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밤, KBS공사창립 40주년기념 개그 콘서트가 방영되었다

3월 3일 밤, KBS공사창립 40주년기념 개그 콘서트가 방영되었다 ⓒ KBS


추억 돋는 코미디의 향연

추억의 코미디가 빛나는 밤이었다. 3월 3일 밤 9시 15분에 방영된 KBS 공사창립 40주년기념 <개그콘서트>에서 말이다. 이날 <개그콘서트>는 개그맨 신구세대가 전체적으로 잘 어울리며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세대 구분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텔레비전 코미디의 유행어나 동작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이를테면 다이아몬드 스텝을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로 우리는 세대를 나눌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 스텝 하면 임하룡이고 임하룡 하면 젊은 오빠고 젊은 오빠 하면 빨간 목 폴라 티셔츠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임하룡은 한국 영화의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 배우일지 몰라도 그 이전 세대에게 임하룡은 역시 다이아몬드 스텝을 추는 말썽꾸러기 고교생 역할을 하는 젊은 오빠다. 이날 밤 방송된 <개그콘서트>에서는 젊은 오빠들과 누나들이 대거 귀환해서 아직 녹슬지 않은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추억의 슬랩스틱 코미디 <변방의 북소리> 

맨 처음 코너는 <변방의 북소리>. 이 코너의 주인공인 심형래 씨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신상의 문제로 나오지 못했다. 대신 후배 세대인 박성광이 심형래가 맡았던 바보 병사 역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북을 두드리며 북채로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는 슬랩스틱은 심형래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심형래가 <라스트 갓 파더>의 감독이 아니라 영구아트월드의 사장이 아니라 쭉 슬랙스틱의 일인자로서 코미디 무대를 지켜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불어 마흔만 갓 넘으면 어느새 코미디 무대에서 사라지는 방송 코미디의 현재가 안타깝게 다가왔다.

 상구의 이야기에 다 같은 우는 장군과 병사들

상구의 이야기에 다 같은 우는 장군과 병사들 ⓒ KBS


이봉원은 박성광을 놀려먹는 장군 역으로 나왔는데 무난한 연기를 보였다. 신구 세대가 함께 한 <변방의 북소리>에서 단연 최고의 연기를 보인 이들은 이상구와 이문재였다. 이상구는 부대를 이탈해서 나이트클럽을 드나드는 병사로 나왔다. 이봉원이 이유를 묻자 그는 '어머니가 나이트클럽에서 일하신다'해서 이문재가 울게 만든다. 이문재가 울음을 참는 표정은 압권이다. 박성광은 아무리 '어머니가 나이트클럽에서 일하셔도 집에 가서 만나야지!'라고 추궁하니 이상구는 '나이트클럽 주방에 딸린 쪽방이 저희 집이에요.'해서 이문재를 비롯한 모든 병사를 울린다. 이에 굴하지 않고 박성광이 '그래도 주방에서 일하시면 과일은 많이 드시겠네.'라고 하니 이상구는 '이가 없으세요.'라고 말해 결국 장군과 병사들 모두가 울음바다가 된다. 이때 개그맨들의 앙상블은 나무랄 데가 없다.

임하룡의 스텝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다

그런데 최고의 앙상블을 보인 코너는 바로 다음에 나온 <추억의 책가방>이었다. 70년대 고교생으로 분한 임하룡과 이경래를 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에 젖어드는 코너였다. 그러나 이들은 추억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생생한 희극적 에너지를 갖고 관객과 만났다. 역전의 노장이라 할 이 둘은 김성원, 오나미, 박영진, 정은선과 만나 손발이 척척 맞는 호흡을 보인다. 특히 오나미와 임하룡이 주고받는 개그는 배꼽을 잡게 만든다. 임하룡을 좋아하는 여고생으로 분한 오나미는 하룡에 자꾸만 '들이댄다.' 하지만 하룡의 관심은 나미의 예쁜 친구 정은선에게 있다. 임하룡은 '청춘을 불살라버리자며' 은선에게 대시하지만 그녀는 하룡이 고등학생이 아닌 것 같다며 운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웃기는데 나미는 이 기회를 살려 하룡에게 접근함으로써 이차 폭소를 노린다.

 하룡이 다가가자 은선이 운다

하룡이 다가가자 은선이 운다 ⓒ KBS


하룡이 늙었다고 울어버리는 은선을 핀잔하며 나미는 하룡을 '태양'이라고 한다. 이때 임하룡의 대사. "나는 태양보다는 지 드래곤에 가까워!" 이차 폭소가 터진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하룡은 나미에게 '너는 베이글녀야'라고 한다. 나미의 대사. "그럼 내가 얼굴은 베이비에 글래머녀야?" 기대하시라, 임하룡은 이렇게 응수한다. "아니, 아가 때부터 아주 글러먹었다는 거지!" 이로써 베이글녀는 중의적 의미를 획득한다.

