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출발점이 다르면 가는 방향도 도착지도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2030 '삼포세대'의 현실을 꼬집겠다는 이 드라마, SBS <청담동 앨리스>의 메시지가 매섭다.
'가치 전도의 사회', 가감없이 그려내
▲ SBS <청담동 앨리스>의 한 장면 ⓒ SBS
기회의 불평등, 출발선의 불공정함은 사회 곳곳을 억누르고 있다. 은퇴를 앞둔 세대는 정년을 채우려 발버둥치고, 청년들은 높아지는 실업률에 신음하고 있다. 그것을 아버지와 자녀에 대입해 보면 더욱 아이러니하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현상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그 그늘이 오랜 탓일까. 불공정한 출발은 그 격차를 더욱 벌리고, 그 공백을 메우는 데 '물신적 가치'들이 동원되고 있다. 고가품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라는 부추김이 그 하나. '푼돈은 아끼고 고가품은 서슴없이'가 마치 현명한 소비행태인 냥 부추겨지는 세태가 된 것이다.
인터넷에는 이른바 '럭셔리 블로그'들이 인기를 끌고, 그 콘텐츠는 사치품 소개와 자랑이 주가 된다. 백화점 명품관은 입장을 위해 줄을 세운다. 일부는 동경하고, 일부는 한심하게 여길 그 모습, 제품의 질과 비례하지 않는 초고가의 가격책정 등은 허영심을 담보로 한 마케팅의 결과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청담동 앨리스>에서 차승조(박시후 분)의 캐릭터다.
제품에 서슴없이 "모시겠습니다" "얼마십니다" 등의 존대어가 붙고, 가격이 비싼 물건일수록 신주단지가 된다. 드라마는 이 코미디 같은 현실을 시원하게 드러내 비틀고 꼬집는다. 작가의 시각은 냉철하고 예리하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러나 지나친 판타지로 흐르지 않길
▲ SBS <청담동 앨리스>의 한 장면 ⓒ SBS
최고급 빌라촌과 달동네 판자촌은 <청담동 앨리스>에서 극명히 대비되는 배경이다. 다른 곳에서도 늘 그려왔던 풍경이 더욱 처연해 보이는 것은 이 드라마가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당하는 굴욕, 슬픔, 상실 등이 시청자들의 그것과 유리되지 않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다.
한세경(문근영 분)은 이곳저곳에서 '후진 안목'을 지적받는다. 게다가 그의 보잘 것 없는 '처지'를 조롱하는 주변인들과 남자친구 소인찬(남궁민 분)의 이별 통보까지 받은 그는 벼랑 끝에 몰렸다. '노력이 나를 좌우한다'는 한세경의 좌우명은 출발부터 삐걱인다.
그러나 '안목'은 후지다지만 '스펙'은 뛰어나다. '처지'는 힘들지만 그것을 보완할 외모와 의지 등의 내·외적 조건들은 충분히 갖췄다. 그런 한세경이 이른바 '삼포세대'를 대표할 인물이 될 수 있을까? 그가 극단으로 여기는 최악의 조건들 또한 어떤 이들에겐 넘볼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때문에 이미 드라마는 '판타지'가 덧입혀졌다.
<청담동 앨리스>는 '순리'로는 풀어내기 힘든 '가치전도 시대'의 풍자, 그리고 그것을 뚫고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두 축이다. 외양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거기에 짙은 '한국적 정서'를 집어넣었다. 드라마가 시대의 자화상을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편 2일 방송된 <청담동 앨리스>는 시청률 8.6%(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기준, 이하 동일)를 기록했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는 MBC <메이퀸>으로, 시청률은 23.6%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