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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를 대신해 심사위원으로 나선 윤건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 버렸다. 유승우, 홍대광, 정준영이 모두 살아남은 바로 그 때였다. 진행자 김성주는 "대국민 문자투표의 힘이 엄청나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그리고 최종 탈락자가 결정 나기 직전, 결과를 기다리는 허니지와 딕펑스를 무대에 세워 놓은 이승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안타깝습니다. 음악적 시선과 대중적 시선이 이렇게 다른 건가요."

1, 2번으로 무대에 오른 김정환과 허니지에게 "흥분시켜줘서 감사합니다"라거나 "이게 바로 슈퍼스타K입니다. 생방송에서 이런 무대를 기대했어요"는 극찬과 함께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이승철이었다. 더욱이 김성주가 윤건에게 "점수가 너무 후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인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헌데, 각종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도대체 26일 방송된 <슈퍼스타K4> 톱7의 생방송 무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슈퍼스타K4>의 정준영
 <슈퍼스타K4>의 정준영
ⓒ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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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철이형, 뒤통수 제대로 맞으셨어요"

'Go back'이란 주제 하에 톱7이 자신의 과거사를 풀어 놓고 인생사와 관련된 노래를 부른 이날 생방송은 그간 <슈퍼스타K4>가 장착하고 있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대방출(?)하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만 같다. 그 중 방점은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른 정준영이 찍었다.  

윤건에게 "시간이 갈수록 음악을 멀리하는 것 같다. 저번 주와 비교해도 어떤 변화도 없던 것 같다"는 심사평을 들은 정준영. 기성가수들도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어려운 곡을 그가 소화해내기엔 분명 버거워보였다. 그 결과 기존까지 고수했던 록보컬 스타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무대를 선보인 정준영은 10여 회 이상 음이탈을 하는 무리수를 뒀다. 무대가 끝나자, 객석이 싸늘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정준영은 살아남았다. 심사위원 점수는 꼴찌였지만, 3위를 차지한 인터넷 사전투표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대국민 문자투표 덕분이었다. 빛과 소금의 <오래된 친구>를 펑키한 감각으로 소화한 허니지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기투표'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승철이형 뒤통수 제대로 맞았네."
"대선 때 투표 꼭 하라고 ㅋ 중요성 깨우쳐 줄려고 ㅋ"
"슈퍼인기스타K, 문자로 내게 힘을 주세요."
"슈퍼세이브 말고 슈퍼킬을 만들었어야 했다."

정준영의 생존기를 감상한 인터넷 감상평들이다. 역대 생방송 무대 사상 최악의 무대 중 하나로 기록될 실수를 하고도 생존한 정준영의 납득하기 힘든 결과에 제작진에 대한 비난이 쇄도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슈퍼스타K4>의 열혈시청자들로부터 '정준영 사태'라 일컬어진 그의 생존은 사실 이미 잉태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락자를 결정하기 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슈퍼스타K4> 심사위원 이승철
 탈락자를 결정하기 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슈퍼스타K4> 심사위원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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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투표'가 문제? 퀄리티를 뒤흔든 제작진의 방침

<슈퍼스타K>의 본질은 '인기투표'다. '젬베'를 든 조문근을 제치고 소녀 팬들을 설레게 했던 서인국이 우승을 차지했던 1시즌부터 그 원칙 아닌 원칙은 확고했다. 신드롬을 낳았던 2시즌의 우승자 허각이나 3시즌의 울랄라세션 등은 실력이나 인생사를 노래와 퍼포먼스에 녹여내며 인기투표의 장벽을 뛰어 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가수'로 안착했다. 뮤지션보다 스타성을 중시한 제작진의 원칙은 존중돼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니까, <슈퍼스타K>의 인기투표를 좌지우지하는 3요소는 노래 실력, 서사, 그리고 외모일 터. 그중 으뜸은 아마 암투병 중인 리더를 필두로 퍼포먼스와 가창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지난 시즌 우승팀 울랄라 세션이었다. 버스커버스커 역시 보컬 장범준의 매력이 준우승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허각과 존박, 장재인이 자웅을 가리고, 울랄라 세션과 버스커버스커, 투개월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던 2, 3시즌을 거친 <슈퍼스타K>.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지평을 넓혀 가며 분명 인기투표의 한계를 넘는 것처럼 보였다. 정준영과 비견되고 있는 <본능적으로>의 강승윤이 소녀 팬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서 톱4에 머문 것을 상기해 보자.