 하룡과 나미

하룡과 나미 ⓒ KBS


그 다음 장면들은 <추억의 책가방>을 즐겨 봤던 이들이라면 다 짐작하는 대로 선생님의 등장과 하룡의 위기다. 이때 선생님 역의 박영진과 학생 역의 임하룡이 주고받는 개그는 실제의 인물과 연행 주체인 등장인물 간의 교차적인 진술 때문에 더 큰 웃음을 준다. 선생님이 때리면 고교생 하룡은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고 박영진이 "나이가 왜 궁금해?"라고 물으면 연기자 임하룡은 "저는 왠지 꼭 알고 싶어요."라고 응수한다. 이때 이경래가 끼어들어서 "얘는 환갑이 넘었어요."라고 거든다. 이쯤 되면 바닥에 배꼽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추억의 책가방>의 마무리는 신구 개그민들이 총출동한 단체 다이아몬드 스텝 댄스였다. 임하룡은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무대 바닥에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었다. 추억을 불러오는 빛나는 무대였다.

 선생님과 하룡의 폭소 매치

선생님과 하룡의 폭소 매치 ⓒ KBS


친일파와 시골 부자를 엮는 풍자가 "괜찮네유"

최양락과 김학래 콤비가 다시 만난 <괜찮아유>는 개그가 아니라 코미디 연기가 어떤 것인지, 연기자들이 주로 받는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우는 코너였다. 부농인 김학래와 빈농인 최양락이 돈과 스마트폰을 소재로 웃음을 줬다. 무엇보다 <괜찮아유>는 부농인 김학래의 집안이 일제 때 친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풍자적이었다. 최양락은 돈을 꿔주지 않겠다는 김학래에게 "가난이 죄유!"라고 푸념한 뒤에 김학래 집안이 항상 앞서가서 잘 살게 되었다고 칭찬하는 것 같지만 끝까지 들어보면 항상 친일 행위에 대한 폭로이다. 박지선은 두 선배를 잘 뒷받침했다. 특히 최양락이 박지선을 눈앞에 두고 "대단하네유~!"할 때, 최양락의 뉘앙스 처리도 일품이지만 그 말을 들을 때 박지선이 짓는 수줍은 표정 역시 출중하다.

 최양락, 김학래, 박지선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최양락, 김학래, 박지선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 KBS


고 김형곤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

고 김형곤의 빈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엄용수와 김학래가 선보인 아부 경쟁은 다시금 풍자 코미디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고 김형곤을 대신해 비룡그룹 회장을 연기한 김준현은 고 김형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아우라마저 살려내는 것은 힘들었다. 이 코너에서 대기업의 서민경제 침탈을 다룬 것만 해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초반에 "내가 얼마나 먹었다고?"하면서 정부나 시민사회의 대기업에 대한 문제제기를 콧방귀 뀌었던 회장이 금세 서민 경제는 건드리지 말자고 태도를 바꾸는 것은 희극성을 대단히 약화시킨다. 그리고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은 김 회장이 송영길을 보고 '송 이사'라고 부른 뒤 '저거 아들만 아니면 자르는 건데'라고 하는 말할 때이다. 송영길은 그 후에 대사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김 회장 아들이 송 이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코미디는 정교한 시계장치 같아서 작은 톱니라도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 이상을 일으킨다. 개인기도 좋지만 내용상 이런 모순점을 만들면 안 된다.

 엄 이사는 자기보다 어린 김 회장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엄 이사는 자기보다 어린 김 회장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 KBS


<시커먼스>보다는 부채 도사가 어땠을까?

그 다음으로는 <시커먼스>가 있었다. 이봉원과 장두석을 봐서 반가웠지만 이 코너는 신구 세대의 조화보다는 개그 듀오들끼리의 평소 호흡만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웠다. 차라리 장두석의 <부채 도사>를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부채 도사>야말로 지금의 <무르팍 도사>의 원형으로서 신구 코미디 간의 대화적 관계를 확인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최양락의 네로, 살아있네!

