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이 찍고 있는 유럽 관광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바르셀로나, <미드나잇 인 파리>의 파리에 이어 이번엔 로마다. 제목은 무척 '007' 시리즈 스러운 <로마 위드 러브>. 파리가 낭만적인 사랑이고 바르셀로나가 열정적인 사랑이라면 로마는 순박한 여자를 꼬셔내는 바람둥이 같은 사랑이랄까. 잘생긴 남자들과 일탈, 복잡한 도로교통 그리고 아이스크림의 도시. 영화는 시작부터 로마 시내 회전교차로의 교통안내원이 등장해 로마에서의 네 가지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마 위드 러브>의 건축가 유학생 커플

<로마 위드 러브>의 건축가 유학생 커플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첫 번째 이야기는 첫눈에 반한 사랑과 오페라. 길을 물어보다 이탈리아 남자 미켈란젤로와 사랑에 빠진 미국인 관광객 헤일리(앨리슨 필). 결혼을 앞둔 그녀를 만나러 온 아버지인 은퇴한 오페라 감독 제리(우디 앨런)는 평생 장의사였던 사돈을 '샤워하는 오페라 가수'로 데뷔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인은 부와 명성을 성공이라 생각하고 유럽인은 개인의 삶에서 만족을 찾는다는 전형적인 이분법이 유머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과거의 나에게 하는 충고. 미국인 건축학도 유학생 잭(제시 아이젠버그)은 여자 친구의 친구 모니카(엘렌 페이지)와 사랑에 빠진다. 로마에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던 건축가 존(알렉 볼드윈)은 잭을 만나 누구를 만나야 할지 충고한다. 하지만 충고한다고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신혼여행에서 만난 콜걸. 시골에서 신혼여행 온 커플 밀리(알레산드라 마스트로나르디)와 안토니오(알레산드로 티베리)가 우연히 각자 다른 남녀를 만난다. 안토니오 혼자 있던 호텔방에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가 들이닥치는 배달사고(?)가 난다.

그때 친척들이 호텔방에 들어오고 안토니오는 안나를 밀리라고 소개한다. 한편, 길을 잃은 밀리는 거리의 영화 촬영장에서 평소 동경해오던 대머리 섹스심벌 스타 루카(안토니오 알바네스)를 만난다. 콜걸이 신부가 되고 진짜 신부는 바람둥이 배우 혹은 호텔 도둑과 하룻밤을 보내는 좌충우돌 코미디. 각자 따로 첫날밤을 보낸 밀리와 안토니오는 다음날 다시 만난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 될까?

네 번째 이야기는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남자. '미스터 예측가능한(Mr. Predictable)'으로 불리며 규칙적인 삶을 사는 로마에서 가장 재미없는 남자인 중년의 가장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가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다. 아무 이유 없이 대스타가 돼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스컴을 타는데 그가 스타생활에 익숙해지자 갑자기 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네 가지 이야기는 겹칠 법도 한데 의외로 서로 만나지 않고 따로따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각의 에피소드로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재미가 있지만 연결고리가 없어서인지 영화가 약간 중구난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우디 앨런 영화들만큼 수다스럽지만 어떤 에피소드는 너무 억지스러워서 <미드나잇 인 파리>의 우아한 판타지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로마 위드 러브>의 신혼 남편과 콜걸

<로마 위드 러브>의 신혼 남편과 콜걸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네 에피소드는 모두 교훈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최근 들어 우화처럼 되고 있다. 할아버지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래도 교훈이 멋지게 포장됐던 작품이었다.

"당신이 꿈꿔오던 아름다운 시절은 누군가에게는 바로 지금이다."

아주 근사하고 그럴듯했다. 그런데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그 방식이 조금 지나치다. 교훈을 주입식으로 퍼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가령 미국인 유학생 잭의 미래 모습인 존이 잭을 따라다니며 해주는 충고는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살다보면 그때 그 사랑이 나에게 어떤 과정이었는지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것마저도 그의 인생이다. 바로 그 여자를 포기하라고 옆에서 종용하는 건 참 맥 빠지는 일이다. 누구도 한번 뿐인 인생을 완벽한 루트로 살아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또, 레오폴도의 운전수였던 남자는 레오폴도의 인기가 식은 뒤에 노천카페에서 갑자기 일어나 레오폴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부유하고 유명한 편이 더 낫죠."

글쎄, 공감이 가는가? 이렇게 등장인물이 뜬금없이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장치들은 지금까지 많은 우디 앨런 영화에서 판타지를 선물해왔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설득력 있게 쓰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꾼으로서 우디 앨런의 재능은 여전하다. 샤워하면서 노래하면 더 잘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실제 오페라로 만들어낸 솜씨는 참 기발하다. 시골에서 신혼여행 온 신부 밀리는 미장원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가 길을 잃는다. 로마는 골목이 많아서 길 잃기 쉬운 곳.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주 쉽게(?) 대답해주는데 가령, 직진 했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가서 다리 건너서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나온다는 식이다. 아마도 많은 관광객들이 로마에서 겪었을 이런 당황스러움이 영화 속에 유머러스하게 담겨 있다.

바르셀로나와 파리의 명소를 담은 우디 앨런의 전작들처럼 관광엽서 같은 화면들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트레비 분수, 캄파돌리오 광장, 포폴로 광장, 바티칸 박물관, 보르게세 공원, 베네토 거리 등 로마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스크린에 담아 지금 당장 로마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4월 18일 개봉. 111분. 청소년 관람불가.

로마 위드 러브 우디 앨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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