허나 시즌4의 제작진은 자리를 잡아가던 <슈퍼스타K>만의 퀄리티를 스스로 흔들고 있다. 이미 예선부터 때부터 일각에서는 정준영과 로이킴, 유승우 등에게 집중된 방송분량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스타성을 강조하고, 여성 팬이 월등한 <슈퍼스타K>의 특성을 고려해도 도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스타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시청자 참여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즌4의 변경된 룰은 인터넷과 문자를 포함, 전체 70%를 시청자의 손에 쥐어줬다. 심사위원 점수 1위를 자동 진출시켰던 슈퍼세이브 제도 또한 탈락자를 딱 1번 구제해 주는 것으로 변경됐다.

또, 지난 시즌까지는 통상 문자 투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연 순서의 경우, 사전 미션을 통해 결정됐고 그 모습을 녹화를 통해 공개해 왔다. 그런데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 제작진이 마련해 놨던 이 장치가 이번 시즌에선 빠져있었다. 이날 방송에서도 아무런 설명 없이 이미 강고한 팬층을 형성한 정준영, 로이킴, 유승우가 5, 6, 7번에 배치됐다.

열혈 팬들이 시즌3의 김용범 PD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책임프로듀서를 맡게 된 김태은 PD의 편파성을 거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그 결과, 스타성이 엿보이는 출연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혐의가 역력한 편집은 '묻지마 인기투표'에 좌우되며 생방송 무대의 진정성까지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다음 생방송 무대 진출이 확정된 유승우, 홍대광, 정준영
 다음 생방송 무대 진출이 확정된 유승우, 홍대광, 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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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슈퍼스타K4>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마도 <슈퍼스타K4> 제작진은 기존의 미덕과 고수해왔던 원칙이 무엇인지를 혼동한 것만 같다. 시즌3에서 불거졌던 예리밴드의 탈퇴 사건과 '악마의 편집'에 대한 비난들이 두려웠던 걸까. 분명 편집의 독한 기운도 사라졌다. 허니지를 제작진이 결성해주고, 여타 여성 솔로 참가자대신 볼륨을 톱10 넣은 것과 같이 밴드나 팀도 안배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의 <슈퍼스타K4>는 분명 길을 잃어버린 듯 보인다. 그리고 그 혼란은 물론 제작진이 자초했다. 슈퍼위크 당시 톱10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의적인 기준과 계속되는 번복과 회생으로 룰의 공정성을 스스로 오염시킨 것도 제작진 스스로다. 시즌2의 우승자 허각이 '공정사회'의 모델(?)로 선정, 청와대까지 초청됐던 것을 상기시켜 본다면 여러모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욱이 독한 편집이나 멘트, 독설 대신 참가자들의 개인사를 극대화한 편집 역시 퇴행의 수준이다. 심사위원 윤건 마저 "노래가 아니라 홍대광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는 홍대광의 가난이나 어머니가 가수의 길을 반대했다던 유승우의 가족사를 전면에 내세운 26일 방송은 그 정점이었다. 이 드라마틱하거나 혹은 신파로 기능하는 서사 속에서 홍대광의 인기는 특유의 목소리 톤과 결합, 폭발적인 상승 효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슈퍼스타K4>가 이전 시즌과 다른 느낌이라면 그건 전적으로 제작진의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자칭 타칭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인 이 쇼는 지금 그 무게감과 관심을 어찌 승화시켜야 할지 방송을 만드는 이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점이다. 

이미 200만이 넘는 지원자 중 생방송 무대에 오른 톱10 참가자들이 연예인으로, 가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을 제작진도, 관계자들도, 시청자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슈퍼스타K4>는 그 달콤한 권력에 도취해 기준도, 공정성도, 진정성도 잃어가고, 경쟁과 간택(?)의 환희는 강조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준영 사태'는 결국 약이 될 것이다. 인터넷 기사도 넘쳐날 것이다. 지상파를 제치고 동시간대 1위인 시청률도 지난주와 동일했다. 이 거대해진 쇼에 톱10까지 오른 탈락자들에게 무슨 불만이 있으랴. 다음주 <슈퍼스타K4>는 또 이 모든 것을 눈물과 도전으로 포장할 것이다. 홍대광, 김정환, 딕펑스는 그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쇼는 계속된다.


태그:#슈퍼스타K4, #정준영, #홍대광, #슈퍼스타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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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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