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馬醫)가 인의(人醫)가 되며 천한 신분을 극복하는 기적적인 이야기'…
역사적 사실을 장편 드라마 구조 아래 허구적 이야기의 살을 덧대 만든 팩션(faction) 성격을 지닌 드라마…

역사적 사실과 현재 시선의 중첩은 사극의 강점이다. 한 인물의 성장 드라마이자, 그의 사랑 이야기가 내러티브의 기저 구조를 이루면서 <마의>는 재미를 주고 있다. 여기에 백광현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하는 것 역시 드라마의 큰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역사적 삶으로 돌아가다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 MBC


온갖 현재 쓰이지 않는 단어들, 억양, 의상, 시대 배경은 우리의 의식을 타임 슬립(Time Slip)하게 만든다. 이미 지나간 것이라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을 찾고, 또 비교하며 역사의 인류지(人類誌)를 느끼게 해준다.

얼마 전 백광현(조승우)가 사용한 "궁금하면 다섯 푼"이라는 유행어의 차용은 역사를 재현이 아닌 현재의 시선 아래 새롭게 쓰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는 유명한 말은 역사가 지나간 것들의 단순 이력이 아님을 의미한다. 역사가 현재에 호출됨으로써 현재를 반추하는 유의미한 사실들이 될 때, 비로소 역사는 현재와의 연속 선상에서 탄력적으로 이해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역사는 우리의 삶의 문화 양식의 계보들을 새롭게 구성하는 살아있는 지식의 의미도 지닌다.

말과 인간의 유사성?

 마의 백광현이 임금의 병세를 직접 마주하는 광경,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마의 백광현이 임금의 병세를 직접 마주하는 광경,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 MBC


'마의'가 '인의'가 된다고 하는 것이 일견 의아함을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인간을 해부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조선 시대 문화 풍토 아래 말을 치료하는 마의는 동물의 해부학적 지식을 풍부하게 가질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된다.

인간 게놈프로젝트로 밝혀졌듯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적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여러 동물의 생체 실험은 인간을 위한 의학 지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마치 거짓말과도 같은 마의가 인의가 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마의>는 말에 관한 생체 정보가 인간의 생체 정보와 접점을 맺는 측면에서 꽤 흥미롭다. 말을 비롯한 각종 동물을 치료한 경험을 살려 임금의 담석을 발견하고 그 증상이 점점 그의 진단과 맞물려 떨어져 가는 것은 단적인 그 예였다.

이는 단지 의학책에 있는 지식의 실제 대입에 머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의학적 지식의 발견과 나아가 의학의 패러다임,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더 큰 차원의 인식적 지평을 확장하는 것일 뿐이다.

차별의 의식에 저항하는 드라마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 MBC


인간이 말과 유사한 장기와 신체 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역시 포유류이며 장기들이 피부 바깥이 아닌 피부 안에 위치한다는 점 등에서 기인한다. 더 넓게 보면 인간과 동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신화이고,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것이다. 임금과 말의 비교는 임금의 신체 역시 여느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백광현의 임금의 병을 말을 통해 유추한 것은 일종의 과학적 관찰을 통해 담석을 발견하며 '새로운 의학의 역사'를 쓴다. 이와 동시에 인간과 말의 경계적 인식을 허물어 '말을 통해 인간에 대한 생체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음'을 인지한다. 이것은 '백성과 임금의 분리적 인식에 저항'을 의미한다.

백광현은 그의 어의 진출을 부득불 막고자 하는 어의 이명환(손창민)을 향해 마치 현재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관을 갖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당한 인식을 지양하기를 촉구한다.

'신분이 곧 인격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 '누구나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있는 것', '기득권에 의해 부당하게 꿈을 이룰 권리를 저지당할 수 없다는 것', 천한 신분임에도 그는 당당하게 이러한 모든 올바름에 관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신분의 굴레는 표면상 없지만 우리는 누구도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고 또 경쟁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치우친 자본의 흐름과 세습되는 부와 신분에 대한 현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의>를 보면서 지난 역사가 아닌 오히려 현재 우리를 향한 매우 정치적인 목소리가 드러나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의에 내장된 신데렐라 스토리가 다가 아닌 이유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마의> 12월 3일 방송 캡처 ⓒ MBC


마의 백광현의 신분이 실은 높은 고위직 자제라는 것은 마의라고 그를 더럽게 보고 등한시하는 많은 사람의 편견을 잠재적으로는 매우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만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신분 상승의 신데렐라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신분에 대한 설움을 겪었을뿐더러 그에 굴하지 않고 현실에서 자신의 꿈을 담담하고 열정적으로 지펴내는 백광현은 그런 신분에 대한 얕은 만족이나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치졸한 방책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데 유용한 지식들을 연마하고 더 넓은 세계 차원을 위해 그 지식들을 쓰기를 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치졸한 암투들이 등장하는 같은 시간대의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이 현실의 암울함을 우스꽝스럽게 반영하는, '역설적으로 슬픔의 드라마'라면 <마의>는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저항하며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마의의 험난한 여정이 작은 희망들로 삶을 누비는 '긍정의 역설을 지닌 드라마'라 하겠다. 이것이 <마의>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의 백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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