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김희선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김희선 ⓒ SBS


배우 김희선이 지난 17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 톱스타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부터 별명 '토마토'(토하고 마시고 토하고)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은 그녀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발랄 깜찍했다. 천방지축에, 좌충우돌이었지만 그래도 '온리(Only)' 김희선이었던 그 시절, 그 때처럼 말이다.

TV에서 처음 김희선을 봤을 때가 기억이 난다. 예쁘다 못해 너무 화려해서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김희선이란 여자는 당시 연예계를 주름잡았던 최진실을 능가하며 20대 최고의 아이콘으로 한국 연예계에 우뚝 섰다. 하는 드라마마다 대박이 나고, 하는 액세서리마다 전국의 유행 스타일이 되어 버리던 그때 김희선은 어떤 배우, 어떤 스타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 인기를 구가했다.

드라마 <컬러>(1996)로 스타덤에 오른 뒤, 10여 년간 톱스타의 자리에 군림했던 김희선은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유명했다. 특히 그녀는 대본 연습을 안 하는 배우로 유명했다. 2001년 1월 19일자 여성잡지 <Living OK>의 기사를 보면 김희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김희선이 스타로서 정점에 섰던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 대본 강독회라고 불리는 대본 연습은 김희선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고 한다.

김희선이 워낙 대본 강독을 싫어하자 드라마 제작사나 영화 제작사도 굳이 김희선에게 대본 연습을 강요하지 않았다. 김희선의 연기 톤이 감독이나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부분 김희선 식 으로 진행된 것은 물론이다. 스타 김희선의 출연이 곧 드라마 흥행에 직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감히 김희선을 건들 수 있는 감독과 작가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배우 김희선

배우 김희선 ⓒ SBS


게다가 그녀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김희선은 선배 연기자들을 대하는 데에도 거칠 것이 없었다. 10대 후반에 갓 데뷔해 20대 초반에 대한민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여배우가 오만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드라마 제작사 삼화프로덕션 대표인 故 신현택 대표는 2006년 '코리아드라마 페스티벌'에 참석해 <목욕탕집 남자들> 시절 김희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당시 김희선이 드라마에 출연을 하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끼는 많지만 놀기만 좋아했지 노력을 안했다"며 웃음 지은 그는 "대본연습에 참여를 시켰는데 김수현 작가가 김희선이 출연하면 대본을 자신이 안 쓰겠다며 쫓아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하도 노력을 안 하기에 왜 그리 노력을 안 하느냐고 충고를 했다"며 "그 말을 듣고 2달 동안 연기연습을 해 결국은 OK 사인을 받아내는 강단도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 문화일보 문화부 양성희 기자는 "화려한 겉모습에 머리는 '진공상태'처럼 보이는 천방지축 김희선이 김수현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캐스팅에 된 것 자체가 엄청난 의외"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사치스럽고 화려한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김희선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였다. 1997년 일본잡지 < JJ >와의 인터뷰에서 샤넬, 구찌 같은 명품을 좋아하며 외제차를 3대나 갖고 있다는 인터뷰를 해 IMF를 겪고 있던 일반 대중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녀는 반성의 의미로 드라마 <웨딩드레스>에서 선보인 폭탄머리를 얌전한 생머리로 바꾸기도 했다.

 2012년 SBS 드라마 <신의>로 컴백한 배우 김희선

2012년 SBS 드라마 <신의>로 컴백한 배우 김희선 ⓒ SBS


천방지축 김희선이 어른이 되는 과정

이처럼 90년대 김희선은 당시 신세대가 발현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개성을 보여준 유일무이한 스타였다. 사치스럽고 소비 지향적이면서도 자기주장 뚜렷하고 주관이 강했던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90년대 사람들이 정의하던 여자 스타의 전형성을 완전히 전복시키며 독보적 존재감을 자랑했다.

스캔들 하나로도 치명타를 입었던 그 시대에 김희선은 1년 365일 매일 가십거리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김희선은 언제나 용서받았다. 김희선이 사람들을 용서한 것인지, 사람들이 김희선을 용서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김희선은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히고 소통하고 소비하는 것으로 '스타 김희선' 을 창조했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 젊음의 열기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개성이 그 때의 김희선을 만들었고, 지금의 김희선을 창조했다.

한국 연예계는 김희선의 등장으로 여자 스타가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생산되는지를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기성세대는 김희선의 등장과 함께 신세대의 문화에 융화됐고, 김희선의 드라마를 통해 극단의 신세대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녀 말마따나 당시의 김희선은 꽤 오랫동안 '톱스타병'에 걸릴만한 자격을 갖춘 스타였다.

그러나 스타 김희선이 만들어 냈던 스캔들과 소문도 이제는 김희선 스스로 예능 프로에 나와 웃으며 말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현재 김희선은 20대 철없던 천방지축을 지나 30대의 완숙미를 간직한 한 남자의 여자, 한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여전한 배우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김희선과 첫 인연을 맺었던 배우 이순재는 "김희선만큼 노력하는 배우가 없다. 내가 본 배우 중 가장 예쁘고, 열심히 한다"며 "김희선이야말로 진짜 배우"라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원로배우의 후배 사랑이 조금은 과장돼 보이지만 확실히 김희선이 변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한 여성지에선 김희선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천방지축 김희선이 변했다. 대본 강독회를 전혀 하지 않던 그녀가 직접 대본 강독회에 나서고 있고, 동료 배우들과 선배들에게도 전에 없이 예의바른 모습으로 변했다. 3~4시간씩 지각을 해 촬영을 펑크내 버리던 과거 김희선이 확실히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

김희선과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윤석호 PD 역시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자유로웠던 영혼이 김희선이다"라며 "참 재밌는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의젓해졌더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스타 김희선도 세월 앞에서 제법 어른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90년대의 '파격적 아이콘'으로 사람들에게 추억되는 배우. <토마토>의 요요로, <안녕 내사랑>의 X자 핀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김희선 월드'의 유일무이한 주인공이었던 배우. 부족한 연기력조차 넘치는 스타성으로 용서받았고, 명절이면 특집쇼의 호스트로 사랑받았던 배우, 김희선.

그녀의 나이 들어감이 아쉬우면서도 마냥 슬프지 않은 것은, 20대의 김희선이 그랬던 것처럼 30대, 40대의 김희선이 만들어 갈 새로운 김희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는 훗날 어떤 스타, 어떤 배우로 대중에게 기억될까. 김희선이 만들어 나갈 내일이 자못 기대되는 오늘이다.

김희선 힐링캠프 토마토 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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