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 포스터 ⓒ 영화사 조제
흔히 멜로영화라 하면 주인공간의 예쁜 로맨스 이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이하 말줄임표 생략)에 그런 장면은 없다. 심지어 기대와 달리 아름다운 고백 장면조차 없다. 포옹도 손도 잡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두 주인공간의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조금씩 진전해 나가는 관계를 차분하게 전개해 나간다. 주말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집을 바꿔 산다는 독특한 소재는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을 정도로 관객들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집을 바꿔보자...서울과 강릉은 두 인물에게 어떤 공간? 대한민국에서 30대란 어떤 존재일까. 직장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사랑은 잘 되지 않는데, 결혼의 압박은 늘 온다. 그렇다고 모아 논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런 일상생활을 반복하며 사는 30대는 지쳐간다. 영화 속 주인공인 인성과 유정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토박이 인성(김태우 분)은 흥행에 목마른 영화제작자이지만,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지 않고, 투자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강릉 토박이 유정(예지원 분)은 간호사로 일하며, 예전 사랑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공간이다. 이들에게는 각각 강릉과 서울이 휴식공간이 된다. 인성은 바다풍경과 맛집이 있고 향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강릉으로, 유정은 더 넓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을 동경하며 주말마다 여행을 간다.
하지만 이들의 주말여행에 유일한 골칫거리가 있으니 바로 잠자리 해결이다.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인 인성은 주로 호텔에 묵지만 비용이 감당이 안 되고, 친구 집에 묵었던 유정은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찜질방과 모텔을 전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원길(서범석 분)이 운영하는 강릉의 커피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원길(서범석 분)은 이들에게 주말에만 서로의 집을 바꿔 지내보라면 제안하지만, 이런 황당한 제안에 인성은 솔깃해하지만 유정은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들은 우연스럽게 마주치게 된다. 맛과 정이 가득한 강릉의 한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시키는 것을 보며 공통된 취향을 발견하고, 노래방에서 '유재하' 라는 공통된 코드를 발견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유정이 허락하면서 두 남녀는 주말마다 집을 바꿔 살기 시작한다.
▲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의 스틸컷 ⓒ ㈜영화사 조제
사라지고 있는 추억의 장소에 대한 애틋함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에 중간 중간 나오는 강릉 강문해변과 서울의 해방촌은 관객들에게 애틋한 정서를 전한다. 계속되는 개발의 여파로 인해, 오래된 장소와 추억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유명한 횟집으로 가득했던 강문해변 주변은 장소와는 맞지 않은 카페와 높은 건물들로 바뀌어 가고 있고, 낡았지만 추억과 향수가 가득한 서울의 해방촌도 언제 재개발로 사라질지 모른다. 두 주인공은 이 공간들을 추억하며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지친 삶속에서 지금보다 더 행복했고 나았던 과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지난 7일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내가 고백을 하면>의 조성규 감독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고백을 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20대 때는 감정의 표현을 잘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그런 표현이 조금씩 어려워지더라." 라며 "그래서 제목에 '…'을 붙였다." 라고 제목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결국 영화는 일상생활에서 사랑이란 언제든지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주인공을 통해 사랑의 잔잔함을 전한다. 영화 속에 시선을 확 끄는 장면은 없지만, 차분하게 흘러가는 내용은 가을의 끝자락에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이번 주말에 강릉의 맛집, 혹은 서울의 해방촌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11월 1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