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엔 영화 내용의 일부가 담겨있습니다

 영화 <오블리비언> 포스터

영화 <오블리비언>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외계의 침공에 대항하여 핵무기를 발사했던 인류는 외계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외계인의 달 공격과 방사능 오염 탓에 지구는 예전 모습을 잃었다. 모두가 떠나버린 지구에서 정찰병 잭 하퍼(톰 크루즈 분)는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분)와 외계인을 제거하는 무인 정찰기 드론을 수리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기지를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추락한다.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잭 하퍼는 줄리아(올가 쿠릴렌코 분)를 구출한다. 그런데 줄리아는 잭 하퍼가 계속 꾸었던 꿈에서 만났던 인물이다. 줄리아 때문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잭 하퍼. 그는 지하조직의 리더 말콤 비치(모건 프리먼 분)를 만나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 <오블리비언> 스틸

영화 <오블리비언> 스틸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트론:새로운 시작>에 이어 SF 영화를 내놓은 조셉 코신스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뜻밖에도 주목할만한 SF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의 유명한 영화평론가들이 2007년까지 만들어졌던 영화 중에서 엄선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서 SF 장르에 속한 영화들은 모두 2000년대 이전 작품이다. 최신작이라야 1999년에 만들어진 <매트릭스> 정도. 2000년 이후 SF 영화는 CG를 앞세운 시각효과는 발전했을지언정 상상력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SF 장르의 총아로 등극할 것만 같았던 <가타카>의 앤드류 니콜이 부진에 빠지고, <매트릭스> 워쇼스키 남매가 의문의 행보를 보인 2000년대에 <더 문>과 <소스 코드>의 던칸 존스마저 만나지 못했다면 실망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리고 10년의 끝자락인 2010년, SF 장르의 중요한 작품으로 언급되는 <트론>의 후속작인 <트론:새로운 시작>으로 조셉 코신스키가 등장했다.

<오블리비언>은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트론:새로운 시작>은 시각 효과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내용에서 신선함이 부족했다. 시각 효과를 우선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을까? <오블리비언>은 전작과 사뭇 다르다. 컴퓨터로 들어가는 <트론:새로운 시작>에서 보였던 휘황찬란한 요란함은 사라졌다. 대신에 <오블리비언>은 회색빛의 쓸쓸한 정서로 가득하다.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오블리비언>의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의 뇌리엔 <토탈 리콜> <나는 전설이다> <임포스터> <더 문> < 월-E > 등의 장면과 설정이 겹친다. 그렇다면 조셉 코신스키는 사유가 가능한 SF 영화를 어떻게든 만들기 위해 헝겊처럼 이런저런 영화를 짜깁기한 것일까? 그런 시선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오블리비언>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다른 면모를 보게 된다. <오블리비언>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가 만들었던 <우주 전쟁>의 다른 판본이자, 해석으로 읽을 수 있다.

 <오블리비언>의 한 장면

<오블리비언>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우주 전쟁>의 이후를 다룬 듯한 전개

외계인의 침공이 낳은 아수라장에서 레이 페리어(톰 크루즈 분)가 가족을 지키는 내용의 <우주 전쟁>.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레이 페리어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남자이자 깨어진 가정의 가장일 뿐이다. 두려움과 혼란이 야기한 광기를 겪으면서 부인이 있는 보스턴으로 가족과 발길을 옮기는 레이 페리어의 여정은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 만연한 공포의 기운에 대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관찰기였다.

외계인은 지구의 미생물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끝맺었던 <우주 전쟁>과 달리 <오블리비언>의 설정은 이와 반대 지점에 위치한다. <오블리비언> 속 외계인은 <우주 전쟁>의 실패라도 아는 양 지구로 직접 오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에서 자신들과 접촉하기 위해 보냈던 우주선의 조종사 잭 하퍼를 이용한다. 마치 <우주 전쟁>의 이후를 다룬 듯한 전개다.

<오블리비언>과 <우주 전쟁>은 모두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내레이션으로 마무리한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도 역시 집이다. 그러나 두 영화의 전개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우주 전쟁>에서 내레이션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다. 그에 비해 <오블리비언>의 내레이션은 복잡하다. 마지막에 들리는 잭 하퍼의 음성은 49번이 아닌 52번, 또는 다른 (번호) 잭 하퍼의 목소리다. 이는 관객이 줄곧 영화에서 본 잭 하퍼의 목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우주 전쟁>과 마찬가지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끝나는 <오블리비언>의 마지막과도 연결된다.

 <오블리비언>의 한 장면

<오블리비언>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기억이 곧 존재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토마스 맥컬리의 <고대 로마의 노래>에 나오는, 다리에서 홀로 수많은 적과 맞선다는 '다리 위의 호라티우스'처럼 용감히 외계인과 싸우고자 떠나는 잭 하퍼는 줄리아에게 마지막 선물로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남긴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용기를 잃지 말라는 잭 하퍼의 마음이다. 줄리아는 그의 염원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그들이 머무는 곳은 다름 아닌 잭 하퍼가 지구에 만든 보금자리다. 그는 망각의 시절부터 그곳에 인류의 증거인 책, 음악, 그림, 옷 등을 모아놓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인류와 함께 49번이 아닌, 52번이거나 다른 번호일지도 모르는 잭 하퍼가 돌아온다.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껍데기라고 여기는 잭 하퍼에게 '기억이 곧 존재'라고 줄리아는 말한다. 기억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잭 하퍼가 만든 집에 49번 이외의 숫자가 찾아오는 결론은 잭 하퍼로 상징되는 잊힌 '기억'의 귀환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는 그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쌓여서 전진한다.

근래 9·11 에 대해 영화로서 의미 있는 사색을 시도한 이는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이었다. <허트 로커>를 통해 전쟁이 주는 쾌감과 광기를 경고했던 캐스린 비글로우는 최근작 <제로 다크 서티>에서 9·11 테러 이후 목표를 상실한 미국의 현주소를 그렸다. 영화의 마지막,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분)의 얼굴은 목표를 잃은 미국의 얼굴이다.

<제로 다크 서티>의 '얼굴'과 <오블리비언>의 '망각'은 유사하다. 복수심에 불타 끝을 모르는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작 무엇과 싸우는지 알 수 없는 미국의 상태는 <오블리비언> 속 망각 상태의 잭 하퍼와 다름없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우주 전쟁>에 다른 식으로 접근하면서, (영화에서) 사라져버린 뉴욕의 한복판에서 <오블리비언>을 통해 시도한 9·11의 사유는 놀라운 수준까지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바보스러운 SF 영화로 폄훼될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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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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