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전국노래자랑>에서 생활력 강한 봉남 아내 미애 역의 배우 류현경이 25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영화<전국노래자랑>에서 생활력 강한 봉남 아내 미애 역의 배우 류현경이 25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돈은 내가 벌 테니 오빠는 평생 노래해라." (영화 <전국노래자랑> 중 미애의 대사)

허무맹랑한 호언장담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순수하게 사랑했던 시절, 생계를 도맡는 한이 있어도 사랑하는 남자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던 미애(류현경 분). 세월이 지난 지금은 남편 봉남(김인권 분)에게 "제발 헛바람 들지 말고 돈 좀 벌어오라"고 말한다.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의 무게가 온전히 미애의 두 어깨를 짓누를 뿐이다.

영화 <전국노래자랑> 속 미용사 미애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엄마, 언니를 위로하는 인물이다. 낮에는 미용사 보조로,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면서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봉남과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 한다. 이 때문에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흥겨운 무대와는 동떨어진 인물이기도 하다. 배우 류현경은 "미애가 많이 안쓰러웠는데, 그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대번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싶었죠. 제일 처음에는 사투리 연기가 재밌겠더라고요. 저도 경상도 (마산) 출신이거든요. 여기에 다른 이들과 동떨어져 있는 힘듦을 표현한다는 게 매력적이었고요. 현실은 힘들지만, 미애에게는 사랑밖에 없잖아요. 어머니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저희 엄마가 제일 좋아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습니다."


"벌써 유부녀 연기, 나이 들어 보이면 어떡하냐고?"

류현경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 "내 안에서 미애를 찾겠다"고 선언했다.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과 매일 같이 얘기하고 대사를 바꾸며 캐릭터를 완성했다. 소속사 대표까지 <전국노래자랑> 출연을 반대했지만, 완성본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단다.

류현경은 "(감독님이) 시나리오와 다른 식으로 많이 촬영했다"면서 "인물 각각을 좀 더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셨다. 감독님과 호흡하면서 정말 행복했다"고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장면이 바로 <전국노래자랑> 출연 후 미애가 봉남을 마중 나온 부분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볼 수 없던 장면이다. 한 손에 꽃다발을 든 봉남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다. 쭈그려 앉아 봉남을 기다리던 미애는 그에게 잔소리도 하지 않고 "밥 뭇나?"라고 묻는다.

이에 봉남은 "술 뭇다"라고 답한다. 류현경은 "풀샷이라 얼굴이 안 보이지만, 모든 감정이 녹아있는 것 같아서 좋다"면서 "감독님과 나, (김)인권 오빠의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부분"이라고 뿌듯해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의 한 장면

영화 <전국노래자랑>의 한 장면 ⓒ ㈜인앤인픽쳐스


"처음엔 다들 '이제 31살인데 젊은 역 해야지. 벌써 유부녀 연기해서 나이 들어 보이면 어떡해'라고 걱정했어요. 편집 기사님도 식당에서 불판을 닦는 장면을 두고 '너무 안 예쁘게 나왔다. 못생겨 보이는데 안 쓰면 안 되겠느냐'고 하셨고요.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얼굴에 점을 붙이고 일바지를 입는 등 캐릭터 자체를 억척스럽게 했다면 오히려 전체적인 영화는 흔들렸을 것 같아요. 전형적인 부분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제작자 이경규, 진정 영화를 사랑하는 장인 "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개그맨 이경규다. 1992년 영화 <복수혈전>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던 이경규는 <복면달호>(2007)에 이어 6년 만에 <전국노래자랑>을 제작했다. 제작보고회, 언론시사회 등 굵직한 일정에도 직접 나서는가 하면 김인권·류현경·유연석 등 배우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영화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류현경은 연예계 선배가 아닌 제작사 대표 이경규에 대해 "진짜 좋은 제작자"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부담을 주기는커녕, 행여 방해될까 촬영장에 와도 먼발치에서 지켜봤다고. 류현경은 "회식 자리에서 배우들에게도 '이 영화가 끝나고 더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면서 "'많이 관여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감독님과 배우들이 현장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판을 마련해주셨다. 영화에 대한 정성과 애정이 정말 크신 분이다. 장인 같다"고 전했다.

또 한 명의 소중한 인연은 극 중 부부의 연을 맺은 배우 김인권이다. 10년 전, 단편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인권은 류현경에게 "내가 네 얼굴이었으면 벌써 떴겠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류현경은 "'이 영화로 뭔가를 얻어야지' 하는 야망을 갖고 해야 하는데 타고난 성향이 그렇지 않은 편"이라면서 "(김인권) 오빠가 이런 나를 두고 '나였으면 벌써 떴겠다'고 하더라. 사실 지금을 잘 사는 것뿐, 이것을 발판으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미소 지었다.


"영화 '신기전' 이후 5년, 두려움 없이 연기했다"

류현경의 '배우 인생'은 영화 <신기전>(2008)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에도 꾸준히 활동했지만, 류현경은 <신기전>을 만나면서 연기에 재미를 느꼈고 '평생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항상 사람들에게 '5년밖에 안된 배우'라고 얘기한다"는 류현경은 "이전에 찍었던 작품이 싫은 게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25세 때 <신기전>을 만나 삶이 크게 달라졌다"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 욕심도 생겼다"고 했다.

"두려우면 아무것도 못해요. 계산하고 생각하다 두려움이 찾아오게 되면 결과도 이상하게 나오던걸요. <신기전> 이후로는 두려움 없이 연기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지만 모두 절 사랑할 수는 없잖아요. 적어도 저 자신에게 창피하지 않으면, 부끄럽지 않으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다 함께 호흡하는 작업이니까요. 저 자신을 잘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순수했던 과거부터 치열하게 사는 현재까지. <전국노래자랑>에는 미애의 삶도 담겨 있지만 류현경의 삶도 담겨 있다. "사극을 빼고는 처음으로 앞머리를 없앤 영화"라면서 나이들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실감나고, 어린 시절 어설프게 쓰는 표준어는 귀엽다.

"촬영하면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어머니, 아버지들이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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