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복숭아나무>의 감독 구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를 짓고 있다.

영화<복숭아나무>의 감독 구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말 그대로 종합선물세트다. 연출과 시나리오는 물론 음악에서까지 구혜선만의 감성과 생각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복숭아나무>엔 보다 성숙해진 구혜선의 현재와 깨달음이 담겨있다. 구혜선 역시 "종합선물세트였으면 좋겠다"며 영화에 대해 큰 애정을 보였다.

그간 드라마 <꽃보다 남자> <서동요> <부탁해요 캡틴> 등에서 배우 구혜선의 면모를 봐왔다면, 어느 순간엔가 작가로, 연출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낯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꿋꿋했고 꾸준했다. <요술> <당신> <기억의 조각>까지 구혜선은 자신의 열정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복숭아나무>는 삶에 대한 근본 질문에서 시작된 작품

"2009년을 지나 2010년에 시나리오를 썼어요. 한창 고민이 많던 때였죠. '왜 살아갈까' 하는 생각들? 그 당시 제가 존경했던 정승혜 대표님이 돌아가시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근접해 있었어요. 지금까지 그런 고민을 너무 안 하고 살았구나 싶었죠.

제 존재에 대해 고민하다가 함축적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왜 영화 <가위손> 있잖아요? 사랑스럽고 애잔한 존재지만 끌어안으면 상처를 주는 그런 캐릭터처럼요. 우리 모두가 그러고 살아가는 거 같아요. 사랑을 주면서 상처도 주면서요. 그런 캐릭터를 연구하다가 지금의 샴쌍둥이를 표현한 거 같아요. 삶과 죽음에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였죠."

연출자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미술작가로서 <복숭아나무>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이었다. 큰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고 하기보단 일관된 삶에 대한 관심이었던 셈. 단지 과거의 구혜선이 스스로에 더 집중하고 살았다면 이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는 게 변화였다고.

"우린 알고 보면 누구나 누구를 위해 살아가잖아요." 이 말인즉슨 사람은 사랑 없인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일 것이다. 구혜선에겐 그 대상이 가족이었고 이번 영화에 가족에 대한 마음을 더 내밀하게 담아내려 했단다.

"만약 제게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영화를 찍고, 미술을 하며 살진 않았을 거예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게 사실 그들 때문이더라고요.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더 잘해주려고 매일 결심하죠. 근데 '오늘은 짜증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확 내기도 해요.(웃음)"

가족에 대해 솔직하고 진솔한 말이 오갔다. 어쩌면 가족은 애증의 존재가 아닐까. '없었으면' 생각하면서도 없어지면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삶이니 말이다.


함께 연기에 참여한 배우들, 작품의 진정성 엿봤다

그래서였는지 샴쌍둥이로 등장하는 배우 조승우와 류덕환이 영화 말미 서로 떨어져 온전한 모습으로 등장할 땐 구혜선도 먹먹해졌다고 했다. 물론 인물의 뒤편에 특수 분장을 덧대어 촬영했지만 특수 분장을 떼고 촬영했을 땐 그렇게 마음이 짠해질 수 없었다면서 말이다.

"가족은 짐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뗄 수도 없는 존재에요. 그 가족의 부재를 생각하면 결국 본인 역시 부정하는 거잖아요."  

영화를 찍는 내내 함께한 배우들을 통해서도 그런 감정을 충분히 느꼈을 법했다. 오랜 친구 사이인 남상미(박승아 역)와 우정 출연한 서현진(쌍둥이 엄마 역)을 제외하곤 조승우와 류덕환은 작품성을 보고 흔쾌히 출연을 결정한 경우였다. 촬영 당시 불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나오기도 했는데 구혜선은 이에 대해 "여러 번의 의견 차이였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영화 <북숭아나무>의 한 장면.

영화 <북숭아나무>의 한 장면. ⓒ 구혜선 필름


"저 역시 이번 영화로 많이 배웠어요. 배우 출신이라 배우의 마음을 잘 알 거라는 생각이 오만했다는 걸 깨달았죠. 그냥 내 스타일과 상대의 스타일이 있을 뿐이더라고요. 사람에 대해선 아직 잘 몰라요. 그래서 연애를 못하나? (웃음) 스스로 잘 모르기에 제 영화도 그렇게 답이 없이 진행되는 거 같아요.

어떤 관계에 대해 딱 이렇다고 정의할 순 없잖아요. 결국 내 존재는 타인에 의해 존재하는 거 아닐까요? 타인이 날 정의하고 타인이 나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는 것처럼 저 역시 스스로 정의하지 않아요. 물론 연예계 일을 하면서 나름 단단해져 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고요."

"조승우나 류덕환씨는 한국영화스럽지 않은 작품을 갈망했기에 제안에 응한 것"이라고 설명한 구혜선은 다시 한 번 출연 배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예산 역시 빠듯했지만 배우 쪽에서 많이 배려해줬다고. 구혜선이 감독으로서 할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시간을 최대한 빼앗지 않는 선에서 촬영을 빨리 진행하는 것이었단다.

아울러 구혜선은 오랜 친구이자 이번 영화에 특별 출연한 서현진과 이준혁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서현진은 구혜선의 장편 영화 데뷔작 <요술>에도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출연료를 밥으로 해결할 만큼 절친이었던 구혜선은 "이번엔 5회차를 촬영했는데 5년 동안 밥을 사기로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 <복숭아나무>는 여러모로 배우들의 애정이 끈끈하게 모인 작품이었다. 샴쌍둥이를 소재로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시하는 이번 작품을 통해 구혜선의 새로운 면모도 확인해보자. 잘 익은 복숭아처럼 구혜선 감독의 꽤 깊은 사색의 결과물을 느껴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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