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부산영화투자조합 출범식 및 공동 운영 협약식

24일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부산영화투자조합 출범식 및 공동 운영 협약식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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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에는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감독 병헌씨의 현실감 넘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어렵사리 제작사가 결정되지만 시나리오는 영화 기획 과정에서 수없이 바뀐다.

그렇다고 마땅한 투자자가 금방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관심 있는 투자자가 나타나지만 마지막에 투자를 철회하면서 끝내 영화는 엎어진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감독의 노력은 안타깝지만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앞으로는 이런 '병헌씨'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 제작에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조건도 괜찮다. 기획개발비를 초기투자로 지원해주고, 촬영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영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감독들에게는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영화촬영 유치에 따른 행정지원이나 인센티브 등을 지원해 온 지자체가 직접 영화 투자에 나서면서 주목받고 있다. 기존 모습과 비교하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게다가 영화산업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 자본에 맞서겠다는 의지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영화 제작자들과의 연대도 이뤄내 의미가 더욱 특별하게 보인다.

영화 촬영 유치에서 제작 투자까지

24일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부산영화투자조합 1호' 출범식은 지자체의 영화 투자 진출과 함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은 대표)가 파트너로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행사였다. 기존의 영화 투자가 주로 대기업 자본에 의해 움직였다면 이번에 출범한 영화투자조합은 지자체가 직접 출자해 마련된 펀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형태의 영화투자조합은 부산이 최초다.

아주 특별한 투자조합의 출범에 영화인들 역시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를 비롯해 최은화 프로듀서조합 대표,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감독조합 대표인 이준익 감독, 박병우 문화체육관광부 과장, 김인수 영진위 사무국장 등이 참석해 부산영화투자조합의 탄생을 축하하고 협력을 다짐했다.

 부산영화투자조합 설립의 실무를 주도한 오석근 감독(부산영상위 운영위원장)

부산영화투자조합 설립의 실무를 주도한 오석근 감독(부산영상위 운영위원장) ⓒ 성하훈


투자조합 설립을 주도한 오석근 감독(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은 출범식 인사말을 통해 "부산시가 30억을 낸다"고 강조했다. 부산영화투자조합이 부산시와 민간이 모두 50억 원을 조성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큰 의미로, 시민들의 세금을 영화 투자에 활용하는 것이기에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부산시의 관계자는 "출자비용이 세금이라는 점에서 30억원 투자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국영화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이뤄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하는 형식을 갖췄지만 사실상 지원과도 다름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투자조합은 상업적인 면만 추구하는 대기업 제작 영화에 대항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도드라진다. 대기업 자본이 수직 독과점 체제를 구축한 상태에서 이들 자본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대부분의 영화들이 제작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독립영화와 저예산으로 만드는 영화들이 있지만 영화산업에 있어 대기업에 대한 종속성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시나리오가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바뀌기도 하고 촬영장면마다 일일이 자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데다, 심할 경우 감독이 교체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영화를 준비하는 기획개발비가 인정받지 못하면서 유망한 기획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 자본 배제로 제작 다양성 확보

하지만 부산투자조합은 기획개발비를 초기투자비로 지원하기로 해 기존의 불합리함을 해소하고 있다. 대기업 자본이 배제되면서 영화의 제작의 다양성도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석근 위원장은 "투자조합은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기 위한 마중물과 같은 역할로 이해하면 된다"면서 "공공성과 공익성에 목적을 뒀다"고 말했다.

투자조합 운영을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함께 하는 것 역시 이 같은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함이다. 투자대상 작품의 수급, 발굴과 선정 등은 영화제작가협회가 맡는다. 물론 투자 위험요소를 낮추기 위한 안전장치 역할로도 볼 수 있다.

 부산영화투자조합 공동 운영 협약에 서명한 부산영상위원장인 허남식 부산시장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은 대표가

부산영화투자조합 공동 운영 협약에 서명한 부산영상위원장인 허남식 부산시장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은 대표가 ⓒ 성하훈


부산의 투자조합 설립은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통칭되는 충무로에도 자극이 될 전망이다. 실무를 주관한 부산영상위원회는 '투자조합 설립은 단순한 유치가 아닌 부산지역의 영화 산업화를 도모하는 실질적인 방안'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한국 영화의 중추적 기관들이 부산이전을 예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산시가 투자에까지 직접 나서면서 그 시너지 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출범식에 참여한 영화계 인사들 역시 축하와 함께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영화제작가협회장자격으로 업무 협약에 서명한 명필름 이은 대표는 "부산영화제에 이어 부산영화투자조합이 출범"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단체연대회의를 이끌고 있는 이춘연 '씨네2000' 대표는 "부산영화제와 부산영상위 설립에 이어 콘텐츠 투자까지 만들어 부산이 영상도시를 완성시켰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작가협회가 힘을 합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에 목표를 잡지 말고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병우 문화체육관광부 과장 역시 "부산이 영화의 메카로 자리잡았다"며 "중앙정부도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영화산업에서 역할 커지는 지자체

그러나 오석근 위원장은 영화산업 중심이 부산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 경계감을 갖고 있는 충무로의 시선을 의식한 듯 "충무로의 영역이 부산과 겹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영화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하지 못했던 영화제나 영상위 등의 일을 부산이 앞서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충무로는 한국영화의 중심이지만 부산은 아시아 영화의 중심"이라며, "미국의 경우 LA에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거대 자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뉴욕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다양성을 띠고 있다. 부산 역시 그런 다양한 영화의 제작에 중점을 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영화에서 주로 조폭, 마약으로 그려지고 있는 도시의 이미지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4일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부산영화투자조합 출범식 및 공동 운영 협약식을 마치고 축하 떡을 자르고 있는 허남식 부산시장과 영화계 인사들

24일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부산영화투자조합 출범식 및 공동 운영 협약식을 마치고 축하 떡을 자르고 있는 허남식 부산시장과 영화계 인사들 ⓒ 성하훈


부산영화투자조합은 지역에서 출자한 조합인 만큼 부산에서 올로케이션(한 지역에서 70% 이상 촬영)한 영화들을 투자대상으로 삼고 있다. 부산영상위 측은 투자대상으로 선정될 경우 부산에 제작사를 신설 또는 이전하거나 지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투자까지 결정한 부산의 모습은 최근 영화산업에 대한 지자체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흐름과 연관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서울시는 최근 시네마테크와 독립영화전용관 설립 계획을 발표했고, 경기도는 다양성영화관의 이름으로 독립예술영화의 상영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이 제작투자에 까지 나서면서 영화산업에 미치는 지자체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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