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영화의 플롯은 신선하나, 이미지가 부족하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영화의 플롯은 신선하나, 이미지가 부족하다ⓒ 김재호

오래 기다려온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1일 드디어 개봉했다. 국내 감독들의 해외 진출의 시류 속에서 과연 봉준호가 보여줄 새로운 세계는 무엇일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드디어 관객들을 데리고 출발한 <설국열차>. 하지만 거기엔 메시지만 있고 이미지는 없었다.

인류 스스로 자초한 새로운 빙하기, 인류는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달리는 기차 안에 몸을 실어야 한다. 각 칸에는 계급이 있고, 인류는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꼬리 칸과 앞칸, 중간칸에는 각자의 임무를 짊어진 인간들이 상존한다.

맨 뒤에 있는 커티스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반란을 꿈꾼다. 맨 앞에 있는 윌포드는 신성한 엔진을 지키며 마지막 남은 인류의 인간성을 규정하려 한다. 송강호가 분한 남궁민수는 보안설계자로서 커티스가 한 칸 한 칸 앞으로 전진하는 데 일조하는 듯하다.

혁명은 또 다른 계급을 낳는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노아의 방주 안에서조차 계급을 조성한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상실한 채 약육강식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서로를 잡아먹는 살육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의 꽃을 피우려는 의도조차 다시 딜레마에 빠진다. 혁명이란 결국, 또 다른 계급을 낳기 마련 아닌가.

<설국열차>가 드러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멸망한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환경보존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플란더스의 개>나 <마더>에서 보여주었던 사회적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강도 높게 제시한다. 메시지가 울리는 장은 교수 사회와 폐쇄된 시골마을이었다. <설국열차>는 그 시공간을 미래와 전 지구로 확장시켰다.

<설국열차>가 의미 있는 것은 확장성 딱 그 하나다. 주연배우들이 유명 해외배우들로 바뀌고, 메시지의 강도는 세졌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미학인 이미지가 부족하다. 또한 이야기가 꿰어져야 할 개연성 역시 줄어 들어 <설국열차>는 탈선한다. 열차에 탑승한 관객들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부족한 이미지와 개연성, 열차는 탈선한다

예를 들어, 처음에 라디오 방송의 설명과 꽁꽁 얼어붙은 미래의 한 장면은 왜 열차에 탑승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부족하다. 열차에 탑승해야 하는 운명은 설국열차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전부일 수 있다. 왜냐하면, 열차에 탑승하게 됨으로써 인간성이 폐쇄된 공간에 밀집되기 때문이다.

17년 전, 마지막 칸에 가까스로 탑승한 사람들이 어떻게 혹은 왜 타게 되었는지는 영화 내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얼어붙어 열차로 올 수밖에 없었다는 내러티브는 앞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측면에서 개연성이 매우 부족하다. 

또한 커티스가 남궁민수에게 앞 칸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들려주는 살육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물론 끔찍하기는 하다. 왜 그토록 커티스가 앞으로 앞으로 가야만 하는지 일말의 개연성은 남는다.

그러나 굳이 커티스의 입에서 관객들에게 설명하듯이 독백 아닌 독백으로 처리해야 했을까. 영화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슬라이드나 비유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줬을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점인 연출과 풍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강하고 독한 메시지만 들어 있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관객이 영화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분명 메시지 일 수 있으나 그건 분명 영상미학을 통한 메시지다. 윌포드가 커티스를 만나 왜 네가 새로운 리더이어야만 하는지 설명하는 부분 역시 영화적 기법으로서나 개연성의 측면에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장면에서 윌포드는 주저리주저리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 지점에서 <설국열차>에 탑승한 관객들은 다시 탈선을 경험한다.

<설국열차>는 분명 의미 있는 시도이다. 영화의 플롯은 신선하고, 각 칸마다 펼쳐지는 광경들은 놀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차에 굳이 탑승하려는 수많은 관객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은 왜 열차에 타야만 하는지와 어떤 이유로 맨 앞 칸으로 가야 하는지다.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면 <설국열차>는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영화는 이미지고, 이미지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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