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1세대 밴드인 에브리 싱글 데이는 격랑을 해쳐낸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다. 야성의 사운드가 지배하던 시절. 마니아들은 에브리 싱글 데이의 생존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시대는 변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뒤집혔다. 순전히 그들의 오기가 일궈낸 결과였다.

홍대 1세대 밴드인 에브리 싱글 데이는 격랑을 해쳐낸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다. 야성의 사운드가 지배하던 시절. 마니아들은 에브리 싱글 데이의 생존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시대는 변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뒤집혔다. 순전히 그들의 오기가 일궈낸 결과였다. ⓒ 에브리싱글데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은 홍대 앞 인디신의 황금기였다. 하나 둘 클럽으로 모이기 시작한 밴드의 열기가 끓어오르다 못해 폭발한 시기였다. 육중한 사운드의 뉴메탈(Nu-Metal)과 '조선펑크'로 대변되는 펑크뮤직이 그 흐름을 주도했다. 피아가 '행복한 꿈의 나라'를 부르짖고 크라잉넛이 '지독한 노래'를 외치며 광기를 발산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영광의 시대는 길지 않았다. '부비부비' 댄스 클럽의 파상 공세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상가 임대료로 인해 소규모 인디 클럽은 순식간에 운영을 걱정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렸다. 여기에 팝 시장의 트렌드 교체 주기가 10년에서 3, 4년으로 급격히 짧아졌다. 앨범을 내고 활동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트렌드가 국내에 유통됐다.

기존의 밴드가 견디기엔 당시의 변화는 너무 빠르고 가혹했다. 격변의 시대였다. 2010년 이후 인디신에 부흥기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그 혹독한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밴드는 그리 많지 않았다.

홍대 1세대 밴드인 에브리 싱글 데이는 이러한 격랑을 헤쳐낸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다.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달리고 내리찍고 절규하는 야성의 사운드가 지배하던 시절. 그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모던록을 시도했다. 당시 팬들이 원했던 '헤비니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마니아들은 에브리 싱글 데이의 생존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그렇게 16년이 지났다. 시대는 변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뒤집혔다. 순전히 그들의 오기가 일궈낸 결과였다.

"일단 계속 음악을 하려는 의지가 강했어요. 그래서 계속 곡을 만들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 언저리에서 아직 계속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웃음) 사실 밴드로서 잘 나갔을 때가 없었어요. 구름 같은 팬을 몰고서 공연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잠깐 좋을 뻔했다가, 여러 가지 악재 때문에 앨범은 냈는데 활동은 없었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억울하고.(웃음) 그런 마음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이걸 풀지 않고 그만둘 수 없다는 오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에브리 싱글 데이의 생존 비결-오기와 줄다리기, 날것의 사운드

그들의 음악은 청각을 미각으로 바꾸는 묘한 마력이 있다. 최근 내놓은 앨범 '모멘트'(Moment)는 그 정점이다. 드럼에선 풍부한 공간감이 배어 나오고 기타의 크런치 톤은 노이즈 없이 깔끔하면서도 꽉 들어찼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건반과 프로그래밍 사운드가 감칠맛을 살린다. 16년 차 밴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싱싱한 사운드다.

 에브리 싱글 데이의 5집 앨범 <모멘트>

에브리 싱글 데이의 5집 앨범 <모멘트> ⓒ 미러볼뮤직


사운드 메이킹에 대한 노하우를 물었다. "생각만큼 사운드 톤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이 연출하는 사운드의 매력은 섬세함이 아닌 날것이 주는 특유의 질감에 있다.

"녹음할 때 자연스럽게 생긴 잡음도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여요. 데모테이프를 녹음할 때 머릿속에 곡에 대한 느낌을 미리 다 잡아놓는 편이죠. 생각했던 것을 잡아놓은 상태에서 스튜디오에 가서 한번 가이드 녹음을 하다가, 이게 데모 음원보다 좋으면 그걸 그대로 쓰기도 해요. 평소 사운드 톤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에요.