최양락이 로마의 폭군으로 등장하는 <네로 25시>는 고정 코너로 다시 부활시켜도 좋을 만큼 시의적절한 코미디였다. 지금보다 80년대나 90년대가 훨씬 직접적인 정치풍자나 시사풍자 코미디가 많았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코너 역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마찬가지로 폭군 네로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태도 변화를 보인다는 것이 아쉽다. 폭군은 폭군인 채로, 아부쟁이는 아부쟁이인 대로, 충신은 충신인 대로 자기 역할을 하면서 서사가 뒤틀리고, 전혀 의도하지 않던 바로 결론이 나와서 폭군의 폭정 행위가 결국에 선정이 된다는 것이 희극적 서사일 텐데, <네로 25시>에서는 네로가 끝날 시간이 되자 갑작스럽게 '중산층 걱정'을 한다.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서사적 전개의 개연성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어떨까.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신하를 바라보는 네로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신하를 바라보는 네로 ⓒ KBS


오! 재미있는 오서방이 나온 <봉숭아학당>

<쓰리랑 부부>에선 김미화의 모습을 봐서 반가웠다. 하지만 그 이상의 평을 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봉숭아학당>에선 오재미가 단연 돋보였다. 그가 보여준 희극 연기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카메라가 그를 잡든지 안 잡든지 바보 오서방으로 그는 무대에 존재했다. 그의 개인기 모창도 훌륭했지만 다른 후배들의 연기에 반응하는 그의 집중력은 후배들의 존경 받을 만한 것이었다. 스테파니 박성호나 이태리 귀족 임혁필, 연변소년 강성범, 출산드라 김현숙도 반가웠지만 오재미 만큼 빛나지는 않았다. 오재미 다음으로는 맹구 역할을 한 김준호가 특유의 바보 연기를 선배만큼 잘 했다. '차도남'을 잘못 알아들어 내뱉은 '차돌남(차가운 돌아이 남자)'은 유행어가 될 수도 있겠다.

 후배들이 연기할 때 리액션하는 오재미의 표정을 보라

후배들이 연기할 때 리액션하는 오재미의 표정을 보라 ⓒ KBS


맹구와 오서방의 등장은 <봉숭아 학당>의 시기별 특성을 일깨운다. 김형곤이 선생님으로 나왔던 원조 <봉숭아학당>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다가 사실적 등장인물을 등장시켰다. 그에 비해 이후의 <봉숭아학당>은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는 등장인물들이 나왔고 훨씬 더 만화적이게 되었다. 어느 것이 더 희극적으로 효과적이냐에 따라 시기별 선택이 달랐으리라. 다만 텔레비전 코미디가 장면 전개의 개연성보다는 개그맨의 개인기에 의존하게 될 때, 오래 가는 작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음불가>과 <사바나의 아침>

이수근이 개그맨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선 <고음불가>는 예전 그대로였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했던 코너라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진 않았다. 특히 '강남 스타일'의 뮤직 비디오를 따라한 대목, 예컨대 노홍철 분장을 한 연기자와 백 댄서로 춤을 춘 여자 연기자는 굉장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단순히 그냥 따라하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희극에 속한다.

<사바나의 아침>에선 심현섭이 13년 만에 무대를 밟았다. 그의 개인기는 여전했다. 그는 변비에 걸린 이덕화를 이덕화보다 더 이덕화스럽게 재현했고, 활쏘는 수달의 표정을 여실히 보여줬다. 깅가밍가로 분한 김미화도 예전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이 코너는 <시커먼스>와 마찬가지로 인종적 편견에 기초하고 있어서 약간 불편했다.

 고 김형곤, 그가 그립다, '탱자 가라사대' 시절

고 김형곤, 그가 그립다, '탱자 가라사대' 시절 ⓒ KBS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의 귀환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개그 콘서트>의 모든 출연자는 기라성 같은 KBS 코미디언들을 기리는 '코미디는 흐른다'를 부르며 대화합의 마당을 연출했다. 그런데 아직도 충분히 코미디 무대에 설 수 있는 분들이 왜 이런 특집 프로그램에서만 얼굴을 보여줘야 할까? 이번 특집 무대에 서지 않은 정종철은 언젠가 한국의 개그맨들이 '떴다 하면' MC를 하거나 토크쇼 혹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만 출연하려고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때 그는 영원히 코미디언으로서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 김형곤을 추모하면서 유재석이 고인의 말씀을 명심하고 실천하겠다고 하는 대목에서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유재석은 코미디 연기자일 때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다. 그는 오락 프로그램의 변화에 맞물려서 화려하게 변신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언제부턴가 오락 프로그램을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유재석은 오락 프로그램 시절에는 빛을 발하지 못하다 예능 프로그램 시절에 만개해서 '국민MC'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도 휼륭한 덕목이고, 자신의 시대를 잘 타고나는 것도 큰 복이다.

다만 이런 바람을 가져본다. 개인기가 아니라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코미디언들이 수준 높은 앙상블을 보여주며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코미디를 보여주기를. 아직도 다이아몬드 스텝으로 무대를 빛내는 임하룡 같은 노장들이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많아지기를. 대기업과 권력자를 풍자하는 코미디가 텔레비전을 틀면 나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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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강사입니다. 공저로 <문학으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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