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번 주로 <보고싶다>가 종영한다. 시청률의 높낮이를 차치하고 이 작품이 유독 안타까운 이유는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풀어가고자 했던 '사회적 멜로'를 내걸었으면서 중반 이후 흔하디 흔한 복수극으로 자체 방향 전환을 하면서 당대의 명작의 자리를 스스로 미끄러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드라마로써는 말하기 힘든 성폭행이란 문제를 용감하게 내걸어 놓고서는 스스로 그걸 그저 드라마의 윤활유 역할 이상으로 사용하지 못한 <보고싶다>는 아마도 두고 두고 아까운 드라마로 오래 회자되지 않을까?

그런데 되돌아 보면 <보고싶다>의 작가 문희정은 그 이전 작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도 그랬다. 장애인이 주인공이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대안 가족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가 결국은 역시 희대의 복수극으로 마무리했던 것, 습관일까? 아집일까? 한계일까?

"아버지, 당신이 사람입니까?" 일관되게 아버지의 원죄 물고 늘어져

 지난 9일 방영한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에 출연한 박유천

지난 9일 방영한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에 출연한 박유천ⓒ MBC


<보고싶다> 20회는 마치 그간 묵혀왔던 한이라도 풀어내듯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이 드라마가 지향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쏟아 부었다.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가진 여주인공은 이제서야 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졌고, 남주인공은 아버지를 향해 당신이야말로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문희정 작가의 작품은 종교적이다. 종교에서 항상 인간의 원죄를 상기시키며, 그 해원의 풀이에 온 힘을 쏟듯이, 문희정 작가의 작품은 옹골차게 주장한다. 모든 일은 다 부모 세대의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내 마음이 들리니>의 세 주인공. 차동주와 장준하와 봉우리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아버지 최진철의 악행으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고싶다>도 마찬가지다. 한정우, 강형준, 이수연의 현재는 아버지 한태준의 악행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두 드라마의 아버지의 악행은 근본적으로 '돈', 보다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되었고 그 아버지는 철저히 파멸에 이를 때까지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싸움의 방식 중 '한 사람만 팬다'는 무지막지한 막싸움 방법처럼, 드라마는 일관되게 줄곧 아버지의 원죄를 물고 늘어진다. 그 아들 세대가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그건 오로지 아버지 때문이다. 그리고 오로지 아버지, 아버지 옆에 있는 악인들은, 그 덕분에 죄가 희석된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태현숙도, <보고싶다>의 강형준모 도 사실은 만만치 않은 죄를 지었지만 아버지 세계의 어두움에 가려진 채 그 죄과는 슬며시 사라지고 만다.

"제가 사람의 자식이 맞습니까?" 아버지 세대의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

 지난 26일 방영한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한 장면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한 장면ⓒ MBC


아버지 세계의 악행으로 인해 자식 세대까지 불행은 드리워 지지만, 그에 대한 자식 세대의 반응은 역시 종교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처럼 명확하게 편을 가른다. 비록 그로 인해, 신체적 파괴를 겪거나(<내 마음이 들리니>의 차동주), 정신적 고통을 겪더라도(<보고싶다>의 한정우) 아버지의 세대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올바른 길을 가려는 반듯한 아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 대비해 아버지 세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로 뒤틀리고 고통받은 채 그 상처를 앙갚음하려는 복수의 화신이 등장한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장준혁, <보고싶다>의 강형준)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아들 세대의 복수는 역시나 그 과정에서 범죄를 발생하지만, 문희정 월드의 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그저 상처받은 아이들로 대접받기에,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은 간과되기 십상이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듯한 인상까지 받는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장준하의 사기성 짙은 행각은 둘째치고, <보고싶다>의 강형준은 여섯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는데도, 여전히 강형준은 엄마 잃고 다리도 다친 불쌍하고 보살펴 주어야 하는 아이같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분명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그것은 결국 남자 주인공은 건전한 판단과 행동으로 귀인되지만, 드라마를 이끄는 것은 아버지 세대의 악행으로 인해 되풀이되는 악행이기에 복수극의 주인공이 늘 중반 이후에는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 분명 작가가 귀결하고자 하는 것은 '선'이지만 보다 선험적인 '악'을 부각시키기 위해, 후손의 '악'은 불가피하며 때로는 미화되기까지 하는 자충수에 빠짐으로써, 애초에 말하고자 하는 '선의' 조차도 희석되는 결과를 낳는다.

정의의 사도 미친 토끼 한정우 형사는 근래에 보기 드문 멋진 어른 남자였지만, 그의 활동은 언제부터인가 늘 경계성 인격 장애란 핑계를 가진 강형준의 악행을 따라 증거나 수집할 뿐이고, 설득력없는 강형준의 사연과 감정은 구구절절 늘어진다.  애초에 사회적 멜로를 표방한 문제작이자 화제작 <보고싶다>가 광고도 몇 개 남지 않은 그저 그런 드라마처럼 전락한 데에는 이런 작가의 논리적 딜레마가 결정적이다.

"한정우, 너만 있으면 돼!" 늘 수동적인 여주인공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에서 수연 역을 맡은 배우 윤은혜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에서 수연 역을 맡은 배우 윤은혜ⓒ MBC


이런 문희정 식 월드가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엇갈린 세계관철저히 부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여주인공은 늘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밀려나고 만다.

<보고싶다>는 여주인공의 성폭행이란 화두를 거창하게 내걸었음에도, 또 다른 성폭행의 자녀를 둔 '보라 엄마'의 사건 이래로 이수연의 상처는 소홀히 다루어진다. 심지어 성폭행이란 소재가 가진 사회적 무게를 작가가 인지하고 있는가 의심이 될 정도로 그녀의 상처는 그저 그녀를 기다리던 한정우를 만남으로써 순식간에 치유되는 듯하고, 20회에 들어서야 겨우 엄마랑 말 몇 마디로 모든 아픔을 해소시켜 버린다. 하물며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어 버리는 잔인한 설정에, 자신의 아픔보다 오히려 그런 혐의를 씌운 강형준을 안타까워 하는 대인배로 만들어 버리는 설정은, 여주인공의 상처를 만만한 '소재'로 차용했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들고 남자들의 이야기의 부수적 존재로 격하시키도록 만든다.

이 점은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봉우리가 이수연 정도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드라마가 진행 되면서 그녀의 아픔은 저 멀리 사라지고 그저 '우리 마루 오빠'를 걱정하느라 노심초사하는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늘 사랑의 승자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지만 이들의 사랑은 시작과 끝뿐이다. 어린 시절 사연으로 인한 사랑의 계기는 있으되, 그들의 사랑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은 복수극에 짓눌려 그저 에피소드로 연명하다 마지막에 '그래서 행복했대요'라는 허무한 결론만을 남기는 것이다.

<내 마음이 들리니> 역시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우리 사회에서 다루기 힘든 문제를 다룬다고 시끌벅적 했었다. 이것은 <보고싶다>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나 그뿐. 문희정 작가는 그녀가 내건 이런 사회적 문제들을 언제나 자신의 숨겨진 주제 의식 '욕망에 기인한 대를 이은 해원'이라는 복수극을 풀기 위한 낚시밥처럼 사용해 버렸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후반부 산으로 간 드라마의 내용으로 인해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문희정 작가는 자신의 고집을 <보고싶다>에서 여전히 되풀이한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되풀이하는 작가, 한태준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녀 자신의 비판해 마지 않는 어른 세대의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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