잘 생긴 모델은 하얀 티 하나만 입어도 태가 나지만 못생긴 모델은 뭘 입혀도 이래저래 이상하듯이 노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좋은 멜로디와 좋은 뼈대가 있으면 됩니다. 곡의 본래 느낌을 될 수 있으면 살리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문제는 제대로 된 알맹이를 뽑는 게 쉽지 않다는 거지.(웃음)"

멤버인 문성남(베이스, 보컬)과 정재우(기타)는 스물한 살에 만나 올해로 16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동화될 법했지만 두 사람이 선호하는 음악 세계는 확연히 달랐다.

문성남은 복고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반면, 정재우는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하기 좋아한다. 1집은 문성남이 중심이 된 작품이었고 2집과 3집은 정재우의 플레이를 위주로 채워졌다. 트렌드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모던록의 근본적인 틀을 놓지 않는 에브리 싱글 데이의 스타일은 다른 음악관을 가진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줄다리기의 결과다.

"멤버의 개인적인 성향이 합쳐져서 밴드의 음악이 되는데, 1집에서 2집으로 넘어갈 때 (스타일의 변화) 폭이 가장 컸어요. 1집의 경우는 복고적인 음악이었고, 재우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은 대부분 2집에 반영됐죠.

저는 하나만 하는 스타일인데 재우는 이런저런 플레이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재우 스타일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그렇지. 아무튼 저는 불만이 그거였어요. '왜 네 것을 안 하느냐'고.(웃음)"(문성남)

최근작인 '브라이트 사이트'와 '모멘트' 앨범은 어느 한 사람의 양보를 전제하지 않았다. 각자의 음악세계를 죽이지 않는 방향에서 가장 적절한 접점을 모색했다. 문성남이 말하는 "쭉 뻗은 뼈대"에 정재우 특유의 트렌디한 감각이 얹어졌다. 완벽한 조합이었다. 물론 이게 완성형은 아니다.

"아직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나 좋은 멜로디와 좋은 뼈대가 있는 곡을 만드는 게 중요하고 항상 그걸 바라죠. 물론 그걸 잘 편곡하는 것도 필요하고. 앨범의 구성이라든지 사운드나 편곡이 이제까지 앨범을 내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후의 스타일은 조금 다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수도 있고."

그들이 말하는 <파스타>와 <골든타임>. 그리고 <청담동 앨리스>

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인디신에서 미련 없이 손을 털고 나왔다면, 우리는 <파스타>라는 먹음직스러운 드라마를 분말스프 안 넣은 라면처럼 싱겁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골든타임>과 <청담동 앨리스>도 다르지 않다. 모두 에브리 싱글 데이가 음악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드라마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물었다.

"독립영화 <레인보우>의 OST를 제작한 적이 있었어요. <레인보우> 제작 당시에 편집 기사님이 때마침 <파스타> 편집 일을 맡게 되셨는데 권석장 감독님이 편집실에 오셔서 "음악 감독을 맡을 사람이 없다"고 하셨나 봐요. 그때 편집 기사님에서 저희를 추천해 주셨죠. 그렇게 감독님이 저희를 알게 되시고, 나중에 곡을 만들어서 드렸어요.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죠."

 SBS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OST포스터. 그들의 OST가 빠진 드라마를 상상해본적 있는가.

SBS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OST포스터. 그들의 OST가 빠진 드라마를 상상해본적 있는가. ⓒ 포니캐년코리아


드라마 음악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섬세함이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큰 느낌을 파악하는 동시에 세세한 장면 전환에 맞춰 어떤 음악을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구안이 필요하다. 연출자의 의도와 캐릭터의 성격, 이후에 벌어질 스토리의 복선까지 신경 써야 한다. 무엇보다 음악이 화면과 잘 어우러지는 게 중요하다. 편집만큼이나 상당히 기술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을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웃음) (음악 감독을) 처음 하다 보니. 예전에 작업한 <레인보우>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이 '이런 거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시면 거기에 맞게 만들어서 드리는 정도였거든요. (감독님이) "배치를 어떻게 할까" 물어보실 땐 '이게 어울리네요' 라면서 옆에서 조언하는 정도였고.

