요약된다. 평론가협회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법적, 비율적 강제 제한이 답이 아니라면, 여러 가능성을 놓고서(소유, 지배 구조의 독과점 해소방안 포함) 문화부 주도의 중재, 조정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물론 "영화계의 상생노력이 부족할 경우 의원 발의를 통한 스크린 독과점 규제와 관련법 개정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단서 조항도 덧붙였다. 영화평론가협회 관계자는 "대기업과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 쌍끌이 흥행, 스크린독과점 덮어서는 안 돼" 

법적 규제냐 자율적 해결이냐를 놓고 팽팽하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논란이 자율적 해결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다. 영화평론가협회의 성명은 최근 영화계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대학 영화과 교수들이 성명을 발표해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조했다면, 이번 평론가들의 입장은 자율적 해결을 위한 협의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법적 규제를 주장하는 쪽이 많지만,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게 나오면서 영화평론가협회가 '테이블을 마련해 논의를 시작해 보자'고 영화계에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중에는 법적 규제를 주장했던 대학 영화과 교수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도 미묘한 전환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스크린 독과점은 특정 영화가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해 영화계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영화계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했다. 이의 해결 방법을 놓고 교수-평론가-제작자-감독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상태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13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한 <아이언맨3>와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논란이 커졌으나, 최근 개봉한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두 영화 역시 과도한 스크린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의 흥행과는 별개로 우려와 한숨만이 가득하다.

두 영화의 공식적인 스크린 점유율은 26%(설국열차)와 17%(더 테러 라이브) 정도이나, 상영횟수 점유율과 전제 좌석수 점유율을 따져보면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말아톤> 정윤철 감독은 "이 사회의 집단 무의식은 승자독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씁쓸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노리개>의 최승호 감독도 "한국 영화 두 편의 쌍끌이 흥행으로 스크린 독과점 및 영화계 불공정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가 대부분을 스크린을 장악한 수도권의 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가 대부분을 스크린을 장악한 수도권의 한 멀티플렉스 상영관 ⓒ 성하훈


법적 규제 어설프면 부메랑, 풍부한 논의와 다각적 고민 필요

이 같은 상황에서 당연히 법적 규제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으나, 세밀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의외로 자율적 해결 목소리가 힘을 얻는 모양새다. 자칫 법적 규제가 어설프게 될 경우 도리어 대기업 자본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영화평론가협회의 한 관계자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법적 규제가 위헌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거나, 1위 영화에 대한 규제가 결국 2~4위 영화들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 없거나 무시할 만한 내용이 아니기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자는 게 스크린독과점 규제의 목적인데, 법적 규제가 정밀하지 못할 경우 자칫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도리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현용 전 제작가협회 사무국장도 스크린독과점 논란과 관련 <씨네21>에 기고한 글을 통해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기에 그것을 주장하는 것과 그것이 결과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논의를 풍부하게 만들어 문제를 다각적으로 보고 대응방안도 다각적으로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스크린독과점의 심각성을 보는 영화계의 우려가 방법론에서 충돌하는 것일 뿐 문제 인식은 같다는 점도 신중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법적 규제를 반대하고 있는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산업 안에서 자율적으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것이지 스크린독과점이 주는 폐해가 없다고 주장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법적 규제를 주장하는 강한섭 서울예대 교수로 부터 '독과점 기업 CJ-CGV의 혜택을 받고 있어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심영섭 평론가도 "스크린독과점에 반대한다"며 "그에 관한 인터뷰도 많이 했다"고 분명한 입장을 나타냈다.

강한섭 교수는 최근 스크린독과점 관련 토론회에서 "박찬욱 감독과 심영섭, 이동진 평론가 등이 CJ-CGV의 다양성 영화관 무비콜라쥬의 행사에 참여해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에 거세당할까 두려워 독과점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대해 심 평론가는 "CJ-CGV 무비꼴라쥬 일이 관객과의 접촉점이 넓어지고 작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일 뿐 독과점에 일조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대기업에 동조하고 있다는 시선을 반박했다.

문화부 "동반성장협의회 구성된 상태라 새로운 논의는 시기상조"

하지만 영화평론가협회로부터 중재안 조정을 요구받은 문화체육관광부 쪽은 신중한 반응이다. 영상콘텐츠산업과의 실무 관계자는 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토론회 등에서 밝힌 내용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미 동반성장협의회가 구성돼 상생협약이 발효된 상황에서 새로운 논의 테이블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당장 안 한다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모니터링을 통한 실체조사를 결과가 나와야 이를 근거로 가지고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호 간에 신뢰를 지켜나가는지 두고 본 후 다음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8월 5일 영진위 영화관통합전산망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한 주요 상영 영화에 대한 스크린점유율, 예매율 , 좌석점유율 추이

8월 5일 영진위 영화관통합전산망 자료를 기준으로 정리한 주요 상영 영화에 대한 스크린점유율, 예매율 , 좌석점유율 추이 ⓒ 엣나인필름


메가박스 이수를 운영하고 있는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8월 5일 하루 동안 집계한 자료를 근거로 "영화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예매율을 근거로 상영시간표를 작성하고 관객들의 선택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스크린독과점은 관객들의 요구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성을 운운하는 것이 영화라는 문화에서만 언급되어서는 절대 이 부분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고, "사회 속에서 교육에서 다양성 문화를 이야기 해보는 게 시작"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영화관에 와서 현장에서 표를 구하는 이들에게 인지되지 않은 영화는 아무리 바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멀티플렉스 특성 상 10~20분만 기다리면 인지되어 있는 영화가 상영되니 그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면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우선 다양성영화에 대해 재미와 신뢰 그리고 가치가 부여되어야 하는 데 이것은 좀 더 긴 시간을 가지고 트레이닝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한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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