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제목에는 참 고맙게도 '초식남'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지만, 사실 전 풀보다 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음악도 고기처럼 씹고 뜯고 쓰면서 듣지요. 음악은 중요한 단백질원이니까요! 당신이 원하는 음악칼럼이 있다고요? 따라오세요! 아마 멀리가진 못했을 겁니다. 후후! [편집자말]
"서럽습니다. 대체 난 왜 이렇게 병신 같을까. 그래서 서럽습니다."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 MBC


하루에도 몇 번씩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몰아친다. 그 과정에서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권한은 없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피할 수도 없다. 결정권이 없다는 말이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핑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느낀다. 서투른 실력 탓에 윗사람들로부터 먹는 욕은 평생 무병장수를 꿈꿀 수 있을 정도로 많고, 그만큼 '죄송합니다'를 토해내야 하는 횟수 역시 늘어만 간다.

서럽다. 무력함이 서러움으로 복받쳐 눈물이 줄줄 흐르지만 동시에 그 서러움이 감정적 사치라는 것을 말단인 우리는 최대한 빨리 깨달아야 한다. 과장에게 정당한 이견을 제시했다가 뺨을 맞는 조직 사회의 위계질서가 더럽고 분한 상황에서도. 조직 간의 관료주의와 사내정치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광경을 보고 나서도.

<골든타임>의 세중병원 인턴 이민우(이선균 분)의 초점 풀린 눈과 끝을 얼버무리는 말투가 '나의 모습'으로 감정 이입되는 그 순간, 드라마는 에브리 싱글 데이의 '모래시계'라는 곡을 빌어 사회 초년생을 다독인다.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던, 모든 게 그리워만 가는"그 감정에 대해서. 그들이 연출한 스네어의 공명감과 힘 빠진 보컬의 음색은 사운드에 허한 공간감을 부여하고 듣는 이에게 숨 쉴 틈을 열어준다. 호흡곤란에 빠진 사람에게 조치하는 기도 삽관처럼.

럭키 데이와 모래시계. 상반된 청춘의 기록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OST를 제작한 밴드 에브리 싱글 데이. 왼쪽부터 정재우(기타, 프로그래밍), 문성남(보컬, 베이스), 김효영(드럼)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OST를 제작한 밴드 에브리 싱글 데이. 왼쪽부터 정재우(기타, 프로그래밍), 문성남(보컬, 베이스), 김효영(드럼) ⓒ MBC


<골든타임>의 권석장 감독과 OST를 제작한 에브리 싱글 데이는 이미 MBC 드라마 <파스타>에서 한 번 손발을 맞춰본 사이다. 당시 권석장 감독은 <파스타>의 연출을 맡았고 에브리 싱글 데이의 리더 문성남(보컬, 베이스)은 그 드라마의 음악감독이었다. 그런 이유로 권 감독의 대표작은 곧 에브리 싱글 데이의 최근작과 궤를 같이한다.

<골든타임>과 <파스타>는 모두 권 감독과 에브리 싱글 데이가 선보이는 청춘의 기록이다. 만든 이는 같지만 두 작품이 표현하는 청춘은 서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파스타>의 주제곡 '럭키 데이'에서 선보인 기타의 경쾌한 리듬커팅과 OST 수록곡 '운명'에서 선보인 딜레이 걸린 기타의 반복적인 연주, 신스의 전개는 청춘이 일상이란 범주 내에서 그려낼 수 있는 한정된 판타지를 구현한다.

여기에 두 작품에서 모두 주인공을 맡은 이선균은 호통으로 주방을 장악하는 셰프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로 권 감독과 에브리 싱글 데이가 그린 그림에 현실성을 덧입힌다. 그러나 셰프 최현욱이 인턴 이민우로 변하는 사이, 주방의 절대자가 허둥대는 병원 인턴으로 바뀌는 그 시간에 에브리 싱글 데이의 사운드는 경쾌한 리듬을 지워내고 환자의 희미한 숨소리가 떠오르는 몽롱함으로 돌아선다. 이제 판타지는 없다. 판타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현실만이 남았다. 물론 도망칠 곳은 없다.

세중병원 선배들은 응급상황에서 환자들의 생과 사가 갈릴지도 모르는 조치들을 끊임없이 주문하고 매일매일 밀려드는 환자 탓에 자기 앞가림하기조차 어렵다. 여기에 직장은 인턴인 그들에게 불합리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조직의 룰을 강요한다. 이민우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은 좁아터진 대기실 침대가 유일하다. 다들 알겠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이건 종합병원 인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에브리싱글데이, 호흡곤란 청춘에게 취하는 심폐소생술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 MBC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수시아'라는 곡을 통해 "쓰러지세요, 당신은 일어설 수가 있으니"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그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는 실패가 재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세상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렇다 할 출구도 없다. 최현욱이 아닌 이상 지금의 세대에겐 그저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미드 자막을 만들며 '잉여롭게' 방에만 있을 것인가, 자존심을 구기며 온갖 불합리가 가득한 조직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 사회적 호흡곤란 상태를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호흡곤란 상태를 사는 청춘들에게 에브리 싱글 데이는 자신이 연출한 사운드를 통해 그저 숨 쉴 통로만을 마련해준다. 동정은 없다. 올해로 15년 차인 그들의 험난한 인디 생활이 동정의 대상이 아니었듯이. 그들의 만든 <골든타임> OST는 모두 한결 같이 풀린 눈빛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그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사운드 속에서 냉정함보다 일말의 따뜻함을 발견한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면 그런 고통 또한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런 노력조차 없을 테니까. 우리의 상태는 호흡 곤란이지만 어레스트(심정지)는 아니다. 그 고통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에브리 싱글 데이가 우리에게 취하고 싶은 디시전은 그게 아니었을까.

그들의 OST가 이민우를 넘어 자연스레 최인혁의 이미지와 오버랩 되는 건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른다. 피하지 말라고. 문제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답을 찾으라고. 드라마에서 성장통에 대한 처방을 내려준 건 최인혁만이 아니다. 단순히 드라마 배경음악만으로 소비하기에 이들의 OST가 너무 아까운 이유이기도 하다.

골든타임 에브리 싱글 데이 파스타 권석장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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