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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파로티>의 포스터.

영화 <파파로티>의 포스터.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대리만족이다. 실제로 체험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나 느껴보기 힘든 갖가지 감정들을 영화는 스크린에 옮겨놓는다. 관객들은 영화가 쏟아내는 주인공들의 실감나는 연기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얻고, 이를 통해 일상 속에 갇혀있던 삶을 잠시나마 확장할 수 있다.

이런 관객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영화는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설정하기도 한다. 슬픔이나 감동, 혹은 즐거움을 전달하고자 주인공이 마주하는 사건들이 극단적이 되기도 하며, 같은 이유로 배우들의 연기가 과장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조합들은 때로 우스꽝스러운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데,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이 엮이거나 극 중 억지스러운 상황이 그렇다. 내용 전개가 뻔한 경우라면 관객들의 반응은 더욱 냉담해질 것이다. 그런 '뻔하고 극단적인' 요소들이 모두 포함된 영화가 있다면 어떨까?

조폭의 사랑과 도전, 한국영화 클리셰의 총집합

앞서 언급한 묘사에 가장 근접한 영화를 꼽자면, 3월 14일 개봉한 <파파로티>가 딱 그러할 것이다. 일단 이 영화의 주요소재가 지난 10년간 한국의 영화계에서 범람했던, 그래서 이제는 지겨움까지 느껴지는 '조폭'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장호(이제훈 분)는 10대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싸움실력을 자랑하며 건달이 된 인물이다.

그가 학교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 한 가지 설정이 더 얹어지는데, 바로 장호가 성악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때 잘나가던 성악가였던 음악선생 상진(한석규 분)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이 보여주는 '문제아와 호랑이 선생'의 사제지간은 10대 학원물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다.

강소라가 연기한 숙희는 장호와 사랑에 빠지는데, 덕분에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 중 분위기를 살려내는 코믹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이렇듯 로맨스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폭넓은 관객의 대리만족을 위한 가장 좋은 도구로 쓰인다. 마치 '사랑이야기'가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도박보다 더욱 안전한 버팀목이기라도 한 것처럼.

또한 '성악'이라는 분야에서 목표를 이루려는 주인공을 방해하는 갖가지 우여곡절, 그 위기를 넘어서는 매번의 상황 역시도 관객이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파파로티>는 그야말로 한국영화에서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모든 클리셰를 종합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 <파파로티>의 한 장면. 조폭 출신의 주인공이 성악에 입문하여 성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파파로티>의 한 장면. 조폭 출신의 주인공이 성악에 입문하여 성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그럼에도 '대리만족'에는 충실한 영화

이처럼 내용전개에 있어서 반전도 없고 '건달과 성악가'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영화임에도,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반응은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저마다 "좋은 영화였다"고 한마디씩 거들면서 극장을 나서는 모습, 왜일까?

'대리만족'에 충실한 영화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근 천만 관객의 흥행기록을 세운 <7번 방의 선물>이 '슬픈 이야기에 눈물을 쏟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욕구에 화답했듯, <파파로티>도 마찬가지다. 꿈을 좇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무료한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역경을 딛고 목표를 이루어낸' 상황을 체험하도록 해준 것이다.

극 중 장호가 건달에서 성악가가 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전개는 '꿈이 이루어진' 상황을 더욱 가슴 벅찬 일로 만든다. 그의 꿈을 응원하며 죽어간 지인들, 자신을 유일하게 믿어주는 스승과의 만남, 앞길을 가로막는 위기상황 등의 요소들은 매우 흔하지만, 관객의 감정몰입을 한결 수월하게 돕는다.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밑바닥 인생이 성악으로 꿈을 이룬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탓도 있다. 꿈에 그리던 콩쿠르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장호가 열창하는 모습은 2007년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우승한 평범한 소시민 폴 포츠의 모습과 겹친다. 대회우승자 폴은 혼신을 다해 '네순도르마(Nessun dorma)'를 불러 순식간에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장호가 부른 곡과 똑같다.

 영화 <파파로티>의 한 장면. 재능을 가진 문제아와 까칠하면서도 사랑을 겸비한 선생의 이야기는 훈훈함을 자아낸다.

영화 <파파로티>의 한 장면. 재능을 가진 문제아와 까칠하면서도 사랑을 겸비한 선생의 이야기는 훈훈함을 자아낸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밋밋한 영화, 배우들의 연기가 살렸다

<파파로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맛을 내기 위해, 보증된 레시피를 총동원해 만든 요리'라고 하겠다. '혹여나 요리를 망쳐버릴까' 하는 마음에 흔하게 쓰이는 조미료를 쏟아 부은 격이다. 결과적으로 요리는 특유의 맛을 뽐내지는 못했지만, 관객의 입맛을 적절하게 만족시키며 인상 찌푸릴 일은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이었던 점은 요리를 위한 재료들이 최상이었다는 것이다.

한석규의 물오른 감정연기는 최근작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그래왔듯 흠 잡을 곳이 없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훌륭하게 '학교선생' 역할을 소화해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또한 이제훈은 다소 어색할 수도 있는 '성악가를 꿈꾸는 10대의 건달'이라는 캐릭터를 애절하면서도 귀엽게 잘 소화해냈다. 조연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본인의 역할에 적절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장호가 성악가로 성장, 성공하는 과정에서 비춰진 중점이 '노력'보다 '타고난 재능'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더 넓은 무대를 위해 자신을 발굴해준 상진을 떠나 해외로 나가는 장호의 모습은 마치 '노력보다 운과 인맥의 중요성'을 말하는 듯하다. 아마도 제작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이는 관객의 대리만족과 어느 정도 어긋난 부분이기에 아쉽다.

결과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이라는 멋진 소스가 곁들여짐으로써 영화는 깔끔한 맛을 드러낸다. 클리셰는 단어 자체의 뜻이 그러하듯, 다양한 작품에서 추구될 수 있는 전형적이면서도 진부한 짜임새이다. 한국 영화계의 새 작품들은 보다 풍성한 매력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입맛도 충족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안전 제일주의'는 범작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걸작을 낳기 위해서는 지양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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