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픽션(허구)과 팩트(사실)에 관해서 '영화의 스토리'와 '영화와 현실'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영화 내용상으로 보면 진짜 왕이 아픈 동안 왕 노릇을 대신 하게 된 하선이 픽션, 진짜 왕 광해는 팩트가 된다. 이때 픽션과 팩트가 만나는 접점은 하선이 '진짜 광해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다음 날 열릴 신하들과의 회의에서 쓰일 문서를 미리 읽어볼 때 '진짜 왕' 같은 면모를 보일 때였다. 이 장면은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영화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 후로 하선은 스스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백성들에 아파하고 자기 몫만 채우려는 신하들에게 분노한다. 왕이란 자리에서 보인 백성과 신하들의 역설은 하선을 진짜 성군으로 만들었다. 하선은 '직접' 대동법에 관한 책을 읽고 대동법이 옳은 것으로 판단한다. 신하들이 반대하는 것에 '의문'을 갖고 신하들과의 회의에서 대동법을 시행하라고 명한다. 도승지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생각한 것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점점 픽션이 팩트가 되어갔다.

여기서 직접 팩트와 픽션이 맞물렸던 장면은 왕이 밖으로 나와 있고 신하들이 자신의 발밑에서 엎드려있던 때였다. 광해는 앞서 이 장면에서 자신의 발밑에 있는 신하들을 밟고 지나가지 못하며 안절부절의 모습이었다. 반면에 하선은 나는 그대들과 같은 서인이 아니니 나도 중전과 함께 내쫓으라고 말하며, 신하들을 밟고 중전에게로 달려간다.

이 두 장면의 대비로 우리는 진짜 왕 광해는 가짜처럼, 가짜 왕 하선은 진짜처럼 보인다. 이때 우리는 무엇이 팩트이며, 픽션인지 헷갈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팩트로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픽션으로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영화 속 인물 도부장은 자신의 팩트로 가짜 하선을 택한다. 자신을 위해서만 칼을 꺼내라던 하선을 위해 도부장은 하선을 죽이러 온 사람들을 죽이려 칼을 꺼낸다. 이 장면을 보고 우리는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도부장처럼 스스로 팩트와 픽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선택한 팩트와 픽션이 세상의 진실과는 다르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스토리 외에, 현실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왜 하필 이 영화는 대선을 앞둔 2012년 9월에 개봉했을까. 많은 관객에게 이 시기와 관련해서도 생각해보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있다.

하선이 15일간 꾸려낸 정치는 진짜 조선을 위한 길이었다. 재산을 지키려는 신하를 나무라고 백성들을 걱정했다. 우리는 하선 같은 사람이 현세대에도 존재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고, 국민이 자신보다 밑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팩트로 믿고자 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할 시기를 앞두고 이 영화는 그 선택의 중요한 기준을 하선으로 제공한 셈이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시기를 아주 잘 타고났다. 그렇기에 영화를 픽션으로, 현실을 팩트로 본다면 대선을 앞둔 지금 이 시기는 픽션과 팩트가 만나는 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접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본 것이다.

정리하면, 픽션과 팩트는 진짜로 믿고 싶은 가짜 왕 하선과 가짜로 남기고 싶은 진짜 왕 광해, 그리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대선을 앞둔 현실로 두 가지였다. 또 이 둘의 접점은 하선이 광해가 되던 그 순간과 이 영화가 나온 시기이다. 우리는 이러한 접점에 서서 '내가 믿고 선택해야 할 팩트'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 픽션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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