<파스타>는 처음 반 정도는 감독님이랑 편집 기사님이 직접 배치하셨고, 남은 11부부터 마지막 회까지 저희가 직접 배치했어요. 그 기간 동안 정확히 말해 음악감독 레슨을 받았다고 볼 수 있죠."

<파스타>가 학습의 장이었다면 <골든타임>과 <청담동 앨리스>는 오롯이 마련된 자신들의 무대였다. 기존의 트랙을 재녹음한 <파스타>와는 달리 새로운 곡을 만들고 주인공에게 맞는 테마 하나하나를 직접 편곡했다. 최대한 많은 테마를 준비해 어떤 신이 나오더라도 그 장면을 커버할 수 있게 대비했다.

관건은 드라마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과 주제의식의 표현이었다. <파스타>가 젊은 세대들이 일상에서 떠올릴 수 있는 현실적인 판타지를 그렸다면 <골든타임>은 사회 초년생들이 조직에서 겪는 성장통을, <청담동 앨리스>는 청춘이 직면한 계층적 현실과 사랑을 그려냈다. 연출해야 할 곡의 느낌도, 편집 스타일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너희와 같다." 그들이 보내는 공감과 연대의 표현.

"세 드라마 모두 (주인공이) 똑같은 처지였는데,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 나왔어요. <파스타>나 <청담동 앨리스>는 '힘든 처지지만 극복해 보자' 스타일이고. <골든타임>은 남성적이고 심각하게 사운드를 가져갔죠. 아무래도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라.

드라마에서 신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전 장면의 감정이 다음 신에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파스타>나 <골든타임>에서는 이 감정선의 줄기를 이어갈 때 어떤 음악을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신이 바뀌어도 음악이 쭉 이어지는 그런.

물론 이렇게 가면 위험 요소가 있긴 하죠. 음악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끌고 간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니까.(웃음) <청담동 앨리스>는 좀 쉽게 가자는 주의에요. 감독님도 그렇고. (<청담동 앨리스>의) 배경음악은 철저히 보조적인 역할이고. 그래서 슬픈 장면에는 슬픈 음악, 기쁜 장면에는 기쁜 음악, 딱딱 맞춰 깔아주죠. 음악이 없어도 되는 장면은 음악을 안 넣고. 철저히 장면의 흐름에 맞췄어요."

 이탈리아 요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파스타>

이탈리아 요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파스타> ⓒ MBC


세 드라마는 모두 주제 의식은 다르지만 고달픈 20대의 성장기를 다룬다. <파스타>의 서유경은 '라스페라'의 주방 보조에서 프라이팬을 잡기까지 숱하게 눈물을 흘리고 <골든타임>의 세중병원 인턴 이민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응급 환자를 받으며 통제하고 장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청담동 앨리스>의 한세경은 지앤의류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일하며 계층과 계층 사이의 단단한 벽에 절망한다.

이들이 흘리는 서러운 울음과 한숨이 '나의 모습'으로 느껴지는 순간, 드라마는 에브리 싱글 데이의 곡을 빌어 사회 초년생을 다독인다. 그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숱한 좌절을 두고 "20대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우리의 현재 상황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만든 OST는 청춘을 향한 감정 이입의 산물이다. 빈말 섞인 위로가 아닌 공감과 연대의 표현이다.

"우리도 20대가 겪는 좌절을 겪어왔고 지금도 사실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어서 계속 생각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음악에 배어나오지 않았을까. 대본이나 시놉시스를 봐도 주인공의 느낌도 우리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피로감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들은 좌절과 실수로 가득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고단한 과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미처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았다. 아직 세상을 향해 들려줄 것이 많이 남았다. 과거를 이야기할 법한 연차였지만 그들이 바라본 것은 미래였다. 에브리 싱글 데이의 사운드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한 색감을 갖는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꿈은 고난과 도전을 통해 더욱 선연해지는 법이다.

에브리싱글데이 청담동 앨리스 파스타 골든타임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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