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서울인권영화제 포스터

18회 서울인권영화제 포스터 ⓒ 서울인권영화제

"현재는 예산이 마이너스 상태예요. 어떻게든 채워져야 할 텐데 그 부분이 가장 힘드네요."

'인권'을 주제로 하는 영화제라지만, 예전보다 한참 후퇴한 '인권'은 영화제 관계자의 말속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1996년부터 시작돼 18회를 맞았으니 나름 연륜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말하고 강조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만 하다.

실내에서 하던 영화제는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2008년부터 정부 지원금이 중단돼 길거리로 나 앉았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을 검열로 간주해 거부하고 있는 것이 이유였다. 올해로 6년째다. 언제 다시 아늑한 실내상영관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아무런 기약이 없다. 하지만 변할 수 없는 것은 물러설 수 없는 주제의식이다.

등급도 심의도 모두 거부하는 아주 특별한 영화제는 거리에서 모든 사람들과 어우러진다.  아무런 제약 없이 모든 관객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고, 좌석의 등급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영화를 보기 위해 찾은 모두가 VIP로 대우 받는 것은 인권영화제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이다.

등급도 심의도 거부, 모든 관객이 VIP 

18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오는 23일(목)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막한다. 26일까지 4일 동안 26편의 작품이 상영되는 인권영화제는 우리 사회가 처한 인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영화제다. 강렬하고 명료한 주제의식 만큼이나 전달되는 영화들은 묵직하면서도 울림이 크다.

거리에서 개최하고,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고 해서 상영작품의 수준이 낮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좋은 영화들을 거리에서 자유롭게 접할 수 있어 관객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이 인권영화제다. 지난해 독립영화 최대 흥행작이었던 <두 개의 문>은 인권영화제에서 소개되며 입소문의 발판을 다지기도 했다. 숨죽인 듯 광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본 것이 흥행의 전조가 됐다.

국내외 국제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을 인권영화제를 통해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이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수상한 <마이 플레이스>를 비롯해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최우수상 수상작인 <옥탑방열기>,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권효 감독의 <그리고 싶은 것> 등이 주요 상영작이다.

개막작으로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공사로 수몰될 마을을 담은 <村(촌), 금가이>가 상영되며, 언론의 문제를 다룬 영국 다큐멘터리 <언론의 자유를 팝니다>를 폐막작으로 영화제를 마무리 한다.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이 땅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말 그대로, 이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4일 동안 4개의 주제를 설정해 관련된 영화로 보게 해 준다. '이주노동자와 반성폭력' '노동자와 소수자' '국가폭력과 반개발' '장애와 표현의 자유' 등이 영화제가 선택한 주제들이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청계광장에서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영화제 때의 모습

서울인권영화제는 청계광장에서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영화제 때의 모습 ⓒ 서울인권영화제


"인권영화는 사람의 삶이 담겨 있는 영화"

인권영화제의 역사는 꽤 파란만장하다. 초기에는 상영된 영화가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이란 이유로 집행위원장이 구속되기도 했고, 재판 과정에서는 '심의 받지 않은 영화 상영, 허가받지 않고 대학교에 무단 침입해 영화제 개최, 영화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부금 불법 모금' 등이 죄목으로 덧씌워지기도 했다. 전기가 차단돼 발전기를 동원해 영화제를 치르기도 했었고, 광장에서 개최되던 2009년에는 공권력에 의해 가로막힐 뻔했던 위기도 넘겨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중단되지 않은 채, 국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가장 오래된 영화제로서의 연륜을 이어오고 있다. 돈 없는 사람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18회를 이어온 인권영화제가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다. "인권영화는 사람의 삶이 담겨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인권영화제 측의 설명이다.

인권영화제가 다른 영화제들과 차별된 부분이 있다면 외부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권영화제 측은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고 자본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을 튼실하게 이어갈 수 있다"며 "어려움이 많아도 기업의 후원은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영리 영화제로서 2000년~2008년까지는 영진위의 지원을 받았으나 촛불시위 참여단체라는 이유로 지원이 끊기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인권영화제의 정체성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입장료도 안 받고 기업 후원도 받지 않는 인권영화제는 개인들의 후원에만 기대고 있다.

인권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김일숙 활동가는 "누구든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인권영화제가 추구하는 핵심이기에 외부 후원 없이 개인들의 자발적 도움을 통해 영화제를 치르고 있다"면서 "다만 올해는 개인후원자들과 후원금이 많지가 않아 온라인 모금 방식은 소셜펀치를 시도해 보고 있으나 행사에 필요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고 있어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권영화제 측은 전체 예산 3천 5백만원 중 후원금과 비영리기금 등에서 지원 받는 비용 외에 필요한 예산 2천만 원은 소셜펀치(http://www.socialfunch.org/hrff)와 영화제 행사자 모금 등을 통해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왜 이 영화를 못보게 하지? '레드헌트' 특별상영

 18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되는 영화 <레드헌트>. 제주 4.3 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8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되는 영화 <레드헌트>. 제주 4.3 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 하니영상


인권영화제는 지난해까지 인권단체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주관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분리 독립해 오롯이 홀로서기에 나선다. 이를 기념해 '왜 이 영화를 못 보게 하지'라는 주제로 제주 4.3항쟁을 다룬 <레드헌트>를 특별 상영한다.

<레드헌트> 1997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규정돼 당시 2회 인권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한 서준식 집행위원장을 구속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김일숙 활동가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기 위해 특별히 (상영작으로) 선정했다"며 "상영후 법학자인 홍성수 교수와 최은아 인권운동가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인권영화제는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지며, 매일 정오부터 밤 10시까지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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