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중 한 장면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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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드라마들의 흥행공식은 대개가 아주 전형적이다. 가족들의 일상다반사에 결혼과 고부갈등을 둘러싼 갈등요소들이 주된 양념이다. 거기에 흔히 막장이라 불릴만한 요소들을 골고루 끼워 넣는 것은 예정된 수순. 그러한 것들을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라면 일정한 시청률도 보장되어 있는 편이다. 광범위한 시청 층의 확보가 비교적 용이한 주말 저녁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위의 공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어서일까. MBC <백년의 유산>은 시청률 20%를 상회하며 범상치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50부작의 이 드라마는 20회를 넘어서며 무리한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초반의 무거웠지만 공감을 샀던 여러 상황들도 오해와 갈등으로 점철돼가고 있고, 캐릭터마저 점차 변질돼 가고 있는 것.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중 한 장면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중 한 장면 ⓒ MBC


불과 몇 주 전, 캐릭터와 상황 설정이 공감 샀던 이유

이 드라마는 초반 '막장 시어머니'의 설정으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극중 방영자(박원숙 분)의 며느리 민채원(유진 분)에 대한 악행은 그간의 드라마들에 비해 그 수위가 월등하게 높았다.

표독하고 음모를 일삼는 시어머니 방영자는 자신의 욕망을 자식들을 통해 채우려는 통속적 인물. 마마보이인 그의 아들 김철규(최원영 분)는 사리판단에 서툰 유아적 모습이며, 딸 김주리(윤아정 분)는 사랑을 얻는답시고 '꼼수'가 훤히 드러나는 작전만 펼친다. 이 근시안적 인물들은 드라마의 '악의 축'으로, 주인공의 불우함을 심화시켜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100년 전통을 가진 국수공장을 운영하는 민채원의 집안 또한 만만치 않은 풍파가 있지만, 비교적 평온한 편이다. 그의 할아버지 엄팽달(신구 분)이 느닷없이 제시한 유산 100억에 온아들·딸·며느리는 몸을 다 바쳐 충성한다. 그들 사이의 문제점이라면 기껏해야 가부장적 전통을 고집하는 탓으로 신·구세대의 갈등이 엿보이는 것 정도다.

<백년의 유산>은 지금까지 주연들을 비롯, 주변 인물들까지도 비교적 잘 그려내고 있었다. '전봇대 오빠야' 민효동(정보석 분)과 카페 여주인 양춘희(전인화 분)의 '밀당', 그리고 '옥탑방 오빠야' 강진(박영규 분)의 종횡무진 활약 등은 맛난 양념이었다. 주인공들의 관계가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을 둘러싼 가족들의 관계 또한 촘촘히 자리하고 있어서였다.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중 한 장면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중 한 장면 ⓒ MBC


재미와 캐릭터 동시 실종, 이제 이유를 따져야 할 때

그러나 그것은 이제 과거의 영화다. 이제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개연성 없는 사건들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꼬인 관계들은 공감을 사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주인공들의 캐릭터 실종과 변질이다.

민채원은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시누이 사이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오던 인물이었다. 시청자들이 그를 둘러싼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강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일에 당하고만 사는 인물로 180도 바뀌고 말았다.

하지만 이세윤(이정진 분)에 비하면 민채원의 캐릭터 변형은 놀랄 일도 아니다. 민채원을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게 도왔고, 결국 악몽 같은 결혼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그는 이제 진실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의 포근한 보살핌 속에 조용히 자립을 도모하던 민채원과의 관계도 이제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 정도다.

주인공들 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변질되고 있다. 김철규와 결혼한 마홍주(심이영 분)와 방영자의 대립은 엽기를 넘어서고 있다는 평. 사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든지 코믹하면서 풍자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 초반 방영자의 드세 보이면서도 왠지 허술했던 '허허실실'의 독재자 이미지로는 충분히 가능했던 일.

걸핏하면 오해하고 이제는 폭력까지 휘두르는 이세윤의 엄마 백설주(차화연 분)도 매력을 잃은 지 오래다. 그나마 김끝순(정혜선 분)에 맞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 설득력을 발휘하는 양춘희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만이 극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그동안 <백년의 유산>은 그저 그런 에피소드 속에서도 선과 악의 캐릭터를 비교적 고르게 활용했다는 점이 큰 점수를 얻었다. 또한 그것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데 있어 악랄하고 포악한 모습이 아닌 코믹하고 미숙한 방향으로 펼치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악행의 정도가 시청자들이 '참고 견딜 수 있을만한' 수준이었던 것.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을 통상적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 주인공 쪽 인물들은 돈은 없지만 정의롭고, 그 반대편은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인물들로 그려지기 십상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조금 달랐다. 엽기 시어머니 쪽은 물론, 주인공 집안도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돈이라면 '환장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는 것. 노골적 물신숭배와 어리숙함을 동시에 갖춘 인물들은 기막힌 웃음을 만들어내는 주인공들이었다.

<백년의 유산>은 통속적이며 과거 지향적이라 비판받을만한 주제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러나 민채원과 이세윤의 은은한 관계를 드라마의 축으로 하여, '재미' 면에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호평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중반을 넘어서며 드라마를 향한 시선은 차갑게 변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눈감고 귀 막는다면 또 하나의 '막장 드라마'라는 낙인은 불가피하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기 위한 냉철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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